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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 츠지 마사노부》 정계에서의 실의와 의문의 실종 (3) ┣ 參謀 辻政信 (完)


  본 연재글은 1963년 분게이슌쥬文藝春秋 출판사에서 간행되어, 1982년 카와데쇼보河出書房에서 문고본으로 출시된 参謀 辻政信》의 번역입니다. 본 번역은 故 원작자 스기모리 히사히데 씨(杉森久英, 1997년 작고)나 출판사에게 저작권 양해를 구한 것은 아니나, 원작이 출간된 지 이미 50년이 넘어 잊혀지려고 하는 작품을 보다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번역 중에 있습니다. 절대로 배포나 불법공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명확히 하겠습니다.(만약 문제가 생길 시 삭제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재글의 불펌은 불허합니다. 번역상 잘못된 부분이 있을 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카岡 중의원은 그(카와구치 소장小將)가 말하는 것이 아마 진실이라는 바를 인정하고서,

  "대충은 알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어떤 방법을 취하실 겁니까?" 라고 묻자,
 
  "총선거가 눈 앞이라고 들었습니다. 마침 츠지 군과 선생님은 같은 선거구에서 입후보하게 될 것 같으니, 당신의 트럭에 태워주시면 츠지의 죄과에 대해 바라던 대로 선거민들에게 호소하려고 합니다. 그에게 있어선 치명적인 타격이 되겠지요."

  "아니, 그럴 순 없습니다. 선거는 정책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지, 개인을 중상하는 바를 무기로 써서는 안 되겠지요."

  오카 료이치岡良一에 있어서 츠지 마사노부는 당면한 적이었다. 쇼와 27년(1952) 10월의 선거에서 츠지가 처음으로 이시카와 1구에서 출마했을 때, 오카가 오래도록 키워 온 코마쓰 제작소小松製作所 아와즈栗津 공장과 그 외의 우파사회당계 노조들로부터 수많은 표가 츠지에게 흘러가, 그는 낙선했다. 1953년 4월, 오카는 반격하여 츠지로부터 다수의 인텔리표를 빼앗아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카와구치 전 소장의 출현은 분명히 츠지에게 일격을 가할 절호의 기회이긴 했지만서도, 그를 트럭에 태우고 다니며 反 츠지 연설을 시키는 건 수단으로서는 공정함을 결여한 것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선거민들의 반감을 사기가 쉬웠다. 오카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카와구치는 끝까지 츠지와 대결하는 것을 바라 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카나자와金澤의 이토 토요키伊藤豊樹와 상담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라고 권유하여, 소개장을 써 주었다. 이토는 전쟁중에 국방간화회國防懇話會라는 애국단체를 주재하며, 동아연맹東亞連盟에도 관계하고 있었던, 국사國士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토는 카와구치가 희망하는 바에 따라, 츠지와 함께 입회연설회를 열어주기로 하고, 츠지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츠지는 처음엔 출석을 거부했으나, 주위의 권유로 승낙하였다.

  입회연설회의 전날 밤 우에노發 급행열차〈호쿠리쿠 호北陸號〉의 차실에서, 내일 대결하기 위해 함께 카나자와로 향하던 츠지 마사노부와 카와구치 키요타케川口淸健는 뜻밖에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츠지는 카와구치를 향해 상냥하게 예를 갖추고서,

  "각하, 오랜만입니다." 고 말을 걸며 외투를 받아주고, 자리를 권유하는 등, 어디까지나 선배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고 붙임성 좋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카와구치의 투지는 이 때문에 상당히 누그러진 게 사실인 듯 하다.

  입회연설회는 (1955년) 1월 18일 오후 2시부터, 카나자와 히로사카 거리에 있는 쵸손 회관町村會館에서 개최되었다. 토착 출신의 영웅 츠지 마사노부의 정치적 생명을 건 대결이라고 해서, 회장에는 1천여 명의 청중이 몰려들었고, 들어가지 못한 1천여 명은 장외에서 확성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회자의 소개에 이어서 등단한 카와구치 전 소장은, "츠지 군은《과달카날》에서 "만약 자신(츠지)이 예비대를 이끌었으면, 보다 전과를 올려서 과달카날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 것이다." 고 써 놓았으나, 나는 믿을 수 없다. 나는 예비대도 갖지 못한 채, 3개 대대 전원을 이끌고 수 배의 적과 맞싸우면서 결코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츠지 군은 내가 과달카날에서 도망쳐 돌아갔다고 써 놓았는데, 그것은 군사령부에서〈돌아와서 전황보고를 하라〉는 명령에 따른 것일 뿐, 내 의지로 돌아간 게 아니다." 고 말하고 나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들어서 츠지의 책임을 다그쳤다.

  그를 대신해서 자리에 오른 츠지는 전날 밤의 은근한 태도에서 표변하여 투지와 기백을 토하면서, "카와구치 소장이 군사령부의 명령으로 철수한 것은 처음 알았으나, 만약 내가 그랬다면 대장된 책임으로서 철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와구치 씨가 철수한 후, 그 지대支隊는 멋대로 행동하여 난맥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호세 산토스의 처형은 상부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 일개 참모에 지나지 않는 나에겐 명령권한이 있을 리 없었다. 외려, 13년이나 된 일을 지금 와서 어쩌니저쩌니 하는 건, 총선거를 앞두고 나를 중상하려는 오카 중의원의 음모인 것이 확실하다" 고 딱 잘라 말했다.

  이어서 카나자와에 거주하는 전 육군 대령 니이무라 리이치新村理市(카와구치 소장과 동기)가 올라와서, "카와구치 지대는 적을 정면에서 공격하는 건 불리하다고 말하며, 전혀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작전명령은 전체적 계획 하에 의해 내려지는 것이며, 한 방면의 지대장의 판단으로 멋대로 변경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리고 카와구치 부대가 도둑질을 한 것은 당시로서는 극히 흔한 일이었으므로, 이를 책에 썼다고 해서 비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전적으로 츠지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기 떄문에, 청중 속에 있던 오카 파로부터는 맹렬한 야유가 날아왔고, 츠지 파도 여기에 응수하여 난투극이 벌어지려고 하는 형세가 되어서, 사회자는 해산을 선언했다.

  그러나 오카 파는 수그러들지 않고, 우르르 단상으로 올라와서 마이크를 잡고 청중을 향하여 "오카 중의원의 음모 운운은 사실무근이다" 라고 해명했다. 카와구치 소장도 다시 단상으로 올라와서 해명하려고 했으나, 연단 바로 아래서 진을 친 자위동맹(自衛同盟, 중의원 츠지 마사노부의 친위대적 역할을 한 집단)의 한 무리가 노성과 욕설을 하며 방해하는 통에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연설회는 혼란 속에 해산당했다.

  이 연설회가 카나자와 시민들에게 준 인상은, 간략히 말하면 츠지에게 유리하고 카와구치에겐 불리했다. 카와구치 전 소장은 도사土佐 출신으로, 오랫동안 제 4사단 참모로 있으면서 오사카에 근무하여, 칸사이의 재계인들과도 연락하며 교섭에도 나선 바 있기에 사회적 시야도 풍부하고, 무골武骨 일변도의 군인기질과는 다른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부분만을 보고 츠지 마사노부는 예전부터 카와구치를 "깍쟁이" 라고 부르며 경멸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츠지의 좁은 도량을 이야기해 주는 바에 지나지 않고, 카와구치의 본질은 오히려, 도사 사람다운 강직한 무인기질에 가까웠다.

  카와구치도 육군대학 군토구미(軍刀組, 육군대학 15등 내의 성적우수자로 특전품인 군도를 하사받은 자)였기에, 다른 무텐구미(無天組, 육군대학을 거치지 못한 장교) 출신 여단장처럼 몇 년이나 후배인 츠지를 존경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츠지가 대본영 참모라는 지위를 등에 업고 뻐기는 꼴을 띠껍게 생각하고 있었다.

  카와구치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참견쟁이 꼬마가 말하는 걸 네, 네 하면서 들으면서 멀뚱멀뚱 부하들을 개죽음으로 몰아넣어야 하는가'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과달카날에서의 충돌은 이러한 두 사람의 고집이 부딪힌 것을 고려하여야 비로소,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일단 드러난 결과만을 보자면, "카와구치 소장이 사지에 뛰어들라는 명령을 거부한 것은 그가 겁쟁이였기 때문" 이라고 오해당하기 쉽상이었다.

  원래 카나자와에는 열광적인 츠지 숭배자가 많았고, 그렇지 않아도 츠지가 말하는 건 선의로 해석하여 줄 준비가 되어 있던데다, 용장 / 활발한 군인기질에 대한 잠재적인 동경과 숭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였기에 청중은 두 사람을 비교하면서 압도적으로 츠지를 지지했다. 카와구치 전 소장이 난청이었기에 보청기를 끼고 있었고, 응수가 때때로 뒤죽박죽하는 것도 그에 대한 인상을 나쁘게 만들었다. 카와구치는 적의 본거지에 쳐들어가겠다는 그의 작전이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체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덧글

  • 대공 2013/10/26 20:56 # 답글

    정치깡패 때문에 언플이 성공한 모양이군요
  • 3인칭관찰자 2013/10/26 21:16 #

    (정치깡패까지는 그렇고...) 츠지 추종자들 때문에 카와구치 소장의 주장이 묻혀버렸다고 하죠.
  • 고르곤 2013/10/26 21:19 # 답글

    '비록 개새끼라해도 우리집 개새끼입니다'가 떠오르는;;
  • 3인칭관찰자 2013/10/26 21:22 #

    그래서 그런지 카나자와 현에서는 츠지의 실상이 마구 파훼된 지금도 츠지에 대한 인기가 남아있다고....
  • 고르곤 2013/10/26 21:24 #

    그사람의 출생지인 이시카와현도 사정은 비슷하겠군요;;
  • 3인칭관찰자 2013/10/26 21:27 #

    억... 실수했군요. 카나자와 현이 아니라 이시카와 현임요. ㅠㅠ 현청 소재지가 카나자와고(...)
  • 놀자판대장 2013/10/27 12:57 # 답글

    결론: 인해전술이 최고다.
  • 3인칭관찰자 2013/10/27 13:06 #

    ㅇㅇ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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