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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모 츠지 마사노부》 잠행 3천리의 내막 (6) ┣ 參謀 辻政信 (完)


  본 연재글은 1963년 분게이슌쥬文藝春秋 출판사에서 간행되어, 1982년 카와데쇼보河出書房에서 문고본으로 출시된 参謀 辻政信》의 번역입니다. 본 번역은 故 원작자 스기모리 히사히데 씨(杉森久英, 1997년 작고)나 출판사에게 저작권 양해를 구한 것은 아니나, 원작이 출간된 지 이미 50년이 넘어 잊혀지려고 하는 작품을 보다 많은 분들께 보여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번역 중에 있습니다. 절대로 배포나 불법공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명확히 하겠습니다.(만약 문제가 생길 시 삭제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재글의 불펌은 불허합니다. 번역상 잘못된 부분이 있을 시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쇼와 25년(1950) 정월, 츠지 마사노부의 전범 용의가 풀리면서 그는 수 년만에 처자가 기다리는 도쿄 세타가야世田谷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잠행 중에 지금까지 거쳐온 전투와 전후의 도망에 대한 족적을 회고하며, 세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었는데 이것들을 정리하여 잡지나 주간지 등에 차례차례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도망의 기록인 《잠행 3천리潛行三千里》《선데이 마이니치》에서 연재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전기戰記 《과달카날》《분게이슌쥬文藝春秋》에, 《유전流轉》《가이조改造》에 연재하였다.

  그리고 《잠행 3천리》가 완결되어 단행본으로서 출판될 무렵에는, 츠지 마사노부는 매스컴의 총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후 5년 동안 전범으로서 추적받아 온 츠지는 전범에서 해제된 이후에도 만일의 일을 걱정하여, 사람의 눈에 띄는 장소에는 가지 않고, 편집자에게도 주소를 알리지 않는 한편으로, 다른 사람을 대리로 세우고, 전화로 미리 협의를 거쳐서 가두街頭나 찻집에서 (상대를) 만나는 정도였다.

  세상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보더라도, 전후戰後가 된 지가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전쟁의 아픔을 망각하기 어려웠고, 옛 군인에 대한 증오와 원한이 생생하게 남아 있을 무렵이었으므로,《잠행 3천리潛行三千里》의 출판 책임자로 마이니치 신문사의 출판국장이었던 모리 세이조森正藏는 세상의 평가를 의식했는지, 조심성 가득한 후기를 덧붙였다. 거기서 말하길,

  이 책을 끝까지 읽으신 사람들의 감상은 아마 잡다하리라고 생각한다. 츠지 마사노부 씨가 지금까지 저술한 2~3가지의 읽을거리에 대한 비판이나, "츠지 씨가 그러한 정황 속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사람이면서도 주제 넘는 이야기를 써서 다른 사람에게 읽히려고 한다니 언어도단이다," 라는 목소리들을 생각해 보면, 같은 저자가 쓴 이 책에 대한 세상의 평이란 것도, 대강의 예측은 간다... (중략).... 아마도 이제부터 저자에 대해서도, 출판사에 대해서도, 다양한 비판이 몰려들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가장 만족스런 것이리라. 그 속에서, 현재의 일본이 요구하는 수확을 추려내는 것은, 우리들의 커다란 기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본문 그 자체도, 츠지가 쓴 원문 그대로는 출판되지 않았다. 문장에 그다지 자신이 없었던 츠지는, 몇 매씩 써내려갈 때마다 육사 동기이자 카나자와 연대의 동료였던 다나베 신지田邊新之 전 대령에게 글을 보여주고, 정성들인 퇴고를 받았으며, 거기에다 편집자의 손에 의해 독자의 반감을 살 만한 건방지고 호전적인 자구도 조심스레 삭제되었다. 츠지는 이를 불만스럽게 생각하여 훗날, 마이니치 신문사에 이 책을 절판해 달라고 요청하고, 새롭게 자기가 생각한 대로 고쳐 쓴 결정판을 토토쇼보東都書房를 통해서 출판했다. 그러나 이 때는 이미 《잠행 3천리》의 유행이 지나간 뒤였다.

  그런데, 편집자의 걱정과는 반대로, 이 책의 초판이 불러 일으킨 반향은 컸다. 훼예포폄(毁譽褒貶, 칭찬과 비방)은 제각각이었으나, 어찌됐든 잘 팔렸다. 상품으로서의 책이란 것은, 차가운 평가나 호된 꾸지람조차 광고가 되는 법이다. 수많은 화제가 불러 일으켜지는 동안, 이 책은 판을 거듭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잠행 3천리》가 널리 읽힌 이유 중 가장 큰 한 가지는, 전편에 넘치는 모험취향에 있으리라. 패전에 의해 많은 장병들이 허탈 상태에 빠지고, 염치없이 포로가 되고, 무장해제당하는 와중에, 이 담력과 기략이 넘치는 강철남은 몇 번이나 위기에 빠지면서도 교묘하게 도주를 계속하였는데, 그 과정이 마치 사루토비 사스케(猿飛佐助, 일본 전국시대물에 나오는 닌자로, 다이쇼 시대에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나 슈퍼맨 이야기처럼 재미가 있었다. 범용한 인간이라면 당연 진퇴유곡進退維谷에 빠질 만한 위기에서도, 그는 맹렬하게 반발하며 궁지를 벗어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일본 민중의 마음 속 저변에 잠들어 있는 소박한 영웅숭배심리에 호소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영웅은 영웅이라도, 진 싸움의 영웅이었기에 퇴각과 도주로 점철되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 발휘된 주인공의 초인적인 실행력과 열렬한 투지는 충분히 민중의 찬탄의 대상이 될 만한 박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후에 벌어진 세상의 혼란과 생활고로 인해 의기소침해 있던 일본인은 오랜만에 왕성한 군인정신, 군인기질을 접하면서 눈이 딱 뜨이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각지로부터 강연요청과, 신문잡지로부터의 기고의뢰가 늘어나면서,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충언에도 불구하고 츠지는 서서히 시대의 영웅이 되려 하고 있었다.



덧글

  • 토나이투 2013/08/04 14:23 # 답글

    각지로부터 강연요청과, 신문잡지로부터의 기고의뢰가 늘어나면서,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충언에도 불구하고 츠지는 서서히 시대의 영웅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역시 자수성가기였어! 속였구나 츠지!
  • 3인칭관찰자 2013/08/04 14:44 #

    인정하고 싶지 않군... 잠행이라는 가명을 쓴 자수성가기였다는 것을...
  • 놀자판대장 2013/08/04 21:46 # 답글

    다시는 츠지를 무시하지 마라!
  • 3인칭관찰자 2013/08/04 15:25 #

    우리가 잘못했다. 사과할게. 미안합니다
  • ㅇㄹ 2020/10/05 17:21 # 삭제 답글

    킹치만 자칭 작전의 신인 빡대가리잖아요...
  • 3인칭관찰자 2020/10/05 18:29 #

    '작전의 신' 칭호는 태평양전쟁 초기 일본 25군이 말레이ㆍ싱가포르를 함락시켰을 때 츠지가 25군 작전주임참모를 맡았던 데서 비롯된 바가 큰지라, 밑도 끝도 없는 빡대가리의 자화자찬은 아니었습니다.

    태평양전쟁 초기의 남방작전(말레이ㆍ싱가포르ㆍ필리핀) 시기에 한하면 츠지는 (싱가포르 화교학살을 기안하고 바탄에서 미군 포로들을 학살하라는 위조명령을 유포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지만) 군사적으론 어느 정도 제 역할을 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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