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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지마 아츠시] 산월기 (完) 아오조라문고




이 글은 일본 쇼와昭和 시대 초기의 작가로 역사소설을 주로 쓰셨으며, 34세의 나이로 요절하신 소설가 나카지마 아츠시中島敦의 작품《산월기山月記》를 번역한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가독성을 고려해서 몇 번에 걸쳐 나눠서 도서밸리에 올리겠습니다.


  원참은 다시 관리에게 이를 받아적게 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偶因狂疾成殊類
우연히 광기를 앓아 짐승이 되고 말았네

災患相仍不可逃
안팎의 재난으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이

今日爪牙誰敢敵
지금의 내 발톱과 이빨에 누가 감히 덤비라

当時声跡共相高
그 때는 나도 너도 이름 높았건만

我為異物蓬茅下
지금 나는 풀숲 아래에 있고

君已乗軺気勢豪
너는 수레에 탄 권세 높은 몸

此夕渓山対明月
이 저녁에 산골짜리를 비추는 달을 마주하며

不成長嘯但成暭
노래하려고 해도 울음소리 뿐이라네


  "어째서 이런 운명이 되어버렸는지를 모르겠다. 고 아까 말했었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짚이는 데가 없는 것도 아니야. 인간이었을 무렵, 나는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를 꺼렸었지. 사람들은 나를 오만하고 자기밖에 모른다고들 했지만, 그것은 사실 수치심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것까진 그들은 몰랐다네. 물론 한 때 마을의 귀재鬼才로 불리던 내게 자존심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건 겁쟁이의 소극적인 자존심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었어."
 
  "나는 시를 써서 명성을 높이겠다고 하면서도, 나서서 스승에게서 배운다든가, 친구를 찾아서 그들과 절차탁마하려고 하지는 않았지. 그렇다고 속물들 속에 섞이는 건 계속 꺼렸었네. 이 모든 것은 내 겁많은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때문이야. 내가 크게 되지 못할 것을 두려워했기에 힘써 시간과 싸우며 노력하지도 않았던 반면, 내가 크게 될 거라고 절반쯤은 믿고 있었기에 순순히 시정잡배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네. 나는 차츰 세상을 등지고, 사람과 벽을 치고, 울분과 고민과 부끄러움과 분노로 계속해서 내 안의 겁많은 자존심을 살찌웠네. 모든 인간이 맹수 조련사라면 그 <맹수>에 해당하는 건 사람의 마음이지. 내 경우에는 이 거만한 수치심이 <맹수>였고 <호랑이>였네. 이것이 내 자신을 해치고 처자를 괴롭히고 친구를 상처입히고, 결국 겉모습까지 이렇게 내 내면에 걸맞은 것으로 바꿔놓은 거지."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히 나는, 내가 가진 쥐꼬리만한 재능까지 헛되어 써버린 셈이야. 인생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내기에는 대단히 긴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거라며 입발린 경구를 읊던 나는 사실, 재능부족이 폭로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비겁한 의구심과, 시간과의 씨름을 꺼리는 게으른 성미가 모든 것이었던 것이지. 나보다 훨씬 덜떨어진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끊임없이 갈고 닦은 끝에 당당한 시인이 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네. 호랑이가 되고 나서야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이 분하다네. 나는 이미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어. 아무리 내 머릿속에 뛰어난 시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어떤 수단으로 발표하겠나? 그기에다 내 사고는 하루하루 호랑이가 되어 간다네. 어떻게 할 수가 없지. 지금까지 허송세월한 과거는?"

  "참을 수가 없을 때면 나는, 저쪽 산 정상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낭떠러지를 향해 울부짖는다네. 이 가슴을 태우는 슬픔을 어느 누군가에게라도 호소하고 싶은 마음에서지. 나는 어젯밤에도 저 곳에서 달을 바라보며 외쳐댔네. 어느 누군가가 이해해 주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야수들은 내 목소리를 들어도 그저 움츠릴 뿐이네. 산도 나무도 달도 안개도, 한 마리 호랑이가 미치도록 노하여 소리지른다고 밖에는 생각하지 않네. 하늘을 향해 외치고 땅에다 대고 한탄해도 어느 누구 하나 내 기분을 이해해 주는 존재는 없었지. 마치 내가 인간이었을 때,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어느 누구도 배려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야. 내 모피가 이렇게 젖어 있는 건, 밤 이슬을 맞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야."


  이제 사방에서 어둠이 걷히고 있다. 나무들 사이를 통해, 어딘가로부터 새벽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온다.
  
  "이제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네.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으니"
라고, 이징의 목소리가 말한다.
 
  "단지, 작별하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네. 내 처자식 말이야. 아직 괵략에 산다네. 아직도 내가 어찌 되었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자네가 남방에서 돌아온 후에, "이징은 이미 죽었다"고 그들에게 전해 주지 않겠나? 절대로 오늘 일만은 밝히지 말아 주게. 뻔뻔스러운 부탁이지만, 그들의 외롭고 가난한 처지를 가엾게 여겨 앞으로 길거리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지 않게만큼만 돌보아준다면, 내게 있어서 최상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네."

  말이 끝나자, 수풀 속에서는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원참도 눈시울을 붉히면서, 기쁘게 이징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답한다. 이징의 목소리는 또 다시 앞에서의 자조적인 어조로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사실은 먼저 <이쪽>을 부탁하고 싶었네. 내가 인간이었다면 말이지. 후후,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 처자식보다, 내 자신의 보잘것없는 시작을 더 신경쓰는 이런 남자이니, 이렇게 야수로 타락한 거겠지."

  "그리고, 한 마디 더 해주자면, 자네가 영남에서 돌아올 때는 절대로 이 길을 지나지 말게. 그 때는 내가 취하여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고, 덮치려고 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지금 떠나가면 전방 백보 거리인 저 언덕에 올라가서 이 쪽을 한번 돌아봐주게. 나도 그 모습을 다시 한 번 기억해두겠네. 허세 부리는 게 아닐세. 내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어, 앞으로 다시 이 곳을 지나서 나와 만나려고 하는 마음을 자네가 먹지 못하도록 하려 함이네."

  원참은 수풀 속을 향해 다정한 작별인사를 하고는, 말에 올라탔다. 수풀 속에서는 다시, 참을 수 없이 터져나오는 듯한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원참도 몇 번이나 수풀 쪽을 돌아보며, 눈물 범벅이 된 채로 길을 나섰다.

  언덕 위에 도착한 그들 일행은, 부탁받은 대로 고개를 돌려, 아까 전의 숲 속 초지를 바라보았다. 그 때, 한 마리의 호랑이가 수풀 속에서 길 위로 뛰쳐 나오는 모습이 비친다. 호랑이는 이미 광채를 잃어버린 하늘을 우러르며 두 세번 포효하다가, 다시 뛰쳐나온 풀숲 속으로 들어가, 다시는 그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덧글

  • 조훈 2013/06/30 18:27 # 답글

    지금에서야 남기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3/07/02 20:53 #

    아... 댓글을 달아 주신 걸 오늘에야 확인했습니다.
    재밌게 읽어 주셨다니 기쁘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 지나가다 2016/12/18 17:52 # 삭제 답글

    산월기 란 책을 사서 읽다가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하나 검색하다 보니 들어왔는데

    번역이 좀더 친숙해서 편하게 읽었네요 잘읽고 갑니다 : )
  • 3인칭관찰자 2016/12/19 09:49 #

    나카지마 아츠시의 책이라면 오래전에 절판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구입하셨다면 새로 번역본이 출간된 모양이군요... 편하게 읽으실 수 있었다니 번역한 입장에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시기를(__)
  • 華奢 2018/10/03 22:03 # 답글

    좋은 번역 감사합니다. 너무 잘 읽었어요.
  • 3인칭관찰자 2018/10/04 12:12 #

    흥미롭게 읽어주셨다니 기쁩니다. 덕택에 저도 오랜만에 반쯤 묻혀있던 과거의 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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