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나카지마 아츠시] 산월기 (1) 아오조라문고


출처 : 아오조라 문고


이 글은 일본 쇼와昭和 시대 초기의 작가로 역사소설을 주로 쓰셨으며, 34세의 나이로 요절하신 소설가 나카지마 아츠시中島敦의 작품《산월기山月記》를 번역한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가독성을 고려해서 몇 번에 걸쳐 나눠서 도서밸리에 올리겠습니다.


  농서의 이징李徴은 아는 게 많고 재능이 총명하여 천보(天寶, 중국 당唐 제국 현종 말기를 말함) 말년, 젊은 나이에 급제자에 이름을 올리면서 이윽고 <강남위江南尉>란 보직을 받았으나, 천성이 남과 화합하지 못하는 데다 자기 자신에게 대단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천한 관리로 썩어 지내는 것을 치사하게 여겼다. 얼마 가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난 후 그는 고향 땅 괵략으로 돌아와 사람들과 교류를 끊고서 오로지 시작에 매달렸다. 하급관리가 되어 오래도록 속악한 상관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기보다는, 시인으로서의 이름을 사후 백년에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글쟁이로서의 이름은 좀처럼 드러나지 못한 채, 생활은 날이 갈수록 궁핍해졌다. 이징은 점차 초조함으로 몸서리치기 시작한다. 이 무렵에는 그 용모도 험상궂어져서, 살이 빠지고 뼈대만 남은 몸뚱아리에 눈빛만이 오로지 형형하게 번뜩인다. 과거 진사시에 급제했을 무렵, 탐스러운 미소년이었다는 옛날의 흔적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수년 후, 빈곤함을 참지 못하고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끝내 뜻을 굽혀, 다시 동쪽으로 나아가 어느 지방의 관리로 일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이징의 이 행동은, 스스로의 시작詩業에 거반 즈음 절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과거의 동창들은 이미 까마득한 고관이 되어 있었기에, 그는 옛날에 돌머리들이라고 상대도 하지 않았던 그들 무리들에게 지시를 받아야만 했다. 이것이 왕년의 준재 이징의 자존심을 얼마나 긁어댔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앙앙불락하며 지내는 동안 광패하게 치닫는 마음은 이제는 억누르기도 힘들어져 갔다.

  1년 후, 공무로 출장을 나가 여수汝水 강변에서 숙박한 날, 그는 발광했다. 어느 한밤중에 갑자기 낯빛이 변하여 침상에서 일어난 그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을 짖어대면서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려가더니, 어둠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근처의 산야를 뒤져봤지만 아무 단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 후 이징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다음 해, 감찰어사인 진陳 군 출신의 원참袁傪이라는 자가 칙명을 받들어 영남嶺南에 파견되는 도중, 상어商於 땅에 묵게 되었다. 다음 날 동이 트기 전에 출발하려고 하였으나, 역참의 관리가 말하기를 "여기서부터 앞의 길에는 호랑이가 나오기 때문에, 여행자는 대낮이 아니면 지나갈 수 없습니다. 지금은 아직 날이 이르니 조금만 기다렸다 가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고 하였으나, 원참은 수행원의 숫자가 많은 것을 믿고, 역참 관리의 말을 무시한 채 출발하였다. 

  잔월의 빛을 의지하여 숲 속 수풀을 헤치고 가는 도중에, 드디어 한 마리 맹호가 풀숲 한 가운데서 뛰쳐나왔다. 호랑이는 당장에라도 원참에게 달려들 것 같은 기세했으나, 갑자기 몸을 돌리고는 뛰쳐나온 풀숲으로 다시 들어가 숨었다. 풀숲에서부터는 사람의 목소리로 "까딱하면 큰일날 뻔 했다" 고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원참이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놀람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그는 순간적으로 짐작을 하고는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나의 친구 이징 선생의 것이 아닌가?"

  원참은 이징과 같은 해에 진사에 급제한 사람으로, 친구가 몇 없던 이징에게 있어서 가장 믿을 만한 벗이었다. 온화한 원참의 성격이 고고하고 고집 센 이징의 성미에 충돌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숲 속에서는 한 동안 대답이 오지 않았다. 흐느껴 우는 듯한 소리가 간간히 흘러나올 뿐이었다. 얼마쯤 있다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대답하였다.

  "분명히 나는 농서隴西의 이징이네" 라고.

  원참은 공포를 잊고서, 말에서 내려 수풀 쪽으로 다가가 "오랜만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째서 수풀 밖으로 나오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이징의 목소리가 답하여 말하기를 "나는 이미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버렸네. 어떻게 염치없이 옛 친구 앞에서 비참한 모습을 내비치겠나. 그리고 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반드시 자네에게 두려움과 혐오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할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러네. 그러나 지금 우연히 친구와 만나게 되니, 창피스러운 마음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반갑다네. 부디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나의 추악한 외형을 문제삼지 않은 채, 과거에 자네의 친구 '이징'이었던 이런 나와 이야기를 나눠주지 않겠나."



덧글

  • 산마로 2013/06/14 22:30 # 삭제 답글

    이 소설은 절판되긴 했지만 번역서가 있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3/06/14 22:50 #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에서 단편으로 나왔던 걸로 기억하네요.
    하지만 책도 절판이고, 저작권은 이미 말소되고 없는 작품이니 한번 번역해 봤습니다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175
453
408912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