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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료타로]《불타라 검》초판본 후기 독서



  1964년 신초문고 초판에 실린 <불타라 검燃えよ剣(타올라라 검)>의 작가 시바 료타로 씨의 작품후기입니다. 요즘은 원서 문고판에서도 삭제된 듯 하더군요. 정발본에도 나오지 않은 거 같아서 한번 올려봅니다.


히지카타 토시조

- 남자의 전형을 하나하나씩 써보고 싶다. 그러한 동기에서 나는 소설가가 된 것 같다. 딱히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허세 섞인 의식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다.(소설이 본디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어떨진) 남자라는, 이 비극적이면서도 가장 희극적인 존재를 나 나름대로 포착할 수 있는 건 역사시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인생이 완결되어서이다. 필자는 가로놓인 시간의 혜택을 받아 적당한 거리에서 인물을 뜯어볼 수 있다.

- 히지카타 토시조土方歲三라는 사나이의 인생이 완결된 지도 거의 100년이 지났다. 이 남자는 막부 말기幕末라는 격동기를 살았다. 신센구미新撰組라는 일본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특이한 집단을 만들어 활약시켰고,, 아니 지나치게 활약시켰기에 역사에 무수한 손톱자국을 남기면서 오직 이 조직만을 위해 스스로의 생명까지 써버렸다. 그란 사람은 대체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기 위해 태어난 것일까.

- 모를 일이다. 토시조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오직 열심히 정신을 고양시키고,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한 우스꽝스러움은 이런 부류의 남자가 지니는 숙명이리라. 그 정신이 충혈되면 충혈될수록 희극적인 것이 되고, 동시에 말없는 제스처가 뒤섞인 비극도 자아내는 것이다.

- 무사시 히노주쿠武藏日野宿 이시다石田 마을이란 곳이 이 남자의 고향 마을이다. 현재 도쿄도 아래 히노시日野市 이시다石田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이 곳은 주변에 다소 근대건축물이 들어온 것을 제외하면 그가 태어났을 때와 풍경이 별반 다를바 없다. 무사시노武藏野 특유의 보카토와 잡목림으로 뒤덮인 정원이다.

- 그 생가를 2번 찾아갔다. 경치 좋은 마을 안에 커다란 농가가 있었다. "갑부집お大人さん이라면 조깁니다" 라는 말투로 마을 젊은이는 히지카타의 집을 가르쳐 주었다. 도시조의 형 타메고로爲五郞의 증손자라는 온후한 초로의 당주가 응대해주었다.

  "예에. 여기서는 토시상歲さん, 토시상 하고 불립니다."

- 집에는 커다란 중간기둥이 있었다. 높이 130cm(4척) 언저리가 물빛으로 윤기가 났다. 기둥은 욕탕 가까이에 있다.

  "욕탕에서 나오면 토시상은 이 기둥을 붙들고 팔근력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 정원에는 화살대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이걸 직접 심었다더군요, 이상한 아이었달까요. 농사꾼의 자식이 무사가 되겠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예에. 화살대나무는 무사의 저택에는 반드시 심는 것이라고 하니 그걸 흉내냈겠지요."

- 토시조는 이 생가에, 교토시대에 사용했다고 하는 이즈미노카미 카네사다和泉守兼定 도검 한 자루와 투구식 철제 머리띠(鉢金, 하치가나)를 남겼다. 하치가나에는 칼자국이 남아 있었다.

- 토시조 누나의 증손자가 당주인 사토佐藤 집안은 히노 시의 고슈 가도변에 있다. 당주는 "유신 후에는 (토시조를) 부끄럽게 생각했다, 고 할머니가 말씀하시더군요." 라며 미소지었는데 그 용모가 사진에 나온 토시조의 얼굴과 빼다박았다.

  "시원한 눈매를 가진 얼굴로, 마치 배우같은 생김새였다고 하덥디다."

- 며칠 동안 그의 고향 이곳저곳을 돌았다. 타마 강玉川의 지류인 아사카와 강淺川이라는 아천에서 가시가 있는 약초도 뽑아 보았다. 토시조는 소년시절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가업인 약초채집을 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의 천재적 조직능력도 이러한 노동경험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아마 그럴 겁니다" 고 히지가타 집안의 당주도 말했다. 그 약초의 채집에서부터 제조에 이르는 공정과정도 가르침을 받았다. 100명 전후의 머릿수가 부서별로 나뉘어 복잡하게 움직이는 현장을 지휘하는 건 대단한 수완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토시조는, 그 떄까지의 일본인에게는 없었던 '조직'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가지고 있던 사나이로, 이를 구체적으로 작품화한 것이 '신센구미'였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만 보자면 문화사적인 사업을 이 남자의 열정과 재능은 해치운 게 아닐까.

- 이 소설은 <週間文春>에 쇼와 37년(1962) 11월 ~ 쇼와 39년(1964) 3월까지 총 68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다수의 손을 거쳐서 우선 그 절반을 한 권으로 만들었다. 이어서 완결편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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