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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토리 시소] 신센구미 (5) 그리고. 아오조라문고


  이 포스트는 쇼와 시대 초중기 일본에서 마르크스주의 계열 (강좌파) 역사학자로 활약하신 故 핫토리 시소(服部之総, 1901~1956) 교수님이 1934년 9월에 집필하셨던,〈신센구미新撰組〉라는 기고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이 쓰여진 지 85년, 저자분이 돌아가신지 62년이 지난 지금의 눈으로 보기엔 이러저러한 면에서 낡았다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점을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곤도 이사미近藤勇가 빛나는 신센구미新撰組 국장으로서 칼을 부딪힌 적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진실한 존왕양이론자尊攘論者였다는 것도 위의 지반에 비춰보면 이상하지는 않으리라.

  분큐文久 3년(1863) 10월 중순이라면 중대한 사건이었던 세리자와 파芹澤派 숙청은 이미 완료되고 신센구미에 곤도 독재가 수립된 이후였다. 이 무렵 막부가 에도의 신초구미新徴組와 함께 신센구미新撰組에게도 월급과 직책을 주어 우대하려고 했을 때, 마쓰다이라 히고노카미松平肥後守(카타모리容保)에게 상소하여 사퇴한 곤도 이사미의 서명문에서는

  "원래 우리들은 진충보국을 하려 하는 지사들로, 이번 부르심을 받고 지난 2월 멀리서 교토로 올라와, 황명을 받들어 외적 오랑캐를 몰아내고 배척하는 영단이 내려지리라 믿고 교토에 머물렀습니다. 외적 퇴치의 선봉에 서겠다는 취지는 지금까지 어리석은 몸을 돌보지 않고 건의올린 대로입니다만, 아직 조그마한 봉공도 하지 못했는데 녹과 지위를 내려주시겠다고 하시는 건 云云.."

  이 시기에 교토에서 공무합체파 여러 번의 정객들이 요로즈 요정万亭에서 회동하여 시국을 논의한 자리에서 이사미는 신센구미를 대표하여 "삿쵸薩長는 최근 양이를 실행하고 있다 하옵니다만 그들 모두 일개 번의 사업입니다. 거국일치하여 오랑캐를 내쫓는 장한 쾌거는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8월 이래 공무합체가 실현되고 있는 지금 오로지 황명을 받들어 막부를 보좌하고 상하가 협력하여 국론을 정하고 더욱 더 양이의 기세를 드높여야 합니다" 고 말하며 쇼군의 재입경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다음 해인 분큐 4년(1864) 정월, 이미 조슈長州 같은 막부토멸파 진영은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고, 공무합체파 천국이 된 교토로 쇼군이 재입경했으나 4월이 되어도 양이의 방책은 커녕 조슈 정벌 문제마저 결정되지 않아서 제후들은 기분을 잡치고 교토를 떠나기 시작했고, 쇼군 부재를 틈타 쓰쿠바 산筑波山에서 막부 토벌파의 반란이 일어나고 교토에서도 불온한 공기가 돌자 쇼군은 당황하여 에도 귀환을 언급했다.

  이 때 신센구미는 필사적으로 - 쇼군이 교토를 떠나면 우리는 조직을 해산하겠다고 외치면서 반대하였다. 그 건의문에서는 "우리는 원래 거국일체 양이결행의 부름을 받고 교토로 올라온 자들로, 시가 순찰을 위해 고용된 것도, 순찰을 하기 위해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것도 절대 아니므로, 양이를 결단하시지도 않고 이대로 에도로 돌아가시겠다면, 앞날 전도도 생각지 않는 미혹한 결과가 명백한 실책이 되어, 오히려 쇼군의 심려를 끼쳐드릴까봐 걱정스럽습니다. 만약 이대로 가마를 띄우시겠다면 우리 일동에게 해체를 명하여 주십시오" 라고, 울분 섞인 마음을 털어놓았다.

  쇼군은 결국 그냥 돌아가버렸으나 슈고쇼쿠 마쓰다이라 카타모리 때문에 신센구미는 꾹 참고 시내순찰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 후 1개월만에 <이케다야 사건池田屋事件>이 터진다.

  평소에 주시하고 있던 시조 오하시四条小橋의 고물상 가게로 쳐들어가 주인을 검거하고 자백하게 했더니 - 유명한 이 사건에 대해선 쓰지 않도록 하겠다. 이케다야에서 비밀리에 모이던 막부토벌파의 음모는 이미 양이의 그것을 넘어 존왕양이 실현을 위해 고심하는 마쓰다이라 카타모리 이하 교토의 공무합체파 요인들을 일거에 쓸어내고 정권을 빼앗는 데 있었다.

  이케다야 사건 이후 곤도 이사미가 이끄는 신센구미는 양이를 차일피일 미루는 막부 요로를 책망하는 것보다 오로지 존왕양이 실현을 위한 제 1조건으로 간주되는 공무합체 절충체제를 목숨 걸고 지키는 집단으로 변해갔다. 즉 말하자면 조슈 그리고 사쓰마의 조종을 받는 사도들에 맞서서 현 국가체제를 사수하는 특수경비대의 사명을 띤 것이다. 부르주아적 요소에는 조금도 연결고리를 갖지 못한 간토 타마 지방 농촌의 봉건적 부농계급을 완벽히 무장시킨, 시에이칸 인맥이 독재하던 신센구미만큼이나 이러한 업무에 용맹 / 진지 / 성실한 사람들이 따로 있었을까.

  ...이제 원고지 매수가 다 되었다. 이케다야 사건이 터진 분큐 4년(1864, 겐지元治 원년)부터, 도바 후시미鳥羽伏見 전투에서 패배하고 에도로 도망친 3년간, 신센구미는 이러한 본질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원들의 이합집산 / 조직의 발전이 계속되면서 그러한 본질적 모습은 더욱 더 명확해졌다. 에도 도주 이후의 일은 적지 않겠다. 관심있는 독자는 이러한 막부 말기 역사관을 참조하면서 상세자료에 충실한, 신센구미에 대한 두 가지 기록인 시모자와 칸子母沢寛 씨의《신센구미시말기新撰組始末記》, 히라오 미치오平尾道雄 씨의《신센구미사新撰組史》두 권 모두 쇼와 3년(1928)판을 참조하도록.


핫토리 시소服部之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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