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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토리 시소] 신센구미 (3) 세리자와 카모 아오조라문고


  이 포스트는 쇼와 시대 초중기 일본에서 마르크스주의 계열 (강좌파) 역사학자로 활약하신 故 핫토리 시소(服部之総, 1901~1956) 교수님이 1934년 9월에 집필하셨던,〈신센구미新撰組〉라는 기고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이 쓰여진 지 85년, 저자분이 돌아가신지 62년이 지난 지금의 눈으로 보기엔 이러저러한 면에서 낡았다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점을 감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꼴랑 1할도 안 되는 잔류조의 중심은 히타치常陸 세리자와 마을의 하급무사 세리자와 카모芹沢鴨를 중심으로 하는 미토水戸 로닌 일파로, 교토京都의 정치상황에 관심을 갖고 아직도 중앙 - 교토에서의 합체적 존왕양이尊攘 방책의 즉각실현을 꿈꾸고 있었다. 다케다 고운사이武田耕雲斎 같은 미토 존왕양이파 거두가 히토쓰바시 요시노부一橋慶喜의 측근으로 교토에서 활약하면서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을 깨닫지 못하던 바로 그 시기였다. 다른 쪽의 반은 곤도 이사미近藤勇 일파.

  창립기인 분큐 3년(1863) 3월의 신센구미新撰組에선 세리자와가 국장 필두로, 3명의 국장 중 2명(세리자와, 니이미 니시키新見錦)이 미토파에서 나왔고 제 3국장이 곤도였다. 슈고쇼쿠守護職 마쓰다이라 히고노카미 카타모리松平肥後守容保의 관할하에 들어간 이들 조직이 올린 첫번째 상소는

  "폐하의 뜻을 받들고 쇼군 공이 교토로 올라오셨으니 양이방책에 대한 영단이 내려질 것이라며 모두 크게 기뻐하였는데 명(3월) 23일 쇼군공이 에도로 내려가신다는 소식을 받고 대단히 놀랐습니다. 쇼군 공이 양이를 위해 한동안 낙양에 머무르시겠다는 뜻이 전해지면 천하 민심이 안온해질 것인데 뜻받에 명 23일 에도 귀환의 소식을 받고서, 천하의 안위가 여기에 달렸다고 생각하여 어쩔 수 없이 티끌만도 못한 몸을 돌아보지 않고 어리석은 방책을 삼가 아뢰옵니다. 만약 지금 교토를 떠나시면 천하는 소란스러워질 것이고, 그 틈을 타 만일 모계를 꾸미는 자도 속히 조처하기 어렵습니다. 부디 지금 얼마만이라도 체재하시어 달라는 말씀을 황송하게도 받들어 아뢰옵니다. 云云.."


  시국수습을 위해 거국적 존왕양이 즉각 실현에 기대를 건 미토파 내지는 히고노카미(=마쓰다이라 카타모리)의 표면적 방침을 그대로 드러낸 문장이지만, 언제까지 기다려 보아도 초지와 어긋나는 상황이 계속되자 세리자와 파는 이제 일개 난폭자들로 돌아가 버렸다.

  이런 판이었던 분큐 3년(1863) 3월에서 9월에 이르기까지 신센구미의 최초 6개월은, 일 같은 일을 거의 한 적이 없다. 그 동안 분큐 정변 중 최대의 쿠데타였던 8. 18 정변이 터지자 신센구미는 그날 당일 궁궐경비를 명받은 후 다음 날부터 시내 순찰 업무에 들어갔으나, 소위 말하는 '신센구미다운' 대활약은 세리자와 일파 사람들이 연루된 난폭사태를 제외하면 변변한 게 하나도 없다.

  9월 16일, 신센구미는 히고노카미의 내밀한 명령을 받고 세리자와 일파 숙청을 결행하여, 곤도 이사미의 준엄한 통제 하에서 개조되었다. 그날부터 마쓰다이라 히고노카미는 신센구미라는,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자기의 수족을 처음으로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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