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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치 칸] 시즈가타케賤ヶ岳 전투 (完) ┗ 日本合戰譚



  이 글은 패전 이전 일본의 유명 대중소설 작가로 출판사 분게이슌쥬文藝春秋의 창립자 겸 초대 사장이자, (고인이 된 친구들의 이름을 따) 아쿠타가와 상芥川賞 / 나오키 상直木賞이라는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을 만들어내기도 한 키쿠치 칸菊池寬 씨의 저서《일본합전담日本合戦談》에 포함된【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合戦 】편을 번역한 글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글의 내용은 일본 전국시대를 둘러싼 지금의 통설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자인 키쿠치 씨가 별세하신 때로부터만 쳐도 이미 74년이 지났으니 말이죠. 좋든 싫든 현대의 역사가들이 '1차 사료가 아니다'는 이유로 가지쳐낸 내용이 여기에는 제법 섞여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흥미 위주로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약 5년만에 다시 번역을 시도하려 합니다. 옛날만한 끈기도 열의도 없지만, 한번 벌여놓은 판은 정리를 해둬야겠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그리고 북군의 총대장 카츠이에는 이마이치의 키츠네즈카에 포진하고 있었으나, 모리마사의 패군이 전해지자 진중이 동요하여 어느 사이에 몰래 탈주하는 군대가 줄을 이어 이젠 2천 명이 채 남지 않았다. 카츠이에는 한탄하며 “모리마사가 혈기에 치우쳐 내 지시를 따르지 않아 이런 결과가 난 건 분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다. 화려한 일전을 벌인 후 할복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멘쥬 쇼스케(毛受庄助, 역주 : 카츠테루勝照)가 나아가, “지금 세상에 명장으로 칭송받으시는 주군께서 이런 산간지대에서 전사하시는 건 말대에 이르기까지 치욕이 될 것입니다. 부디 키타노쇼 성에 입성하시어 마음을 가다듬고 할복하소서.” 라고 권한 후, 자기들은 카츠이에의 우마지루시를 지키며 여기 남아 싸우겠다고 청했다. 카츠이에는 쇼스케의 충성스런 간언을 받아들여 황금빛 신장대가 그려진 우마지루시를 그에게 수여한 후 키타노쇼를 향해 말을 몰았다. 쇼스케는 그 형 모자에몬과 함께 3백 기를 데리고 오오타니 마을의 츠카타니塚谷까지 물러나, 밀고 들어오는 적들을 상대로 분전한 끝에 츠츠이의 가신 시마 사콘(島左近, 역주 : 키요오키淸興)에게 죽음을 당했다.

  카츠이에는 그 사이에 키타노쇼를 향해 도망치고 있었으나, 마에다 토시이에의 후츄 성하에 도달했을 때 그를 따르는 자는 고작 기마 8기ㆍ보졸 3~40명에 불과했다. 토시이에가 그를 맞아들이자 카츠이에는 지금까지의 후의에 감사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카츠이에는 토시이에에게 “귀하는 히데요시와 이전부터 사이가 좋았으니, 앞으로 히데요시를 따르면서 어린 주군을 봉대하는 데 힘을 써 달라.”고 말했고, 토시이에는 아침 이래 제대로 먹을 것도 먹지 못한 카츠이에를 위해 더운 물에 만 밥을 내게 하고 술을 권하면서 위로하였다. 저녁이 되자 카츠이에는 갈아탈 새로운 말을 청하여 성하를 떠났는데, 과거 물독 깨는 시바타瓶破柴田, 귀신 시바타鬼柴田로 불리던 이의 뒷모습은 초연悄然함마저 느껴졌다고 한다.

  4월 23일, 에치젠 키타노쇼 성은 이미 히데요시의 군대 앞에 바짝 포위되어 있었다. 카츠이에는 성과 함께 스러질 각오를 하고 있었기에 성 안을 큰 방에서부터 서재에 이르기까지 장식한 후 최후의 술판을 열었다.

  카츠이에의 아내는 오이치노카타お市の方라 불리던 노부나가의 여동생이다. 본래 오다니 성주小谷の城主 아자이 나가마사浅井長政에게 시집을 가서 2남 3녀를 낳았으나, 이후 오다 vs 아사쿠라ㆍ아자이로 갈려 싸우게 되면서 아네가와 강姉川에서 패배한 나가마사가 오다니 성의 이슬로 사라질 때, 설득을 당해 오빠 노부나가에게 거두어진 적이 있었다. 키요스 회의 시기까지 기후에 거주하면서 세 딸을 데리고 조용히 살고 있었던 것을, 노부타카가 카츠이에와 결탁할 목적으로 미인으로 평판이 높았던 숙모 오이치노카타를 카츠이에에게 개가시켰다. 카츠이에와 같이 산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성이 함락되는 광경을 목도해야 했던 것이다.

  카츠이에는 세 딸을 데리고 히데요시에게 가라고 권했으나 “이제 와서 더 산다 해도 무슨 바람이 있겠습니까. 함께 죽는 것만을 바랄 뿐입니다.”고 눈물을 흘리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밤부터 시작된 술판은 한밤이 새도록 계속되었으나, 마침 두견새가 우는 소리를 오이치노카타가 듣고,

  “그렇지 않아도 짧은 여름밤의 꿈길을 꾀는 두견새인가.” 하고 읊자, 카츠이에 역시
  “여름밤 꿈길같이 덧없는 나의 이름을 구름 위까지 전해다오 두견새여.” 라고 답했다.

  24일 새벽, 성에 불을 지름과 동시에 카츠이에 이하 남녀 39명이 한 건물 안에서 XX(역주 : 대략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미. 이하 동일함), 연기 속에서 죽어갔다. 카츠이에의 나이는 54세였다. 오이치노카타는 평생 두 번이나 성 함락의 비참함을 겪은 불행한 전국시대 여성이 되었다. 히데요시 역시 이전부터 오이치노카타에게 꽤나 미련을 갖고 있었으므로, 히데요시와 카츠이에의 싸움에는 이러한 치정관련 원한도 조금은 엮여 있었으리라 생각된다는 설도 있다.

  오이치노카타의 세 딸은 무사히 히데요시에게 거두어져, 그 맏딸은 훗날 히데요시의 아내北の方 요도기미淀君가 되었으며, 둘째딸은 쿄고쿠 사이쇼 타카츠구京極宰相高次의 아내가 되었고, 막내딸은 (토쿠가와 막부) 쇼군 히데타다將軍秀忠의 부인이 되었다. 전국시대 여성의 운명이란 것도 실로 불가사의한 것이다.

  (사쿠마) 모리마사는 카츠이에의 아들 곤로쿠와 함께 붙들려, 키타노쇼 함락 직전 포승줄에 묶인 모습으로 성 밖에서 카츠이에와 대면해야 했다. 곤로쿠는 사와 산에서, 모리마사(향년 30세)는 로쿠죠 강변六条河原에서 각각 참형에 처해졌다. 노부타카(향년 26세) 역시 키소 강 호반에서 XX하였다. 키요스 회의의 외교전에서 승리했던 히데요시는 여기선 전적으로 실력을 앞세워 천하를 거머쥔 것이다.


  후기

  이 전기를 쓰면서《余吳床合戰覺書》《別本余吳床合戰覺書》상하권을 주된 참고서적으로 삼았고, 여러 책에 따라서 인명이 다소 상이한 구석이 있는데 여기서는 모두 이 각서의 기록을 따랐다.

  그 외 참고한 책은 다음과 같다.

 《柴田退治記》: 이는 이 전투가 벌어진 해인 텐쇼 11년(1583) 11월에 오오무라 유우코大村由巳가 저술한 책으로, 가장 진실에 가까운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을 근거로 정정한 부분이 있다.

 《賤岳合戦記》,《太閣記》,《川角太閣記》,《豊鑑》,《豊臣記》,《蒲生氏郷記》,《佐久間軍記》,《淸正記》, 《脇坂家傳記》, 그리고《近世日本国民史》,《豊臣時代史》,《日本戰史》,《柳瀨役》도 참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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