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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셀렉션》무장들이 본 오다 노부나가 (完) 역사



  이 글은《歷史群像シリーズ 戦囯セレクション 激震 織田信長》P.110 ~ 113에 수록된, 일본 전국시대사의 저명한 권위자인 오와다 테츠오小和田哲男 시즈오카 대학 명예교수님께서 집필하신, <무장들이 본 노부나가 – 높은 곳에서 굴러 떨어져 허망하게 쓰러지겠지요.>를 번역한 글입니다.


 “내 아들은 또라이의 문 앞에서 말이나 매고 있을 것이다”

  노부나가는 오다 노부히데織田信秀의 셋째 아들이다. 장남 노부히로信広ㆍ차남 아와노카미安房守는 첩의 자식이었기에 정실부인인 츠치다 씨土田氏가 낳은 셋째 노부나가가 적자嫡子 대우를 받게 된 것이야 자연스런 일이나, 소년 시절의 노부나가가 온갖 기행奇行을 벌이는 걸 보고 세상 사람들이 ‘멍청이’, ‘또라이’라 수군거렸다는 건 주지의 사실로, 노부히데로서도 노부나가에게 가독을 물려주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노부나가의 진가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은 아버지 노부히데일지도 모른다. 노부히데 생전인 텐분 17년(1548) 가을, 인접지방인 미노美濃의 사이토 도산齋藤道三과 노부히데가 강화하면서 그 증표로 도산의 딸인 노히메濃姬가 노부나가에게 시집을 왔다. 노부나가가 ‘멍청이’라는 평판은 미노 주에도 알려져 있었을 터로, 딸을 노부나가에게 주기로 응낙한 도산 역시 노부나가에게 기대하던 바가 있었으리라.

  요즘 시대 같으면 결혼하기 전엔 양쪽 부모가 상견례를 갖고, 결혼식에도 반드시 참석하므로, 결혼 상대가 어떤 인물인지 간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저 시대에는 상대 쪽의 부모와 평생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아마 도산도 당초에는 그럴 작정이었으나, 가신들이 사위 노부나가를 너무 심하게 비방誹謗하는 걸 듣고서 “또라이인지 아닌지를 직접 만나보고 확인해보련다.”고 결의하게 된다.

  그것이 실현된 게 텐쇼 22년(1553) 4월 행해진, 쇼토쿠사 회견正德寺の会見이었다. 위에서 경위를 설명한 것처럼 이 회견은 도산 쪽의 요청에 의해 성사되었다.

  회견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가신 이노코 효스케(猪子兵助, 역주 : 타카나리高就)가 도산에게 “아무리 살펴봐도 카즈사노스케는 또라이 같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카즈사노스케上総介’는 노부나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자 도산은 “정말로 통분할 일이다. 야마시로의 자식은 또라이의 문 앞에서 말이나 맬 게 선하구나!”고 답하였다고《신쵸코우키信長公記》에 기록되어 있다. ‘야마시로山城’란 도산 본인을 가리키며, ‘문 앞에서 말을 매다’는 건 신하로 복속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도산의 아들 사이토 요시타츠齋藤義龍의 대에 사이토 가문이 노부나가에게 복속하지 않은 걸 볼 때 도산의 예언은 빗나가 보이긴 했지만, 손자 사이토 타츠오키齋藤龍興가 노부나가에게 멸망당한 시점에 비로소 도산의 노부나가 평가는 들어맞았다고 볼 수 있으며, 그가 노부나가의 진가를 간파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아들 요시타츠와 대립하게 된 도산은 "미노 주를 노부나가에게 넘겨준다"는 유언遺言을 남겼는데, 단순한 사위로서의 영역을 넘어 노부나가의 역량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이와 같은 행동을 벌일 수 있었으리라.

  마지막으로 노부나가의 진가를 꽤 이른 시기부터 간파하고 있던 또다른 무장을 소개하려 한다. 에치젠 주의 센고쿠다이묘 아사쿠라 씨 일가의 무장인 아사쿠라 노리카게朝倉敎景, 출가명인 ‘소테키宗滴’로 불리는 사내이다.

  소테키는 18세의 나이에 첫 출진을 한 이래, 별세하기 직전이었던 79세까지 전장을 뻔질나게 오간 자로도 유명하며, 그런 자신의 실전체험을 회고한 어록집《아사쿠라 소테키 이야기기록朝倉宗滴話記》을 남긴 바 있다.

  이 책의 구절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지금 세상을 떠난다 해도 마음에 걸리는 바는 털끝만큼도 없으나, 단지 앞으로 3년만 더 살고 싶다. 이렇게 말하면 나잇값도 못하고 목숨을 아끼는 또라이라 수군거릴 덜떨어진 자도 있겠지만, 목숨이 아까워서 이러는 게 아니다. 오다 카즈사노스케의 장래를 전해 듣고 싶은 바람이 있어서이다.”

  요약하자면 “앞으로 3년만 더 살고 싶다.”면서 그 이유가 “오다 노부나가의 장래를 조금 더 지켜보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아사쿠라 소테키는 코우지 원년(1555) 9월 8일 79세의 고령으로 별세하였다는 게 확실하다. 따라서 이런 말을 한 시점은 아무리 늦어도 1555년 이전이었다는 건 명백해진다.

  코우지 원년(1555)이라면 노부나가가 가독을 계승한 텐분 20년(1551)으로부터 고작 4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로, 그 해에 노부나가는 비로소 키요스 성淸洲城의 오다 노부미츠(織田信光, 역주 : 원문의 오류. 실제론 오다 노부토모織田信友)를 공략해 키요스에 막 입성한 차였다. 소테키의 눈에는 노부나가가 성장주成長株로 비쳤던 모양이다.


덧글

  • 앙겔 2021/07/25 17:33 # 삭제 답글

    이번 편의 인물들이 묘하게 현자느낌이 강한 사람들이라, 이 이야기들이 제일 그럴싸하게 느껴지는군요. 다만 아무리봐도 마무시센세는 자기 아들의 역량은 좀 과소평가한 듯. 만약 요시타츠가 천수를 누렸다면, 노부나가의 운명은 상당히 꼬였을거 같지 싶기도 하거든요.
  • 3인칭관찰자 2021/07/25 19:00 #

    본 영지에서 또라이 취급받던 평판 나쁜 젊은 도령의 가치를 알아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말입니다.

    요시타츠가 급사하고 어린 타츠오키가 당주가 되는 사이토 가문의 내부문제가 없었다면 노부나가의 미노 평정이 훨씬 장기화되거나 어려워졌을 거라 저도 생각합니다. 어쩌면 노부나가의 최대 운빨은 오케하자마 전투의 요행 따른 승리, 그리고 요시타츠가 30대에 요절해버린 거,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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