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키류 유유] 따지고 보면煎じ詰めれば 아오조라문고



  패전 이전 일본의 ‘최후의 저항 언론인’으로 평가받는 키류 유유桐生悠々가 필화사건으로 언론계에서 퇴출당한지 8년이 지난 1941년 8월, 후두암으로 투병하면서 저술한 글입니다.

  중국과의 전쟁에서도 확실히 이기지 못하면서 계속해서 판을 벌려나가다 결국 제대로 된서리를 맞게 되었지만, 현상타개를 위해선 미국ㆍ영국ㆍ네덜란드ㆍ호주 등 연합국들과의 전면전쟁도 불사해야 한다는 당시의 분위기, 특히 그런 여론을 주도하고 선동하는 자들(그 중에서도 군인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보던 키류가, 죽음을 앞두고 힘겹게 소회를 쓴 글 중 하나입니다.




  - 따지고 보면 이상과 현실 간의 충돌인 셈이다. 나는 이상을 바라보며 점진적으로 이를 추구하려 했던 반면, 그들은 현실에 집착하며 그저 직면해 있는 난국을 타개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생각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미래와 현재 사이의 충돌이기도 하다. 내가 바이스만의 수정설에 입각해 진화론進化論의 적자嫡子가 될 사람은 미래에 펼쳐질 상황에 적응한 자라고 본 반면, 그들은 다윈의 정통진화론正統進化論에 입각해 그저 현재의 상황에 적응해나가는 자를 적자로 간주했다. 그렇기에 내가 미래의 향상을 중시하면서 현재의 이익을 미래의 행복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불사해야 한다고 한 데 반해, 그들은 그저 현재에 머무르며 일시적인 이익만 챙길 뿐, 미래의 행복을 유기하고 이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따지고 보면 이는 새로운 체제와 옛 체제 간의 충돌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를 새로운 체제의 사람이라 보고 있지만 가련하도다. 그들은 현재로부터 단 한 발짝도 나오려 하지 않고, 심할 때는 과거의 전통 그 자체에 속박되어 미래를 예지하지 못한다. 유행을 쫓아다니는 것 자체가 새로운 체제의 것이라 믿고 진정한 새로운 체제란 건 미래의, 적어도 앞으로 찾아올 세계의 대세를 통찰하여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라는 태도 자체를 모른 채로, 참람히 그들 스스로를 새로운 체제의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후퇴하려 하고 나는 전진하려 한다. 그들은 보수적이고 나는 진취적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국가주의자ㆍ민족대립주의자로 코스모폴리탄인 나를 이해할 능력이 없고, 국가 내지 민족의 일원으로 그 의무를 다하는 데 충실하다고 자처하나 “공경하고 삼가는 자기 자신을 통해 그 박애를 뭇 사람에게 닿게 한다.”는 초국가적ㆍ초민족적 가치로서 그들이 애송하는 ‘팔굉일우八紘一宇’란 일대 이상 그 자체를 오히려 스스로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인류로서, 그들은 본래 양심상 이를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궤변을 구사하며 운위云하기를, “그런 초국가적이고 초민족적인 시대는 아마 영원히 도래하지 못할 것”이라 한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런 이상을 내걸고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라도 교화할 수 없기가 동물과 같다면 그걸로 끝장인 것으로, 가르칠 수 있을 때 가르치고 또 가르쳐 인간을 이러한 경지로 이끄는 건 결코 불가하지 않다. 원시인들이 교육과 경험을 통하여 어떤 식으로 오늘날의 문명인으로 거듭나게 되었는지를 짚어본다면, 이 뜻은 반쯤 전해지지 않을까.

  그러니 따지고 보면, 그들과 나 사이의 의견충돌은 비관과 낙관 사이의 충돌인 셈이다. 그들은 인간을 교화할 수 없는 동물로 보았고, 나는 교화할 수 있는 동물로 보았으니 그들은 음울한 이 세상의 현상을 보면서 구제할 수 없는 걸로 보고 그 극단에 위치한 인류의 자멸도 피할 수 없다고 본 반면, 나는 가능한 한 명랑하게 세계의 미래에 기대를 걸고, 인류를 상대로 그 어리석음을 자각시키며 그들을 더 높은 경지로 인도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들은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내 위에 군림하고 있는데. 그들은 나로 하여금 구체적인 말을 할 수 있도록 두질 않으며,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할 말을 못하도록 만든다. 그 결과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개개의 개인들은 유행에서 멀어져 더 이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게 되었다. ‘전체주의全體主義’ 아래에서 생활하면서, 적극적인 개인주의 대신 소극적 개인주의로 타락해 미래를 향한 광명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다.
(쇼와 16년=1941년 8월)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470
384
411732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