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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류 유유] 정의로운 나라와 인생正義の國と人生 아오조라문고



  패전 이전 일본의 ‘최후의 저항 언론인’으로 평가받는 키류 유유桐生悠々가 필화사건으로 언론계에서 퇴출당한 후 호구지책 겸 자기주장의 매체로서 발간하기 시작한 회지《타산지석他山の石》1939년 9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2년 전에 발발한 중일전쟁, 1년 전부터 시행된 국가총동원법에 이어 만주국=몽골 국경에서 노몬한 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과 폴란드&영국ㆍ프랑스의 관계가 일촉즉발로 치달은 끝에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2차대전이 막 시작한 시점(이 글을 쓸 당시 저자는 2차대전 발발을 몰랐음)에서 쓴 이 글에서 키류는 갈수록 파국으로 향해가는 일본, 세계를 목도하면서도 어떻게든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려는 시도를 하였던 것 같습니다.




  막심 고리키의 소설 <밑바닥>에 등장하는 기이한 노인 루카의 말에 따르면, 시베리아에 ‘대단히 가난하고 비참한 일상을 살던’ 어느 사내가 ‘정의로운 나라’를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 정의로운 나라에는 ‘특별한 인간’들이 살고 있으며, “훌륭한 인간들만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어떤 사소한 일에도 상호 협력하는” 나라라고 했다. 그렇기에 이 사내는 정의로운 나라를 찾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안 그래도 가난했던 그는 이 때문에 더욱 더 가난해져, 결국 “누워서 죽음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낙담하지 않으며 어딘가에는 분명 ‘정의로운 나라’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채, 그곳에 가기를 원했다.

  어느 날, 이 시베리아에 한 학자가 흘러들어왔다. 그 남자는 잽싸게 학자를 찾아가 “정의로운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주시고, 어떻게 하면 거기 갈 수 있는지도 알려 주시오.”라고 부탁했다. 학자는 곧장 서적을 펼쳤다. 지도를 폈다. 찾고 또 찾았지만 정의로운 나라란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온갖 것들이 빼곡히 적힌 책 속에서도 정의로운 나라라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학자는 이러한 사실을 그 사내에게 이야기해 주었으나 그는 쉽사리 승복하려 들지 않았다. “분명히 있을 테니 제발 다시 한 번 찾아봐주시오. 만에 하나 정의로운 나라가 귀하의 지도와 책에 실려있지 않다면, 그 지도와 책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오.” “나는 오늘까지 온갖 괴로운 체험을 하면서 참고 살아왔지만, 그것은 필경 정의로운 나라가 존재한다는 걸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소.” 그런 게 없다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면서 분개하고 또 분개하던 그는 “이 양아치 새끼. 학자라는 이름이 아깝다. 이 좆같은 놈!”이라 소리치며 학자를 두들겨 패고는, 집으로 돌아가 XX XX XXXX.(역주 : 대략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미. 자체검열. 아래에도 동일)

  이 사내도, 이 학자도, ‘정의로운 나라’가 지금의 공간상으로 볼 때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도는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나라’는 시간적으로 볼 때 언젠가는 지구상에 등장하겠지, 라면서 우리는 믿는다. 이를 믿지 못한다면 우리들 역시 위의 남자와 마찬가지로, 살아갈 수 없지 않을까? 어느 정도의 시일을 요할 터이다. 그러나 그 시일이라는 건 길고, 또 긴 시일일 터다. 수억 년 정도의 천문학적인 시일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이기에 그저 이를 기다리기만 하는 건 중생, 즉 민중의 입장에선 감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석가모니는《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이를 공간적으로 설명하며 “종시 서방 10만 억 불토의 세계를 극락이라 일컫는다.”고 했던 것이리라.

  ‘정의로운 나라’의 일명은 ‘극락極楽’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크리스트교에서 말하는 ‘천당天堂’이기도 할 것이다.

  원시적인 종교는 그 ‘극락’ 내지 ‘천당’을 내세, 즉 사람이 죽은 후에 존재하게 될 곳으로 규정하며 이를 믿고 있다. 그러나 죽은 후 그 세상을 목도하고 와서는 다시 태어나서 그곳의 모습을 증언한 자는 없다. 근대과학 역시 이를 증명하지 못한다. 사후에도 영혼, 즉 인격이 남아서 존재하리란 건 천문학자 프랑마리온도 신봉하고 있던 바이나, 이와 같은 신앙으로는 중생에게, 민중에게 들이댈 수 없다. 그렇기에 근대적인 종교는 이를 ‘장래의 인간세상에서 실현되고야 말 일’이라 설명한다. 좌우지간 그렇게 설명하는 쪽이 수용되기엔 쉬울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정의롭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지만, 인간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언젠가, 설령 그것이 천문학적인 숫자가 흘러간 후의 언제가 되더라도 반드시 도래하고야 말 거라는 설명을 들으면 어찌됐든 우리는 이를 신봉할 수 있게 된다. 실제의 지구에서는 몇 만 년, 몇 십만 년을 기다려도 그런 완전한 상태가 도래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주어진 조건에 따라선’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단언할 수도 없긴 하다.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하여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조건條件’이 필요해진다. 그리고 이 ‘조건’이란 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니다. 개개인의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진화한다. 진화의 법칙을 따라 천천히 변화漸化한다. 이러한 진화와 점진적 변화의 어느 단계에선 그 행위가 인간에게 불행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둔다면 비관할 필요는 없다. 단지 이와 같은 경우, 불행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면 안 된다. 이 불행함을 행복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있기 때문에 인생에 의의가 생기고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나락으로 떨어지리라는 걸 감지하면 다른 길을 걸어야 한다. 다른 길을 택하는 게 여의치 않다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를 개척하는 것마저 불가능하다면, 필사적으로 달려가 비행기에라도 올라타서 이 나락에서 뛰쳐나갈 필요도 있다.

  역사에 필연성必然性이란 없다. 역사란 건 바로 인간 행위의 결과물이다. 인간 노력의 기록이다. 인간이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갖고서 선한 쪽이 됐든 악한 쪽이 됐든 기록을 남겨온 서적이다. 그러한 자유의지를 갖고 환경을 정복하는 데 성공한 인간들과 민족들이 지금 번영을 누리고 있고, 미래에도 번영할 것이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성취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다. 약하지 않기 때문에 몇 만 년, 몇 억년 후처럼 그것이 천문학적 숫자가 될지라도 머나먼 장래에는 ‘정의로운 나라’, ‘극락’, ‘천당’을 건설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 그런 곳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XX XX 죽을 필요는 단연컨대 없다. 그런 나라는 학자가 갖고 있던 지도와 책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인간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이상 속 지도와 책에는 명백히 적혀 있다.

 『발이 땅에, 아니 땅이 아니라도 무언가에 속박되어 있다면 하늘로는 올라갈 수 없다. 공간 속에서 조심스럽게 걷는 자가 시간 속에서 비약할 수는 없는 법이다.』

  동서양을 구분 짓고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장벽을 쳐온 자들(역주 : 당시 시대상황과 저자의 성향을 감안할 때 나치 독일 내지 소련 중 하나. 내지는 둘 다로 추측함)의, 그간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쇼와 14년=193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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