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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트마 간디] 칼의 교의劒の教義 아오조라문고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1920년 신문기고문을 일본 번역가 후쿠나가 키요시福永渙가 1930년에 번역했고, 아오조라문고青空文庫에 2007년 올라온 후쿠나가의 번역글을 제가 다시 번역한 중역글입니다.


(사진 출처 : 영문 위키피디아 'Mahatma Gandhi')


  - 폭력이 지배하는 현대에는 종국에 폭력이 최상의 권력을 지닌다는 법칙을 세인들이 거부할 수 있다곤 누구도 생각할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설령 일반에 폭동이 터지더라도 ‘비협동’의 진행이 방해받아선 안 됩니다.”라고 충고하는 편지가 내게 익명으로 날아들어 온 것이리라. 그런 한편으로 어떤 자는 내가 비밀리에 폭동을 획책하고 있을 거라 제멋대로 단정 짓고서 “공공연히 폭력을 선언하실 기쁨의 시기”가 언제일지를 질문하러 찾아오더라. “영국인들은 공공연한 수단이든, 비밀스런 수단이든, 폭력 이외의 그 어떤 수단에도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그런 자들은 내게 이야기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나(간디)는 절대 본심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인도인 중에서 가장 속이 검은 인간”이라며, 내가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폭력을 신앙하고 있으리란 건 한 점의 의문도 들지 않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칼의 교의가 대다수의 인류를 지배하고 있음이 이와 같다. 그리고 ‘비협동非協同’의 성사는 주로 폭력의 유무에 달린 바로, 이에 관한 나의 의견이 적지 않은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줄 것을 알기에, 나는 내 자신의 의견을 가능한 한 명료히 서술하겠다.

  만약 찌그러져 있는 것과 폭행을 벌이는 것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폭행을 하라고 권하겠다. 그렇기에 내 장남이 1908년, 내가 습격을 당해 거의 죽다가 살아났던 때를 이야기하며 “제가 그때 그곳에 있었다면 아버지를 버리고 도망쳐야 했을까요? 아니면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완력을 동원해서라도 아버지를 지켜내야 했을까요?”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완력을 써서라도 나를 지키는 게 너의 의무였으리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내가 ‘보어 전쟁’, 그리고 속칭 ‘줄루 반란’과 이번의 (제 1차) 세계대전’에 참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폭력적 수단을 신앙하는 부류에게 내가 “무술연습을 열심히 하십시오”라 권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나는 인도가 찌그러져 있으면서 스스로가 받는 불명예를 걷어치우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침상을 눈물로 적시기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봉기를 하길 바라는 사람이다.

  하지만 비폭력은 한없이 폭력보다 우월하며, 인정은 징벌보다 남자다운 거라고 나는 믿는다. 인정은 무인武士을 장식해 준다. 물론 인정은 남을 징벌할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이다. 힘없는 약자가 베푸는 인정은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지금 막 고양이에게 잡아먹히려는 생쥐가 고양이에게 인정을 베풀 순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이어 장군과 그 일파의 사람들이 그들이 저지른 죄업에 합당한 징벌을 받아야 한다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들은 마음 같아선 다이어 장군을 갈갈이 찢어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이 정말로 무력한 약자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단지 나는 인도의 저력과 내 자신의 저력을 보다 선한 목적에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내가 하는 말을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힘은 육체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불요불굴의 의지력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일반적인 줄루인들은 체력적으로는 일반적인 영국인들보다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그러나 줄루인들은 영국인 소년만 봐도 벌벌 떨며 피해 다닌다. 이는 그 소년이 차고 있는 권총 때문이거나, 그 소년을 위해 권총을 발사해 줄 또다른 누군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그 결과 덩칫값을 못 하고 겁이 많은 것이다.

  우리들 역시 이 인도 땅에서 10만 영국인이 3억의 인도인을 굳이 위협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걸 직접 체감하고 있으리라. 그렇기 때문에 단호한 인정이 우리들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적인 인정과 함께, 다이어나 프랭크 존슨 같은 자들이 경건한 인도인들의 두부頭에 두 번 다시 그런 모욕을 가하지 못하도록 할 강대한 힘의 물결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현재 내가 나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건, 내겐 별다른 문제가 아니다. 우리들이 분노하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이 짓밟혀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하지만 나는 “인도는 징벌의 권력을 휘둘러야 보다 많은 실익을 얻을 수 있다.”고 공언하는 걸 자제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세계를 향해 행할 수 있는 보다 바람직한 사업과, 세계에 내세울 수 있는 보다 선한 사명을 갖고 있다.

  나는 몽상가가 아니다. 나는 실천적 이상가이고 싶다. 비폭력이란 종교는 그저 성스런 무리들이나 현자의 전유물이 아닌, 극히 보통의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폭력이 동물의 법칙인 것처럼 비폭력은 인류의 법칙이다. 동물의 경우 그저 체력의 법칙만을 알고, 나머지 하등의 법칙을 모르는, 정신이 잠들어 있는 생물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그보다는 더욱 더 고차원적 법칙인 정신력을 따를 필요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연히 인도 땅에 자기희생이라는 고루한 법칙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왜냐면 ‘사티 아그라하(진리의 파악과 진리의 힘)와 그로부터 태어나는 ‘비협동’, ‘시민 불복종’이란 ‘수난의 법칙’에 새로이 이름을 붙인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비폭력의 법칙을 발견해낸 성자들은 뉴턴보다 위대한 천재들이었다. 웰링턴보다 위대한 전사들이었다. 무기의 사용범위를 알고 있던 그들은 그것의 쓸모없음을 깨닫고, 고뇌하는 세계를 향해 구원은 폭력이 아닌 비폭력에서 온다고 가르쳤다.

  동적 상태에서의 비폭력이란 곧 의식적인 수난이다. 이는 악을 행하는 자의 의지에 얌전히 복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들의 모든 정신을 총동원하여 압제자의 의지에 반항하라는 의미다. 인류가 이 법칙을 따라 행동을 한다면 일개인일지라도 능히 부정한 국가의 모든 권력에 항거해 그의 명예ㆍ종교ㆍ영혼을 구하고, 국가의 몰락 내지는 재생의 기틀을 닦을 수 있게 되리라.

  그러므로 나는 “인도가 약하기 때문에 비폭력을 실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인도가 그 힘을 자각하고 비폭력을 실천하길 바란다. 인도가 스스로의 힘에 자각하는 데는 하등의 군대식 훈련도 필요 없다. 자기 자신이 까딱 잘못하면 한 덩어리의 고기토막에 불과한 존재가 되어버린다고 우리가 생각하고 있기에 그런 것들의 필요성을 믿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인도가 온갖 물질적 약점을 초월하고 개가를 올려, 전세계적인 물질적 결합을 멸시할 수 있는 불멸의 영혼을 갖추고 또 자각하기를 바란다. 원숭이 떼를 몰고 다니는 라마라는 한 인간이, 랑카의 기세에 보호받던 머리 열 개가 달린 라반의 힘에 저항했다는 성전 속의 이야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정신력이 물질력을 정복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실행가의 입장에서, 인도가 정치계에서 그들의 정신생활 실행력을 인정받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지는 못하겠다. 인도는 스스로가 무력하다고 생각하면서 영국인의 기관총ㆍ탱크ㆍ비행기 앞에 한껏 위축되어 있고, 그런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 때문에 나의 ‘비협동’을 채용한 것이다. 이 ‘비협동’은 이 목적에 기여할 것임이 분명하며, 충분히 많은 인도인들이 이를 실천하는 단계에 이르면 영국의 부정한 괴롭힘으로부터 인도를 해방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이 ‘비협동’을 아일랜드의 ‘신페인주의’와는 구분한다. 왜냐면 ‘비협동’은 폭력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전진하기를 용납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평화적인 ‘비협동’을 시험해보길 폭력지지파 사람들에게 권한다. ‘비협동’은 본래 연약한 것이기에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호응이 영 없을 경우엔 실패할 가능성 역시 있다. 그러나 그 때가 가장 위험한 타이밍이다. 국민적인 굴욕을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고결한 지사는 그 분노를 터뜨리고 싶어지고, 폭력에 호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도에선 그들은 그 자신과 조국을 무도한 처우에서 해방시키지 못한 채 숱하게 죽어나갔다.

  만에 하나 인도가 칼의 교의를 받아들인다면 일시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의 인도는 더 이상 내 마음 속의 자긍심은 아니게 되리라. 내가 인도에 애착을 느끼는 건 내 모든 것을 인도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도가 세계를 향한 하나의 사명을 타고났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인도는 맹목적으로 유럽을 모방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도가 칼의 교의를 받아들이는 때가 곧 나의 시련의 때다. 나는 그런 날이 도래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종교에는 지리적 한계가 없다. 그 신앙을 파악한 사람은 내가 인도에 갖고 있는 사랑을 능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생애를 내가 ‘인도라는 종교’의 근저에 위치하는 것이라 믿고 있는 비폭력 신앙을 매개로, 인도를 위해 헌신하는 데 바치려 한다.

  나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감연히 부탁하겠다. 나를 폭력주의자로 간주하고 폭동을 부추겨,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인 투쟁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치 말아주셨으면 한다. 나는 비밀을 증오하고 혐오하는 사람이다. 제군들이 시험삼아 ‘비폭력적 비협동’을 실천해본다면, 내가 하등의 숨기는 구석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영 인디아」, 1920년 8월 11일자 기고문)


덧글

  • 행인 2021/11/07 17:21 # 삭제 답글

    '칼의 교의'가 무엇인지 찾다가 올려주신 글을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간디의 기고를 읽어본 것은 처음이네요. 지식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3인칭관찰자 2021/11/08 14:27 #

    댓글 확인이 늦었네요 ^^;; 한산한 곳까지 찾아주셔서 저 역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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