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1921년 신문기고문을 일본 번역가 후쿠나가 키요시福永渙가 1930년에 번역했고, 아오조라문고青空文庫에 2007년 올라온 후쿠나가의 번역글을 제가 다시 번역한 중역글입니다.
출처 : 아오조라 문고

(사진 출처 : 영문 위키피디아 'Mahatma Gandhi')
나는 일전에 순력巡歷을 다니다 제복 입은 소년을 보고서, "그 제복은 어떤 옷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 제복이 외국산 옷감, 정확히 말해 외국산 나사(羅紗, 역주 : 양모에 무명ㆍ명주ㆍ견사 등을 섞어서 짠 옷감)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년들은 "이 옷은 (보이) 스카우트スカウツ들의 제복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대답이 내 호기심을 부추겼다. 나는 그들이 "스카우트로서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들은 "저희들은 신神과 국왕國王과 국가國家를 위해 활동합니다."라는 답을 했다.
"너희들의 국왕이 누구냐?"고 내가 묻자,
"조지 국왕(キング・ジヨージ, 역주 : 조지 5세)이십니다."란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자리앙와라 사건ジヤリアンワラ事件'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약 너희들이 1919년 4월 13일 그 현장에 있었다, 다이어 장군ダイヤー將軍으로부터 그대들의 겁먹은 동포들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어떻게 처신하겠느냐?"
"물론, 저희들은 그런 명령에는 따르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다이어 장군은 국왕이 정해준 제복을 입은 자가 아니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장군은 관청役所의 사람입니다. 저희는 관청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나는 "관청과 국왕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국왕은 대영제국大英帝國을 의미하는 비인격적인 이상적 존재"이며, "그 어떤 인도인도 영국과 신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는 등의 주장을 그들에게 설파했다. "계엄령제도라는 테러리즘의 책임을 물어야 할 국가, 악을 뉘우치지도 개심하지도 않는 국가, 엄숙한 의무를 파기하고 비밀조약을 맺는 이런 국가는 신을 갖지 못한 국가에 불과하다. 이런 나라에 충성을 바치는 건 신에 대한 불충不忠實이다."고 했다.
그 소년은 당혹해했다.
나는 논의를 이어나갔다. "우리나라가 나라를 살찌우기 위해 무신론적으로 행동하고, 타국의 인민을 이용하고, 주정酒精을 수입하고, 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그 권력과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사기를 치고 있는데도, 어째서 우리들은 이와 단절하지 못하고 신과 국가에 모두 충실할 수가 있겠느냐. 우리들은 신을 위해 국가를 내던져야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제군들은 신에게만 충성을 다해라. 그 외의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동일한 의미의 성심을 바쳐서는 안 된다."고 설파했다.
이 소년의 수많은 벗들이 이 이야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윽고 그들의 대장이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 앞에서 내가 했던 주장을 다시 한 번 반복한 후, "귀하가 지도하는 소년들의, 매사에 의문을 품기 쉬운 마음을 부디 잘 자극해 주시오."란 부탁을 했다. 흥미로운 논의는 끝나지 않았으나, 기차는 정차장에서 발차해버렸다. 나는 훌륭한 소년들을 내심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리고 '비협동 운동非協同運動'의 깊은 의미를 한층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에겐 오로지 단 하나의 보편적인 신조信條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신을 향한 충성이다. 그리고 그 신조는 모순이 일어나지 않는 한 국왕ㆍ국가ㆍ인간도덕人道에 대한 충성까지도 포괄한다. 그러나 이는 왕왕 다른 모든 가치를 제외시키기도 한다.
나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본인의 신조를 곱씹어보면서, 혹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느끼면 이를 바로잡기를 원한다. 젊은이들의 정신이 연구를 감당할 수 없을 틀 속에 갇혀버리는 건 작은 문제가 아니다.
(「영 인디아」, 1921년 3월 23일자 기고문)
덧글
바로 옆인 미얀마의 아웅산 장군도 그렇지만 후세에 그 나라 매국노만이 아니라 독립투사로 분류되는 위인들도 한때나마 일본과 손을 잡은 경우를 보면 약간은 복잡한 기분이 들긴 하더라구요.
딴 얘기지만, 기고문에 나와있는 뻔잡 주지사였던 오드와이어(Sir Michael O'dwyer)는 아일랜드 출신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이 아닌 다른 일본 식민지에서 제일 악랄했던 것이 일본인 밑에서 일하던 조선인이었다는 맥락의 글을 볼 때마다 제일 악랄한 제국인으로 일컬어지는 또다른 '외지인'인 오드와이어를 떠올리곤 합니다.
이건 좀 관계없는 얘기이긴 합니다만,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만약 그 시대에 그곳에 있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 것인가.
말씀대로 일본에선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 협력하거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았던 사람 중 지금도 그 나라에서 위인대접을 받는 인물을 부각시켜서 자기들이 그들을 도왔다는 걸 강조하는 경우가 많지요.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도 그렇고. 아웅산은 나중에 총부리를 일본에 돌린 것 때문에 묘하게 냉담한 것 같습니다만...
네루와 간디는 역시 일본군에 의한 인도 해방에 회의적이었군요. 네루가 쓴 세계사 책에도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는 열강국가를 하나 더 만들어주는 걸로 끝났고 일본의 첫 번째 희생양이 조선이었다'고 냉정하게 적혀있던 걸 생각하면 확실히 네루는 일본에게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 같긴 했습니다. ^^ 오드와이어가 아일랜드 사람이었다는 게 놀랍네요. 한창 아일랜드 독립투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을 시기가 저땐데 그는 대영제국의 관리가 되어 인도의 민족운동을 억압하는 길을 선택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