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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와이 에이지로] 2.26 사건에 대해 아오조라문고



  쇼와 초기를 대표하는 자유주의自由主義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도쿄대학 경제학 교수 카와이 에이지로河合栄治郎가 학내신문에 기고했던 2.26 사건 논평글입니다.

  영국식 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은 그는 타이쇼 교양주의의 법통을 옹호하며, 당시 지식인ㆍ학생들을 중심으로 급격히 세력을 불리고 있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 교양주의 계열 지식인답지 않은 특유의 강단으로 어마어마한 탱킹을 해가며 反 공산주의 논전論戰의 선두에 서서 활약했습니다.

  만주사변 이래 급속도로 현실정치에 간여하기 시작한 ‘정치군인政治軍人’들이 초래할 군국주의 역시 경계하고 있던 그는 꾸준히 ‘군 파시즘’을 비판하면서, 특히 당국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공산주의자들이 궤멸당한 1930년대 초중반 이후론 주로 정치군인들ㆍ그에 영합하는 세력과 싸우며 맹렬한 논전을 벌였으나, 미노다 무네키蓑田胸喜 등의 극우성향 교수들이 제기한 필화사건筆禍事件에 휘말리면서 결국 도쿄대학 교수직에서 파면당했습니다.

  끝까지 파시즘에 저항했다는, 당시의 일본 지식인에겐 보기 드문 투사鬪士 이미지 때문에 지금도 오른쪽으로는 자민당, 왼쪽으로는 사회당 계열의 인사들까지(단지 일본공산당만은 생전 공산당을 극딜했던 카와이에게 호의적이지 않음. 뭐 이쪽엔 지금도 '반파쇼투쟁의 투사'라 치켜세우는 당시의 일부 지하투쟁 그룹이라든가, 비전향 정치범 복역자들이란 '영웅'이 따로 있기도 하니) 그들 나름의 재해석을 해가면서 은근히 자기편으로 엮으려 드는(그 아베 신조까지도) 인물이기도 합니다.




  1. (1936년) 2월 20일의 총선거総選挙에서 국민 다수가 파시즘을 반대하고 파시즘에 대한 방파제防波堤로 오카다 내각岡田内閣을 옹호했으며, 더 나아가 무산자당을 원내에 진출시킴으로써 그 의지를 가장 인상적으로 표시한지 고작 며칠 만에 발발한 2.26 사건은, 중요한 지위를 점하고 있던 몇 명의 인물을 습격한 후 끝내 정변을 야기했다.

  2. 우선 우리는 잔혹한 총검銃劍 아래 쓰러진 사이토 내대신(斎藤内大臣, 마코토実)ㆍ타카하시 재무대신(高橋大蔵大臣, 코레키요是清)ㆍ와타나베 교육총감(渡辺教育総監, 죠타로錠太郎)에게 마음 속 깊이 조의를 표해야만 할 의무감을 느낀다. 하마구치 오사치浜口雄幸ㆍ이노우에 쥰노스케井上準之助ㆍ이누카이 츠요시犬養毅 등 몇 년 전부터 폭력으로 희생당한 정치가가 적지 않긴 했으나, 그들이 쓰러졌을 때만 해도 아직 그들에게 반대하는 사상이 무엇인가가 명백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들의 죽음은 문자 그대로 “예기치 못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5.15 사건 이후 파시즘, 특히 군 내부의 파시즘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번에 재앙을 맞이한 몇 명의 인물들은 이러한 파시즘적 경향에 거역하려는 의식과 목적을 갖고서 어쩌면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다가올 죽음과 마주하며 목숨을 바쳐 파시즘의 조류를 저지해보려 했다. 필자는 위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며, 그 사람들에 대해 필자가 알고 있는 한도에서 말하자면 그들과는 전적으로 같은 사상을 지녔다곤 할 수 없다. 그러나 파시즘에 항거하였다는 한 가지 면모에 한하자면, 그들은 우리들의 오랜 동지이다. 자칫하면 퇴영하여 자기보신에 급급하기 쉬운 노령의 몸으로 위험을 자각하면서도 그 소신을 지킨 이들이 불행히도 흉도凶刀 앞에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형언하기 힘든 심각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걸 느꼈다.

  3. 파시즘의 가장 잘못된 점이라면 일부 소수의 무리가 폭력을 행사하여 국민 다수의 의지를 유린하려 한다는 데 있다. 국가에 대한 충성ㆍ애국심으로 봐도, 국정에 대한 식견으로 봐도, 생사를 돌아보지 않고 소신을 관철할 수 있는 용기로 봐도 그들만이 그러한 미덕을 독점적으로 소유한 건 아니다. 우리들은 그들의 사상이 천하의 단상에서 토의되었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으며, 더군다나 우리가 그들에게 패배하였다는 기억은 더더욱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어떤 근거가 있기에 그들은 독단적으로 자기들의 주장을 감행하는 것일까.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저 그들이 폭력적인 수단을 갖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그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밖에 없다. 그러나 우연히 폭력적인 수단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어찌 그것이 자기만의 소신을 밀어붙이는 근거가 돨 수 있는가. 우리를 대신하여 사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며 일부 소수의 사람들만이 무기 소지를 허가받고 반대로 우리들은 법률규정에 따라 무기 소지를 금지당하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편안히 잠들고 있을 때 무기를 들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 다수의 의지는 아예 없다는 듯이 짓밟히게 되는 거라면, 일단 공평한 폭력적 수단을 출발점에 두고서 우리들의 승패를 가리는 것만 못하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수단은 그릇되었을지언정 그 목적이 진보적革新的이니만큼 책망할 수 없다.”고. 그러나 그들의 목적이 결국 무엇이었냐는 건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명시된 바가 없다. 어딘가 진보적이라는 인상을 주면서도 그 정체가 모호하다는 점이 바로 파시즘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비결인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방향조차도 알아보려 하지 않고서 어제는 공산주의에 광분했다가 오늘은 파시즘에 경도된다. 냉정한 이지적 판단을 망각한 현대가 낳은 특이한 병폐病弊라 하겠다.

  4. 본래 국군은 외적에 맞서 우리나라 국토를 방위하라는 임무를 부과받아, 국군이 있는 만큼 국민은 스스로 무기를 버리고 안심하고 그들에게 국토방위를 맡기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국군은 짊어지기 벅찰 정도의 중대한 사명을 맡고 있다. 장병이 정치가로 둔갑할 정도로 국군이 할 일이 없다는 것일까? 혹시 그들 본연의 임무인 국방을 도맡을 수 없을만한 사정이 있는 거라면 진지하게 그 사정을 호소하여 별개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일본국민은 그런 말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조국의 사정에 냉담하고 무관심하진 않으며, 만약 그들이 국방 충실이라는 특수한 임무에서 일탈하여 일반적인 국정에 참견하려 한다면,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생활환경으로 볼 때, 결코 그들은 충분한 자격요건을 구비하였다고 평할 수가 없다. 군인은 군인 특유의 관점에 제약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군인이 그 본업을 일탈하여 쓸데없는 짓에 분주하는 그 자체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나,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군인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한 결과 혹시 다시 한 번 전쟁의 위기가 찾아온다면, 그 때 국민들은 “전쟁이 과연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과연 누구 때문에 생긴 결과일까.” 하면서 의혹을 품게 되리라는 점이다. 국가의 운명에 위험이 닥쳤을 때, 거국만심挙国満心의 결속을 필요로 할 때, 이러한 의혹만큼이나 장애가 되는 것도 없으리라.

  5. 1천 몇 백 명의 장병들을 칙명에 거스른 반란군叛軍으로 만든 건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사건은 오늘 아침에 갑자기 벌어진 게 아니며, 원인을 따지자면 먼 곳에 있다. 만주사변滿洲事變 이래 득세하기 시작한 파시즘에 맞서, 만약 군부軍部에 인물이 있었다면 일찌감치 영단을 내려 이를 억제抑止해야만 했다.

  “국군의 본업이 국방에 있는가 다른 데 있는가.”, “정치는 국민의 총의에서 비롯되어야 하는가 일부 소수의 폭력에서 비롯되어야 하는가.”는 극도로 대립된 견해이며, 그 사이엔 어떠한 타협도 영합도 용납될 수 없다. 대립되는 견해 중 한쪽을 취하겠다면 그 소신所信을 관철貫徹해야 할 것이다. 소위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 그때그때마다 지위를 내려놓는 정도론 본래 의미에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다. 만약에 이 기회를 이용해 발본색원의 영단을 내릴 수 있는 움직임이 국군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런 불상사는 몇 번이라도 반복되어 일어날 것이다.

  6. 좌익전선이 십 수 년 동안 무의미한 분열항쟁으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한 끝에 드디어 폭력혁명주의를 청산하고 통일전선을 형성하려 하는 지금, 우익진영에선 여전히 폭력주의暴力主義의 미몽이 드리워져 있다.

  지금 국민들은 “국민의 총의냐? 일부의 폭력이냐?” 하는 양자택일의 분기점에 서 있다. 최선의 과제인 이 문제를 확립함과 동시에 사회 진보革新를 이뤄낼 수 있을만한 정당과 인재를 의회로 보내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2.20 총선거는 그 자체로 보면 아직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의 결과는 아니지만 일본의 여명은 이 총선거로부터 찾아오리라. 여명은 급작스럽게 불어온 요사스런 구름에 의해 잠시나마 가려졌지만 우리들의 희망찬 앞날은 여전히 여기에 걸려 있다.

  요즘 인텔리들로부터 “그들의 폭력 앞에 우리들은 너무도 무력합니다.”라는 토로를 왕왕 듣곤 한다. 그러나 그런 무력감 속에는 은근히 폭력을 찬미하게 될 위험한 심리가 내포되어 있고, 그것이야말로 파시즘을 양성하는 온상이라 하겠다. 폭력은 한 세대를 지배하는가 싶어도 결국 그 자체의 자괴작용에 의해 와해된다. 진리는 한 번 땅에 떨어지는 일이 있을지언정 신께서 주신 영원한 시간은 바로 진리의 편이다. 그런 신념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무기이고, 이런 무기가 있기에 우리들은 폭력 앞에서도 의연하게 설 수 있는 것이다.

(제국대학신문193639일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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