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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위키 번역] 부젠 토호 잇키豊前国人一揆 ┗ ウィキペディア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본 통일에 저항한 자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한 인물ㆍ세력들 위주로 올리는 일본위키 번역의 다섯 번째 포스팅입니다. 아래의 제 번역글을 퍼가시는 건 자유입니다, 단 퍼가실 때 그 출처를 정확히 적어 주셨으면 합니다.


원문 링크 : 부젠 코쿠진 잇키(일본 위키피디아 2017년 7월 25일 버전)

  부젠 코쿠진 잇키란,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에 부젠 주豊前国에서 발생한 토호 잇키다.


지도상에 빨간색으로 칠해진 부분부젠 주(지금의 후쿠오카 현 동부ㆍ오이타 현 북부)
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豊前国'


  개요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큐슈 정벌九州征伐 이후, 부젠 주 북부는 모리 카츠노부(毛利勝信, 역주 : 요시나리吉成) / 남부는 쿠로다 요시타카(黒田孝高, 역주 : 칸베에官兵衛)가 영유하게 되었다. 기존의 토호집단 가운데 토요토미 씨에 신종臣從하겠다는 태도를 보인 자들은 대부분 본래 영지를 보장安堵받긴 했으나, 그 실태는 토호집단의 예상에 반反하는 것이었다. 즉 지금까지의 권익을 그대로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토호집단은 실제론 모리ㆍ쿠로다 두 가문의 배하에 놓여 그 봉록으로 영지를 할당받았을 뿐, 지금까지 누리고 있던 광범위한 시정권施政権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토호들 사이에 불만이 축적되어 1587년(텐쇼 15년) 10월, 드디어 부젠 주 최대규모의 토호영주인 키이 씨城井氏가 키이다니 성城井谷城에 농성해 반란反乱의 태도를 명확히 하기에 이르자, 부젠 주 내부에서 대규모의 토호 잇키가 발생하였다.

  그러나 말하자면 본래 그들 하나하나가 독립국가獨立國家였다고 할 수 있던 토호집단은 상호간에 연대를 하거나 조직적ㆍ전략적인 싸움을 추진하지 않았다. 잇키 세력의 소위 맹주盟主라 할 수 있던 키이 씨도 잇키 전체를 통괄統括하거나 지휘指揮하거나 할 입장에 있지 않았고, 명령을 한다 해도 그것은 강제력强制力을 지니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잇키 세력은 각개격파各個擊破를 당했고, 키이 씨의 항복降伏을 끝으로 종언終焉을 맞이했다. 그리고 모략謀略에 의해 키이 씨가 멸문당하면서 명실공히 부젠 토호 잇키는 진압鎮圧되었다.

  그리고 키이 씨의 동족인 우츠노미야 씨 일족宇都宮氏一族이라도 모든 집안이 잇키에 참가한 건 아니며(예를 들자면 시모게 군下毛郡 나가이와 성長岩城의 노나카 씨野仲氏는 참가했으나 우사 군宇佐郡 아오야마 성青山城의 사다 씨佐田氏는 참가하지 않았다), 우츠노미야 일족이 아니라도 잇키에 참가한 집안이 있었다.(예를 들자면 타가와 군田川郡 이와이시 성岩石城의 사사키 씨佐々木氏는 참가했으나, 우사 군宇佐郡 토키에다 성時枝城의 토키에다 씨時枝氏는 이른 시기부터 쿠로다 가문에 신종하였고 잇키 토벌에 가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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