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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210219 -《일본사는 이렇게 재미있어》中 독서



  한도半藤 : 대략 ‘에미시(蝦夷, 역주 : 일본 혼슈 토호쿠 지방東北地方의 선주민.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일본에 동화됨)’‘夷’ 글자는 이민족을 지칭하지요. 한편 ‘蝦’란 글자는...

  타카하시高橋 : “새우처럼 등을 웅크리고 지면을 기어다니듯 한다.” 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지요.

  한도 : 전쟁이란 건 그런 거지요. 상대를 자기들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죄의식 없이 침략하는 면이 있어요.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 때도 대일본제국大日本帝國 기록을 보면 동남아시아인들을 “토인土人”이라 지칭했죠. “토인을 진무鎭撫한다.” 는 식으로.

  생각해보면 아시카가 가문足利家도, 토쿠가와 가문徳川家도, 일본사日本史에서 높으신 분은 죄다 ‘세이이타이쇼군征夷大将軍’이었습니다. 이는 본래 조정이 에미시 정토蝦夷征討 목적으로 만든 직위役職였습니다만.

  타카하시 : 이 세상에서 적은 에미시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지요.(웃음) 타무라마로田村麻呂 이후로 그것은 무사武士의 중요한 역할로 자리 잡았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만은 당시에 대립하고 있던 히라이즈미平泉의 후지와라노 히데히라藤原秀衡보다 상위에 서기 위해 의식적으로 세이이타이쇼군 자리를 원했던 거지만요.

  한도 : 천하天下에 뜻을 둔 무장武將들은 모두 이 자리를 원했지요. 히데요시秀吉 같은 경우 이에 실패하고 칸파쿠関白가 되었지만.

  타카하시 : 일본의 치세자治世者들에겐, 어딘가 “토호쿠를 제압하는 게 일본을 통치하는 길이다.” 같은 의식이 있었던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건 전근대의 역사에 한정된 게 아니었습니다. 보신전쟁戊辰戰爭이 끝나고 메이지 시대明治時代가 시작되었을 때, 메이지 텐노明治天皇가 처음으로 순행巡幸하려 했던 곳이 토호쿠였습니다. 메이지 텐노는 토호쿠를 순행하며 비로소 ‘일본 전토를 통치하게 되었구나.’ 란 자각을 했으리라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그때 메이지 텐노는 스스로를 세이이타이쇼군에 견주어보았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순행 당시, 메이지 텐노는 ‘츠보의 석문都母の石文’을 보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츠보의 석문’이란 타무라마로가 에미시를 정벌했을 때「일본중앙日本中央」이란 글자를 화살촉矢尻으로 새겼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아오모리 현 노베시野辺地에 있다고 전해졌지만 그때는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였죠. 그렇기에 “이래서는 안 된다.” 며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가 아오모리 현 지사青森県知事에게 지시를 내려, 대대적인 발굴조사發掘調査를 벌이도록 했죠.

  한도 : 그래서 찾아냈습니까?

  타카하시 : 네. 지금은 아오모리 현 카미키타 군上北郡 토호쿠 쵸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아마 텐노 가문에는 그러한 비석이 있다는 이야기가 대대로 전해 내려왔겠죠. 드디어 자기들이 이 나라의 권력을 되찾았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그 비석이 중요했던 겁니다. 하지만 토호쿠 사람들은 메이지 텐노가 가장 먼저 토호쿠로 순행을 와 준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했지요. 텐노가 머무른 장소에 비석을 세우고, 텐노가 묵고 있던 숙소를 성심껏 지키고... 정말로 애처로울 정도로 역사가 봉인되어 있었던 겁니다.

출처 : 한도 카즈토시半藤一利 編著,《日本史はこんなに面白い》p.46 ~ 48. 文藝春秋, 2008.


  위 책의 故 한도 카즈토시 씨와 소설가 타카하시 카츠히코高橋克彦 씨의 대담에서 발췌했습니다.

  타카하시 카츠히코 씨는 에도가와 란포 상 / 나오키 상 등을 수상하신 일본의 유명한 추리 / 역사 / 미스터리 소설가분으로, 역사 부문에서는 일본 중앙정권에 항거한 토호쿠의 위인들(아테루이アテルイ, 아베 씨安倍氏, 오슈 후지와라 씨奥州藤原氏, 쿠노헤 마사자네九戸政実 등등)을 부각시키고 재평가한 소설들을 많이 집필하셨습니다. 1993년 NHK 대하드라마《불 타오르다炎立つ》와 2001년 NHK 대하드라마《호죠 토키무네北条時宗》의 원작 작가분이시기도 합니다.

  타카하시 씨의 저서 중, 데뷔작인《샤라쿠 살인사건》(도서출판두드림), 나오키상 수상작《붉은 기억》(네오픽션),《전생의 기억》(네오픽션) 등은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으나 지금은 모두 절판된 상태입니다.


덧글

  • 남중생 2021/02/21 00:30 # 답글

    천황이 쇼군(정이대장군)이 된다니, 흥미롭네요...
  • 3인칭관찰자 2021/02/21 09:40 #

    타무라마로 같은 경우는 텐노의 권력이 아직 살아있던 시기에 조정의 주도로 쇼군에 임명됐고 충분한 컨트롤도 받고 있었기에 막부 개부 이래의 쇼군들과는 달리 '이 사람은 아군이다'는 생각도 들었을지도요.
  • BigTrain 2021/02/21 01:06 # 답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정이대장군 지위를 원했던 이유가 오슈 히라이즈미를 제압하기 위해서였단 사실은 또 처음 알았습니다. 후지와라노 야스히라는 정말 헛된 기대를 했던 거였네요.
  • 3인칭관찰자 2021/02/21 09:47 #

    대대로 진수부장군직을 세습하여 토호쿠 통치의 명분을 가지고 있던 오슈 후지와라씨에 대적하려면 요리토모도 그에 상응한 '토호쿠 토벌자'의 지위인 정이대장군 자리가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 함부르거 2021/02/22 15:23 # 답글

    메이지 덴노의 동북지역 순행이 그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흥미롭네요. 그보다는 아이즈처럼 마지막까지 관군에 저항한 막부파 번에 대한 위무가 우선이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 3인칭관찰자 2021/02/22 16:47 #

    사실 저도 역적 취급을 받던 토호쿠 사람들에 대한 위로가 우선 아니었겠나고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반항했던 과거의 적에게 누가 이 나라의 주인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려는 의도야 좀 있었겠지만 국가원수로서 관대함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더 컸을 것 같습니다.
  • 도연초 2021/02/26 13:48 # 답글

    도호쿠에 대한 지역차별(대표적으로 산토리 회장의 에미시 발언 사건)에 현지인이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천황의 방문을 유난히 영광스럽게 여겼던 것도 수백여년에 걸친 세월동안 '일본인'으로 동화되었건만 '일본인'으로 대우받지 못했던 설움이 한몫 했을지도 모릅니다.
  • 3인칭관찰자 2021/02/26 19:44 #

    일본의 중앙정권이 교체되는 시기에 높은 확률로 본보기성 막타를 얻어맞고 정치적으로 자주 무시되거나 불이익을 받아온 지역이라 한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소외받는데다 중앙에서 떨어진 춥고 척박한 곳에 입지해 있고, 혼슈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고, 10년 전엔 대지진+원발까지 여기서 터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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