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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시마 덴지] 애독한 책들과 작가들로부터 아오조라문고


 
아래의 제 번역글을 퍼가시는 건 자유입니다,
단 퍼가실 때 그 출처를 정확히 적어 주셨으면 합니다.
 
원제 : <愛読した本と作家から>


  <쿠로시마 덴지>(1898~1943)
  -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문학가. 빈농의 아들로서 겪은 시골 농촌의 현실과 시베리아 출병 때 의무병으로 종군한 체험을 주된 소재로 삼아 소설을 씀. 30대 초반부터 불치병으로 통하던 결핵을 앓아 고향으로 내려가 은거하였기에 당시 대대적으로 벌어지던 공산주의자 탄압은 피해갈 수 있었으나, 죽을 때까지 일제 특별 고등경찰의 감시하에 놓여 있었음.


  - 온갖 책들을 읽고는 잊어버리고 또 읽고선 잊어버리기를 부단히 반복한 결과 내 몸에 익은 건, 그 가운데 몇십 분의 1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게 당연한 것이리라. 그들 중에서도 독이 된 것들이 있으며, 독으로도 약으로도 쓸 수 없는 무가치한 것들 역시 있었다.

  배가 고플 때 육고기나 생선회를 먹다 보면 '이게 정말 내 피가 되고 살이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올 때가 있다. 무언가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게 만드는 작가, 서적은 좀처럼 드물다.

  내게는【톨스토이トルストイ】가 비료였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너무나 풍요로운 비료인지라 오히려 위험한 듯 하다. 지나치게 탐욕을 부려 비료를 너무 많이 빨아들인 보리는 영글기도 전에 새파란 모습 그대로 쓰러지고 썩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톨스토이라는 비료로부터 지나치게 욕심을 내어 이를 과하게 빨아들이다간 이쪽이 먼저 비료에 짓눌릴 수 있어 위험하다.

  나는 <세 죽음三つの死> 이란 생생한 시에 매료되었다.《안나 카레리나アンナ・カレニナ》,《부활復活》같은 것보다도《전쟁과 평화戦争と平和》를 좋아한다. 전쟁을 다룬 글 중에서 가장 애호하는 건《세바스토폴セバストポール》이다.《세바스토폴》에 그러진 전쟁은《전쟁과 평화》에 그려진 전쟁보다도 진실미의 농도가 순수하며 압도적으로 이를 능가하고 있다. 톨스토이 같은 고금무쌍古今無双의 천재도 자신이 직접 체험한《세바스토폴》과, 상상과 조사를 통해 집필한《전쟁과 평화》의 전쟁 사이에는, 급이 나뉘더라.

 《세바스토폴》에서는 실제로 현장에 있어보지 않은 자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이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가슴을 치게 한다.

 【프로스페로 메리메メリメ】는, 물처럼 서늘하다. 그리고 지극히 빈틈없이 둘러맸다 싶을 정도로 깔끔하다. 언제나 치고 때리고 서로 죽이니 살리니 하는, 낭만적인 이야기만을 집필한다. 그 어떤 소재로도 괘념치 않고 척척 집필해나가는 서늘한 그 태도를 나는 좋아했다. 인광燐光을 뿜어냈다 하겠다. '단편을 쓴다면 메리메의 작품 같은 단편을 쓰고 싶다' 고 자주 생각하였다.

  한때는【니콜라이 고골ゴーゴリ】과【몰리에르モリエール】를 톨스토이 이상으로 좋아했었다. 희곡이든 풍자문학이든 그걸로 사람을 웃기려 하거나 재미를 주려는 의도하에서 집필된 작품은 시시하다. 비극에 나올 법한 그 통절함, 온 몸으로 괴로워하는 모습을 희극으로, 풍자문학으로 표현할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특히 몰리에르 만년의《타르튀프タルチーフ》《인간 혐오자厭人家》같은 작품은 희극이라 해야 할지 비극이라 해야 할지 혼동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만큼 가슴을 울리는 정도도 깊고 강하다.

  고골과 몰리에르가 지닌 서늘한 정열과 증오심으로 지금의 부르주아지들을 폭로하는 희극을 쓴다면 그것이 가장 효과적일 거라 말하고 싶을 정도다. 우리들의 앞에는 고골과 몰리에르가 다루어줬으면 하는 소재가 득실득실하다.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을 쓰는 인간은 요즘 세상에 차고 넘치나, 진실로 펜을 잡고 부르주아지들을 짓부수려는 의기를 갖고 달려드는 자는 다섯 손가락에도 미달한다. 나는 톨스토이 / 고골 / 몰리에르(메리메는 별개로 두자)의 작품을 읽으면서 언제나, 그들은 그저 소설과 희곡을 쓰기 위해 펜대를 굴린 게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그 당대의 인간을, 생활을, 인생을 위해 분연히 펜을 잡았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사상과 입장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들이 펜을 잡는 태도만큼은 끝까지 모범으로 삼아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나는 갖고 있다.

  애독하였던 책과 작가는 이들 외에도 많지만, 지면 관계상 이 정도만 하겠다.

(1970년 8월 30일 1쇄가 발행된 치쿠마쇼보의《쿠로시마 덴지 전집 3》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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