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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하루오] 넥타이와 지팡이 아오조라문고



아래의 제 번역글을 퍼가시는 건 자유입니다,
단 퍼가실 때 그 출처를 정확히 적어 주셨으면 합니다.

원제 : <ネクタイとステッキ>


  - 넥타이 그리고 지팡이. 내가 절대 그런 물건들의 애호가가 아님에도 그렇게 둔갑시키는 것이 바로 천하의 가십이란 것이다.

  가십에 따르면 나는 3000개의 넥타이를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넥타이 한 개 가격을 5엔(역주 : 쇼와 2년의 1엔.... 어림잡아 지금의 1만 5천원에서 2만원 전후?)으로 잡고 3000개면 1만 5천 엔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 정도로 철두철미한 비상식인이 되지 못한다. 넥타이 3000개라는 것도 기실 '백발 3천장白髮三千丈' 부류의 수가 많다는 뜻을 형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만, 그렇다면 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넥타이를 소장하고 있느냐, 일일이 세어본 적은 없지만 대략 30~40개. 애초에 나는 그 어떤 물건이 되었든지 무언가를 수집하는 취미가 전혀 없다. 아니 얼마 전까지 없었다고 하는 쪽이 옳을지도 모르는 게, 최근에 들어 수집가라는 부류의 마음에 공감하는 바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수집하는 것보단 뿌리는 걸 더 좋아한다. 그렇기에 나는 넥타이 역시 많이 나눠주었다. 말하자면 남이 갖고 싶어하는 넥타이는 그대로 줘 버리는 경우 역시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내가 그것들을 남들에게 뿌리는 대신 차곡차곡 소중히 보관해 왔다손 치더라도 넥타이의 총수는 300개에 미달했으리라. 나는 15년 동안 양복을 착용해 왔으니, 15년간 300개의 넥타이를 구매했다는 건 딱히 도락道楽이라고 할 만한 범주에는 미달하지 않으려나?

  지팡이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아직 25엔보다 비싸게 나가는 지팡이를 구입한 적이 없다. 지금 소장하고 있는 지팡이는 3개로, 하나는 등나무 재질, 18엔을 주고 샀다. 또 하나는 대나무 뿌리 재질. 3엔 20전 짜리다. 올해 5월 벳푸別府에서 구입했다. 마지막 1개 역시 올해 여름 코야 산高野山에서(분명 1엔 20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남이 선물해준 것이다. 여행 중에도 나는 성가시다 생각하여 커다란 지팡이는 휴대하지 않는다. 그러다 손이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면 여행 도중에 구매한다. 그것도 값이 저렴하고 마음에 합하는 게 있을 때의 이야기다. 내가 갖고 있는 3개의 지팡이 중 어느 것도 그 흔한 은제 징銀の釘 하나 장식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이전에 딱 한번 마노 손잡이瑪瑙の握가 달린 지팡이를 구입한 적은 있었으나, 긴자銀座의 인파 속을 지나갈 때 뒤에서 걸어오던 인간이 이를 걷어차 지팡이를 놓쳤다는 느낌이 든 바로 그 때, 손잡이는 부서져 있었다. 지팡이를 걷어찬 놈은 전혀 이를 감지하지 못했던 듯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 사라졌다. 나는 그 자식의 싸가지 없음無作法과 무신경無神経함에 분개했는데, 이런 감정에 비해 망가진 지팡이를 아깝게 여기는 마음은 훨씬 미미하였고 사실 이 때 약간은 물려 있기도 했었다. 1개월만 더 멀쩡했다면 남에게 줘 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이란 건 모두 이와 같다. 별 것도 아닌 게 어째서 이런 가십을 낳고 말았는가 생각해보니, 나는 <그 일상을 사는 사람その日暮しをする人> 이란 단편에서 넥타이 등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리고 <염세가의 생일厭世家の誕生日> 이라는 단편에선 지팡이에 대해 언급했다. 어떤 식으로 언급했는가 하는 건 그 책을 읽어주십사 부탁드리고 싶다.

  사람들은 내가 쓴 글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 결과 어떤 바보는 "사토 하루오란 사내는, 같잖은 회사원이라도 된 양 넥타이에만 신경쓰더라." 는 냉소조차 되지 못할 소리를 의기양양하게 쑥덕거리며, 그들 자신의 저능함을 고백하였다.
 
  감히 말하건대, 내게도 당연히 취향好み이 있다. 넥타이는 물론이요 손톱에 낀 때의 양태에까지 취향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내가 임금님이었다면' 나는 스스로의 취향을 철저히 추구했으리라. 임금님이 아니기에 뭐, 한 개 3엔 내지 10엔만 주면 살 수 있는 넥타이나 지팡이 같은 것에 스스로의 취향을 주장하며 발휘하게 되는 것이리라. 안 될게 뭐 있겠나. 애초부터 겉치레를 꾸미지 않으려 한다면 그 선골仙骨 다움은 더욱 지극한 것이고, 남들 따라 치장을 할 때는 약간만이라도 그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줄 아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하다.

  나는 가십ゴシップ과 실질実際 사이의 간극을 호되게 뭐라 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오히려 3천 개의 넥타이와 1개 천 엔짜리 지팡이를 갖고서 누항陋巷에 궁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정말 예술가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발자크バルザック는 자신의 조끼 한 면에다 보석宝石들을 촘촘히 박아넣어 장식하고 다녔다지 않는가. 우스꽝스럽게도 나는 3천 개의 넥타이 가격에 미달하는 주택에 수납되어 차부ショファ로부터 오야시키(お屋敷, 역주 : '저택 주인' 정도의 의미?)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다닌다. 그러고도 한 시대의 문인文人 대열에 속할 수 있을까 자문자답自問自答하다 보면, 끝내 침묵沈黙하게 된다.


(《신쵸》쇼와 2년(1927년) 11월 1일)


덧글

  • 빨간콧수염 2022/01/09 02:03 # 답글

    사토 하루오가 누구더라, 라고 생각하다가 다자이 오사무가 떠올랐네요. 다자이 오사무가 한국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것에 비해 사토 하루오는 실제 위상과는 별개로 아는 사람만 아는 마이너 계열 같네요.

    넥타이와 지팡이 얘기는 무슨 얘기가 나올지 대략 짐작되면서도 계속 읽게 되는 맛이 있었습니다. 글쓴이의 주제도 공감가지만, 당시 넥타이나 지팡이가 생각보다 널리 쓰이는 것 같다는 인상에 더 사로잡혔네요.그건 영국 등의 서구권에서 영항을 받은 걸까 아니면 과거 일본의 문화가 서구화 과정에서 변형되어 온 걸까(예를 들어 과거 칼을 차고 다녔던 것과는 연관이 없는 걸까) 같은 생각이 가지를 뻗어나가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문가라면 이런 생각에 대해 터무니없다든가 어떤 연관성이 있다든가 하는 가지치기가 수월하게 되겠지만, 이런 것도 문외한의 도락이라는 차원에서 저한테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네요.

    마지막 문장은 어찌보면 뜬금없으면서도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이 되는 글귀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사람이 지지한 집단에게 지배를 당한 나라의 후손이란 걸 돌이켜보면, 집단과 개인의 구분, 시대상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네요.

    새로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의 글을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3인칭관찰자 2022/01/09 08:35 #

    제자였던 다자이에 비하면 한국에선 정말 마이너한 작가지요. 일본에서도 살아생전 문단원로급 지위를 누렸지만 지금 일본인들에겐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는 작가가 아니기도 하고요. 생전의 다자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멘헤라 작가' 취급을 받으며 문단 내에서의 위엄이 거의 없었다가 지금은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작가급으로 대우받는 것과는 대조적일지도요.

    분야의 전문가라면 넥타이나 지팡이가 일본에서 어떤 식으로 유행했고 일본인들에겐 어떤 의미를 지닌 패션으로 받아들였는지가 바로 정답으로 튀어나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분명 이것저것 생각하고 상상을 하게 만드는 재료를 제공하는 면이 있겠네요. 저도 이 댓글을 읽고 일본의 지팡이 문화가 어떨까 검색해보고서야 칼의 대용품으로 유행, 패전 이전까진 신사의 필수품으로 통용되, 었다는 걸 알고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지금의 가치관으로 보면 분명 한계도 보이지만 타이쇼, 쇼와 시대 초기의 문학계에서 화제를 뿌리며 대성한 사람이고, 수많은 제자들을 육성하기도 한 인물로 재능과 개성은 확실한 인물입니다.
  • 빨간콧수염 2022/01/09 14:06 # 답글

    실제로 당시 지팡이를 그 정도로 여기는 문화가 있었군요. 흥미롭네요.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별것 아닐 수 있어도, 미시사나 창작물의 고증 같은 차원에서는 사소해보이지만 지나치기 어려운 소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칼의 패용법이라든가 당시 여성의 캇포기 착용 같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려나요).

    다시 한번 번역과 댓글에 감사 드립니다.
  • 3인칭관찰자 2022/01/09 15:01 #

    일제시대 고증을 할 때는 반영이 되어야 하겠지요. 패전 이전까진 젊은이들조차 신사 티를 낼 목적으로 정장 차림에 지팡이를 휴대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까요. 주말 잘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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