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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료마》막부 말의 정치용어 (1) 개국開國 역사



  이 글은 1991년에 출간된 (舊)《歷史群像シリ-ズ 23 坂本龍馬》 의 P. 69 ~ 78페이지에 수록된,《유신을 향한 태동과 정치사상 - 막부 말의 힘찬 물결이 낳은 일본적 근대의 주형鑄型을 번역한 글입니다. 일본 막부 말기 역사의 원로급 권위자이시자《사카모토 료마 평전》으로 대한민국에도 알려진 역사학자분인 마츠우라 레이松浦玲 모모야마가쿠인대학桃山学院大学 교수님께서 집필하셨습니다.


  페리 내항ペリー来航의 의문

  페리의 내항은 돌연히 이루졌던 게 아니다. 미국アメリカ이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일본행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건 구미사회에선 널리 알려져 있어서, 네덜란드オランダ는 나가사키 데지마長崎出島에 근무하는 상관장商館長을 통해 막부幕府에 이 정보를 미리 알려주기도 했었다.

매슈 캘브레이스 페리 제독의 사진(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マシュー・ペリー')
당시 노령에 접어든 페리에게 일본 개항의 성사는 군인으로서 세운 마지막 공훈이었다.


  막각幕閣 중핵을 구성하는 자들이 모처럼 들어온 예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말이 되나, 나가사키에서 에도江戸로 보내진 정보는 에도 성江戸城 밖으로 누설되어 여러 가지 사상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예를 들자면 직역 없는 하급 하타모토下級旗本의 몸으로 조그마한 난학학원蘭学塾을 운영하고 있던 카츠 카이슈勝海舟는 페리 내항 반 년 전인 카에이 6년(1853) 1월에《해행사언蠏行私言》을 저술하여, 내항이 예정되어 있다는 미국 군함軍艦의 전력평가와 방어법 책정을 시도했다.

  그리고 히고 쿠마모토 번(熊本藩, 역주 : 호소카와 가문細川家 54만 석) 가신家臣의 동생 신분이었기에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입장이면서도 히고 실학당肥後実学党의 리더가 된 요코이 쇼난横井小楠은 카에이 6년(1853) 1월에《문무일도지설文武一途之説》을 저술하여 에치젠 번(越前藩, 역주 : 마츠다이라 가문松平家 32만 석)의 무라타 우지히사村田氏壽에게 선물했는데, 그 책에서【 상대의 요구가 도리에 합당한지를 따진 후 대응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상대가 힘이 센지 약한지를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무武라고 하며, 文의 판단을 우선하고 武의 판단을 그 아래에 두어야 한다. 】고 했다.

요코이 쇼난 토키아리의 사진(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横井小楠')
화혼양재를 주장한 개화사상가로 유력자들, 개국파 지사들의 브레인 역할을 했다.


  우라가浦賀에 페리가, 나가사키에 푸타틴プチャーチン이 내항하자 쇼난은《이로응접대의夷虜応接大意》를 저술하여 좀 더 심화된 의론議論을 제기했다.【 상대가 도道가 있는 나라인지 도가 없는 나라인지를 간파해야 하는데, 일본 측의 규칙을 존중하여 나가사키로 입항한 푸타틴 쪽이 예를 지켰으므로 사절의 언행만으로 판단한다면 러시아 쪽이 道에 합한 나라이다. 】는 주장이었다.

  이 의견은 나가사키로 파견되어 푸타틴과 교섭을 벌이던 카와지 토시아키라川路聖謨를 위시한 막부의 중견간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막부는 다음 해 일찍부터 재림한 페리의 압력에 굴복하여 미국 쪽과 먼저 화친조약을 체결했다. 이 착오는 막부 내의 양식인파에게 심리적 부담이 되어 훗날의 전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카츠 카이슈는 페리가 몰고 온 함대를 보고 "일본도 해군海軍을 갖지 못하면 방어할 수 없다." 는 뜻을 계속 상소하여, 그 주장이 안세이 2년(1855) ~ 안세이 6년(1859)에 걸쳐 네덜란드를 스승으로 삼아 행해진 '나가사키 해군전습' 으로 이어졌다.

  카이슈의 상소에서 나가사키 해군 전습으로 나아가는 노선에선 오오쿠보 타다히로大久保忠寛 / 이와세 타다나리岩瀬忠震 / 나가이 나오유키永井尚志 / 미즈노 타다노리水野忠徳 / 키무라 요시타케木村喜毅 등의 행정관奉行 / 감찰관目付 급 하타모토들이 세계정세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고, 이들은 광의의 분류로 볼 땐 개국파ㆍ개항파라 할 수 있었다.

오오쿠보 타다히로의 초상화(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大久保一翁')
막부의 신하로 당시 일본 정계에서 가장 먼저 '대정봉환大政奉還' 을 주장했다.


  그들의 웃전에 있던 로쥬老中들 중에서도 아베 마사히로阿部正弘 / 홋타 마사요시堀田正睦는 개국파로, 아베가 세상을 떠나자 홋타가 개국ㆍ개항정책의 책임자가 되었다. 미국 영사로 시모다에 부임한 해리스ハリス를 안세이 4년(1857)에 에도로 초대하여 통상조약通商條約 교섭을 개시한 것도 로쥬인 홋타 마사요시의 결단이었다.

  이 홋타가 개국칙허開国勅許를 얻는 데 실패하자 위칙조인違勅調印을 강행한 자가, 안세이 5년(1858)에 다이로大老로 취임한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였다.

  유학자儒学者 겸 서양학자西洋学者였던 사쿠마 조잔佐久間象山이 자신의 병학술兵学術 제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밀항시키려 한 사건도 중요하다. 병학자의 입장에서 해외사정을 정확히 아는 것은 선결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물론 그는 단순한 쇄국양이파鎖國攘夷派가 아니었다.

요시다 쇼인의 초상화.(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吉田松陰')


  쇼인은 재림한 페리의 군함에 승선을 시도하다 실패, 본번(本藩, 역주 : 쵸슈 번長州藩. 모리 가문毛利家 36만 9천 석)으로 송환되었다. 이에 연좌된 조잔은 본번인 마츠시로 번(松代藩, 역주 : 사나다 가문真田家 10만 석)에서 기나긴 칩거생활을 보내야 했는데, 홋타 로쥬가 칙허를 얻는 데 실패한 것을 알자【 서양의 아시아 침략을 추궁하여 해리스의 조약안을 거부하고, 이쪽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사절을 보내 진정한 대등조약을 체결하자. 】는 상소원고를 집필했다.

  결국 이는 불발로 끝났으나, 단순히 '개국이냐 양이냐' 는 구분을 넘어 '아시아와 구미는 대등한 문화권인가?' 라는 관점의 보유 여부, '아시아와 일본의 룰에 따라 개국해야 하는가?' 라는 관점의 찬반 여부를 가리는 것도 사상적으론 중요하다.


덧글

  • 無碍子 2020/03/02 10:47 # 답글

    이시기의 세계사를 보면 조선의 무지 무력에 화가나요.
  • 3인칭관찰자 2020/03/02 16:14 #

    개항기로 접어든지 고작 4~50여년만에 일본은 침략하는 나라가 되고 조선은 그런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걸 보면 과연 어디부터가 달라서(조선 후기-에도 시대부터 뒤쳐지기 시작했다곤 합니다만) 그랬는가 싶어 저도 착잡해집니다.
  • BigTrain 2020/03/02 13:30 # 답글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 1권( http://bit.ly/2Ig6E1v )에서, 막부는 네덜란드에서 정기적으로 해외 정세를 전해 듣고 있었고, 페리의 함대가 출발할 때부터 미리 그 소식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19세기 중반 조선과 일본은 근대화 준비의 출발선상부터가 달랐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막부의 리더십 상실 등 말기적 증상만 없었더라면 막부도 충분히 근대화를 주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더라구요.

    싹 씨가 말라버린 동시대 조선의 중간지배층과 역동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의 그것의 차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글의 요시다 쇼인이나 요코이 쇼난 등이 대표적인 사례같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20/03/02 16:46 #

    정말 출발선상이 다르긴 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은 네덜란드를 통해 유럽 소식과 문화를 접하고 있었고, 서양 학문을 연구하는 난학자들이 공공연히 활동하고 있었으니...

    난학자들이 지배계층으로부터 노골적으로 탄압받기보다는 그 시대의 사조를 구성하는 일부로 자리잡은 일본 쪽은 양명학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조선의 사상계보다는 분명 유연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와나미 일본 근현대사 시리즈는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요즘 일본의 막부 말기 연구가 막부의 저력을 재평가하는 쪽으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책으로 한번 확인하고 싶습니다.
  • 남중생 2020/04/22 00:05 # 답글

    "막각幕閣 중핵을 구성하는 자들이 모처럼 들어온 예고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말이 되나, 나가사키에서 에도江戸로 보내진 정보는 에도 성江戸城 밖으로 누설되어 여러 가지 사상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 맞아요. 에도에 가서는 오히려 누설되는 것 같더라구요... 이 과정도 궁금한데, 제가 번역한 마츠카타 후유코 선생님은 대체로 풍설서가 나가사키에 상륙하는데까지만 서술하셔서 ㅎㅎㅎ
  • 3인칭관찰자 2020/04/22 10:04 #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ㅎㅎ;; 아마 역관 같은 하급 실무진 쪽에서 지인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준 것이 퍼져간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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