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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춘추 Special》'노부나가의 야망' 과 시부사와 코우 (上) ┣ 게임



  이 글은 일본의 거대출판사 분게이슌쥬文芸春秋에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삼아 3달에 1번씩 계절별로 출간하던 잡지인《文芸春秋 Special》의 2016년 봄호 p.190 ~ 197, 現 코에이테크모게임즈コーエーテクモゲームス 대표이사 겸 사장이신 시부사와 코우シブサワ・コウ 님과의 인터뷰를 번역한 글입니다. 집필된지 3년이 넘은 글(《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전국입지전》발매 직전의 인터뷰)이라는 점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부사와 코우>

  본명은 에리카와 요이치襟川陽一. 1950년 토치기 현栃木県 출생. 케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学 상업학부 졸업. 1981년에 발표한《카와나카지마 전투川中島の戦い》이래《노부나가의 야망信長の野望》,《삼국지三国志》등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 분야의 메가히트 작품들을 제작했다.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 전국입지전》PS4 패키지 버전(출처 : 일본 아마존)


  - 1983년 시부사와 씨께서 제작하신 PC게임《노부나가의 야망》은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이라는 장르를 탄생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14편에 이르기까지 9백만 장 이상의 급이 다른 누계판매량을 기록하며, 지금도 선두주자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요.

  플레이어가 전국시대 다이묘가 되어 천하통일을 지향하는《노부나가의 야망》시리즈를 플레이하면서 역사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사람 역시 적지 않지요. 지금도 NHK 대하드라마와 더불어 일본인이 역사를 공부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만, 이번의 대하드라마《사나다마루》에선 바로 시부사와 씨께서 스토리 이해를 쉽게 하도록 보조하는 3D CG 지도를 감수하셨어요. 이와 같은 지도가 대하드라마에 등장하는 건 처음입니다. 이러한 최강의 연계는 어떠한 경위를 통해 실현된 겁니까?

《사나다마루》에 탑재된《노부나가의 야망》맵 CG(출처 : 트위터)


  시부사와 :《사나다마루》의 담당 프로듀서가《노부나가의 야망》을 즐겨오신 분이었죠.《사나다마루》의 주인공 사나다 노부시게真田信繁 = 유키무라幸村는 군웅群雄들이 뒤엉켜 벌어진 대단히 복잡한 상황 속에 농락당하게 됩니다. 시청자 분들께 이를 한 눈에 이해시키기 위해선《노부나가의 야망》이 축적한 3D CG 지도 표현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 말씀해주셨죠.

  일본지도 속에서 군단이 이동하고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묘사하는 건 저희 회사('코에이테크모게임즈')가 득의로 삼는 바이니만큼, 기쁘게 이를 응낙하였지요.


  첫 작품은 '카와나카지마 전투'

  시부사와 : 저는 케이오대를 졸업하고 1978년에 '코에이' 를 설립했습니다. 토치기 현 아시카가 시足利市에서 할아버님 대부터 생산하던 염료 공업약품을 판매하는 회사였죠. 그러나 당시 일본의 섬유산업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수출된 대단히 값싼 상품들로 인해 괴멸적인 타격을 받고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도 심각한 영업부진에 빠져있었지요.

  어떻게든 경영활로를 찾기 위해 피터 드러커ドラッカー나 마츠시타 코우노스케松下幸之助 등의 경영학 서적을 탐욕스레 읽었지만 만만치 않더군요. 그러던 시기, 시점에서 당시엔 아직 '마이컴MYCOM' 이라 불리던 PC 잡지와 마주했습니다. "게임을 만들 수 있다. 교육에도 이용할 수 있다. 기업 합리화에도 도움이 된다." 는 꿈같은 이야기가 한가득 적혀 있었기에, 대단히 구미가 당겨 몹시 PC가 갖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PC는 대단히 값비쌌던 데다 회사의 사정도 좋지 않아 도저히 구입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회사의 이익이 나오게 되면 사고 싶다." 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생일날 깜짝선물로 사 주더군요. 잊을 수 없는 1980년의 사건으로, 샤프에서 만든 'MZ-80C' 라는 기기였습니다. 가격은 26만 8천 엔. 당시 대학교를 졸업한 신입 사원의 초임이 10만 엔 정도였으니 상당히 값비싼 선물이었죠.

現 코에이테크모 대표이사 겸 회장 에리카와 케이코 여사님(출처 : 코에이테크모 홈페이지)
《안젤리크》,《머나먼 시공 속에서》,《금색의 코르다》같은 여성용 게임을 제작했다.


  이후론 독학으로 전심전력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프로그램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대학 때 전공이 상업학과였던 만큼, 그 전까지는 컴퓨터도 프로그래밍도 전혀 모르고 있었지요. 하지만 상성이 좋았던 탓일까, 저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회사 경영을 합리화시켜 재조직하겠다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낮에는 재고관리 / 재무관리 / 견적계산을 담당하는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습니다. 뭐 당시의 사원은 저까지 포함해서 두 명이었던지라 기실 합리화는 필요없었지만 말이죠(웃음)

  밤이 되면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서 그걸 갖고 놀았는데 그 중에 대단히 재미가 있어서 저도 모르게 열중하게 되는 게임이 있었습니다.《카와나카지마 전투》라는 이름의 타케다 신겐武田信玄 VS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이 격돌하는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이었죠. 옛날부터 역사소설을 좋아했고, 전국시대 무장戦国武将들이 활약하는 이야기가 정말 즐거웠습니다. '이건 팔 수 있지 않을까' 싶어 1981년부터 통신판매를 시작했는데, 무려 1만 장 가까이 팔렸습니다. 전화와 엽서로 "대단히 재미있었다", "차기작이 나오면 꼭 사고 싶다" 는 감상을 고객분들로부터 받아서 너무나 기뻤습니다. 처음으로 업무에 대한 보람이란 걸 느끼면서 '이것이 내 천직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얼마 후 가업을 접고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사업으로 전업하였습니다. 아버님께는 "가업을 접는 게 아니라 변경하는 겁니다." 라고 설득하였지요. 지금까지 경영해 온 회사 이름인 '코에이' 는 그대로 계승하기로 했습니다.

스팀 리메이크 버전《카와나카지마 전투》의 오리지널 모드 스샷(출처 : 일본 아마존)

    
  - 1981년《카와나카지마 전투》를 출시하시고, 2년 후에는 대히트작이 된《노부나가의 야망》이 태어났지요. 플레이어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나 타케다 신겐이 되어 키나이畿内와 중일본中日本 일대 17개 지방을 통일해야 하지요. 전투에만 그치지 않고 영지경영 요소를 집어넣은 게 획기적이었습니다. 그런 발상은 어디에서 비롯되신 겁니까?


  전국시대 다이묘는 '사장' 이었다.

  시부사와 :《카와나카지마 전투》이후 몇 개의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제작하는 동안에 '전투는 센고쿠다이묘의 업무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가져다 준 건 사장 지위에 있던 현실세계의 제가 마주하던 업무들이었죠. 당시에 이미 회사의 사원이 20여 명 정도로 불어남에 따라 사장인 저는 게임 프로그램 제작뿐만 아니라 인사 / 사원교육 / 영업 / 판매촉진 / 비용관리 / 외부와의 교섭같은 일도 맡아야 했습니다. 옛날의 전국시대 다이묘들도 비슷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죠.

  그래서 현대 기업의 사장이 맡는 업무와 전국시대 다이묘가 벌이는 업무를 대응시켜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신규사업의 개척 : 전답 개간ㆍ도시 개발.
  임금인상에 의한 사원들 사기진작 : 무언가를 베풀어 가신들ㆍ영내 주민들의 충성도를 올리는 것, 과 매치되지요.
   
  이와 같이 현대와 전국시대를 매치시킴으로서 사장인 제가 과거로 타임슬립하여 스스로가 전국시대 다이묘가 된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몰입감은 제가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시하는 부분입니다. 사장인 제가 몰입감을 맛볼 수 있는 게임을 추구하려던 게《노부나가의 야망》에 영지경영 요소를 채용한 걸로 이어졌던 거겠죠.


  - 1편으로부터 3년이 지난 이른 시기에 시리즈 2편인《전국판全国版》이 등장했지요. 2편은 홋카이도에서 큐슈에 이르는 50개 지방의 전국통일을 해야 하는 게임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다이묘의 숫자로 50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스팀 버전《노부나가의 야망 전국판》스샷(출처 : 일본 아마존)


  그리고 1988년에 나온 제 3편《전국군웅전戦国群雄伝》에선 다이묘뿐만 아니라 그 가신을 이루는 전국무장들이 등장했습니다.

  1997년에 나온 제 7편《장성록将星録》에는 '모형정원 시스템' 이 도입되어, 지금까지는 '코쿠다카石高' 같은 수치로 표현되던 영지의 국력이 이제는 지도상에 실제로 상가와 전답을 만드는 식으로, 보다 리얼한 영지 만들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1년에 출시된 제 9편《람세기嵐世記》에선 토호ㆍ사찰ㆍ수군 세력ㆍ닌자 집단 같이 반드시 다이묘의 지시에 복종하지만은 않는 '제세력' 이 등장하여 보다 리얼한 전국시대의 모습이 제시되었습니다.

스팀 버전《노부나가의 야망 장성록 with PK》스샷(출처 : 일본 아마존)


  이와 같이《노부나가의 야망》시리즈는 여기서는 모두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작품 한 작품마다 진화가 이루어져 왔는데, 그러한 방향성은 어떻게 잡혀왔던 겁니까?


  시부사와 :《전국판》을 만든 건 고객분들의 뜨거운 요망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토호쿠東北의 다테伊達는 왜 안 나오냐" "큐슈九州의 시마즈島津로 플레이하고 싶어." "시코쿠四国의 쵸소카베長宗我部도 잊으면 곤란해" 라는 식으로 자기 향토의 다이묘로 플레이하고 싶다는 수많은 요망을 받았습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고객분들로부턴 언제나 허다한 요망을 받으면서 신작 개발에 이를 반영하고 있지요.

  하지만《전국판》을 출시했을 때는 한 가지 실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지역색을 강조할 목적으로 '사투리 모드' 를 도입하였는데요. 컴퓨터로 하여금 나고야벤으로 "적은 전멸했다갸!" 하고 말하게 했습니다만 칸사이벤이라 뭉뚱그려놓아도 '교토벤' 과 '카와치벤' 이 상이하듯 그 지방에 거주하시는 분들께는 상당한 위화감을 드렸던 모양입니다. 많은 고객분들의 질타를 받았기에 이후로는 '사투리 모드' 를 채용하지 않고 있지요.

 《전국군웅전》에서 도입된, 가신으로 등장하는 전국시대 무장의 경우는 제가《노부나가의 야망》을 만들기 시작했던 때부터 도입하고 싶었던 요소였습니다. 천하통일은 다이묘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가신들의 협력이 있어야 비로소 뭐라도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시리즈 1편을 만들 당시에는 가신단을 등장시킬 수 있을 정도의 PC 하드웨어 성능이 받쳐주지 못했었습니다.

  하드웨어의 성능이 향상됨에 따라 지금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들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본래 2D였던 전투신을 2001년에 출시된 시리즈 9번째 작품《람세기》부터 3D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요.

《노부나가의 야망 람세기 with PK》PS2 패키지(출처 : 일본 아마존)


  아까 "천하통일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닙니다" 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는 게임 제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노부나가의 야망》은 저까지 포함해 두 명이서 만들었습니다만 지금에 와선 새로이 게임을 만들 때 30명 정도의 팀을 만들어 시작한 후 최종적으론 수백 명의 개발진이 한데 뭉쳐서 완성됩니다. 개발진 하나하나가 자신이 득의로 삼는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이를 하나의 작품에 결집시키지 못한다면 좋은 게임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다이묘가 기마 / 활 / 화승총 / 닌자 같은 전력을 능란히 아우르지 못하면 전투에서 이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오늘날에 와서는 "내게 노부나가의 야망을 만들게 해 줘!" 라며 콧김을 뿜으면서 입사한《노부나가의 야망》팬들이 신작 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니, 개발진들 사이에선 언제나 신선한 아이디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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