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토쿠가와 이에미츠》혼다 마사즈미 카이에키 사건 (2) 역사



  이 글은《(旧) 歷史群像シリーズ 62 徳川家光 ~ 三代将軍、葵の御代の治と断 ~》에 수록된 글【 혼다 마사즈미 카이에키 사건 ~ 강의剛毅한 성격이 부른 역사적으로 희소한 의옥사건 ~ 】을 번역한 글로, 예전에 네이버 카페 <낭인풍운록>에 올렸던 내용을 다듬어서 올립니다. 필자는 일본의 역사학자 겸 역사소설가이신 카쿠 코조加來耕三 님입니다.


  정적ㆍ오오쿠보 타다치카大久保忠隣와 대립

  한편 에도의 (토쿠가와) 히데타다秀忠 밑에는 문벌 후다이 세력이 측근側近 지위를 굳히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최대의 권세를 누리던 자라면 오다와라小田原 6만 3천 석을 영유하는 오오쿠보 타다치카일 것이다.

게임《노부나가의 야망》시리즈의 오오쿠보 타다치카
(출처 :《신장의 야망 창조 PK》갤러리 모드)


  혼다 마사노부本多正信와 오오쿠보 타다치카 두 사람은 흔히 말하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다. 게다가 아들인 마사즈미를 통해 에도의 일을 빠짐없이 (토쿠가와) 이에야스家康에게 보고하는 마사노부의 존재가 타다치카 입장에서 달가울 리 없었다.

  그러나 쇼군 히데타다는 아버지의 의향대로 움직이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었다.

【 쇼군은 또한 효심이 두드러지게 지극하셔서 어떤 일도 훈계를 받들어 섬김은 물론 사소한 일에도 아버님의 뜻을 물어 처리하며, 자기 고집을 앞세워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없었다. 】(《토쇼구고짓키東照宮御実紀》)

에도 막부 2대 쇼군 토쿠가와 히데타다초상화
(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徳川秀忠')


  이런 상황 속에서 '오카모토 다이하치 사건岡本大八事件' 이 일어난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케이쵸 17년(1612) 2월의 일이다.

  3년 전인 케이쵸 14년(1609) 12월, 키리시탄 다이묘キリシタン大名 아리마 하루노부有馬晴信가 포르투갈 선박『마드레 데 데우스』를 나가사키 항구長崎港에서 격침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여기에 눈을 돌린 것이 다이하치로, 마사즈미의 요리키与力였던 그는 권세를 앞세워 은상恩賞을 주선한다는 명목으로 하루노부에게서 백은 6백 매를 받아 챙겼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은상의 기별이 없자 이를 이상히 생각한 하루노부가 직접 마사즈미에게 은상 건을 물어봄으로써 다이하치의 사기극이 폭로되었다.

  이에야스는 하루노부와 다이하치를 대질시켰으나, 대결 도중 역습을 시도한 다이하치에 의해 하루노부가 나가사키 행정관長崎奉行 하세가와 후지히로長谷川藤広를 암살하려 했던 계획이 폭로되었다.

  이렇게 되자 사건은 키리시탄 세력들의 음모사건으로 발전, 하루노부는 카이에키(改易, 역주 : 영지 몰수)당하여 얼마 후 자살했고(역주 : 기실 하루노부의 아들 아리마 나오즈미有馬直純가 이에야스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에 아리마 가문有馬家은 하루노부의 자살과는 별개로 다이묘로 존속하는 데 성공) 다이하치는 화형火刑에 처해지면서 사건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타다치카는 다이하치의 주군인 마사즈미의 죄를 추궁하지 않은 점에 내심 불만을 품고 있었고, 마사즈미는 다이하치를 심문尋問했던 오오쿠보 나가야스大久保長安가 타다치카의 비호庇護를 받고 있다는 점을 꺼림칙하게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오오쿠보 나가야스가 병으로 죽었다. 그(역주 : 나가야스는 칸토 지방을 제외한 막부의 직할령 중 120만 석의 대관代官으로 전국의 광산개발권까지 쥐고 있던 거물이었음)의 생전 부정축재 적발이 혼다 부자에 의해 행해진 끝에 다음 해(1614) 정월 19일, 키리시탄을 탄압하기 위해 교토京都로 출향했던 타다치카는 그 곳에서 카이에키를 통보받고 오우미近江 지방으로 유배(히코네 이이 씨彦根井伊氏에게 신병이 위탁됨)되었다.

히코네 시 류탄사龍潭寺에 있는 타다치카의 유폐지 터
(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大久保忠隣')


  세간이나 후세 사가들은 이 사건을 "마사즈미가 오카모토 다이하치 사건의 책임을 나가야스 카이에키 사건에 전가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를 구실로 정적 타다치카의 정치생명을 단번에 끊었다." 고 해석해 왔다. 그렇기에 히데타다 측근들 중에서는 타다치카를 동정하는 자가 많았다고도 한다.

  타다치카 처우가 혼다 부자의 모략이었냐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이에야스의 커다란 각본이 아니었을까.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1864
460
346334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