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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군상》전쟁戰爭으로 이어진 축구 경기 ┣ 雜誌 歷史群像



  이 글은 잡지《歷史群像》제 54호(2002년 8월호) 112쪽의 기사인,《전사의 구석에서 - 전쟁으로 이어진 킥 오프戦争へのキックオフ》를 번역한 것으로, 쿠와바라 사토시桑原敬 님께서 집필하신 글입니다.


  월드컵 축구는 "피를 보지 않는 국가간의 전쟁" 이라 일컬어진다. 국가대표國家代表 선수들은 국민國民들의 대표가 되어 그 국가의 위신威信을 걸고 싸운다. 관객들 역시 열광적인 성원을 보내며, 흥분한 관객들 간의 난투극에 의해 부상자가 생기는 일도 드물지 않다. 영국의 '훌리건' 들은 장외난투극의 상습범이며, 패배한 팀의 서포터가 상대 팀의 대사관大使館을 방화한 사건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기껏해야 발연통發煙筒이나 화염병을 집어던지는 정도이니, 서로에게 기관총탄과 로켓탄으로 응수하는 본격적인 시가전市街戰이 벌어지는 진짜 전쟁에 비교하면 실로 평화적이긴 하다.

  그러나 월드컵 시합이 계기가 되어 진짜로 전쟁이 터진 사례가 과거에 있었다. 중부 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 】와【 온두라스 】 사이에 벌어진 속칭 '축구 전쟁' 이 그것이다.

온두라스와 그 주요 도시들(출처 : 미국 위키피디아 'Football War')


  1969년 치러진【 멕시코 월드컵 북중미 카리브해 지구예선 】에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서로간의 원정시합에서 패배하여 1승 1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온두라스에서 벌어진 1차전에선 엘살바도르 대표팀이 숙박하고 있던 호텔 밖에서 열광적인 온두라스의 서포터들이 대소동을 일으켜 선수들을 한 숨도 자지 못하게 했고, 엘살바도르에서 벌어진 2차전에선 엘살바도르의 서포터들이 북을 울리고 불꽃을 쏘아올려 마찬가지로 온두라스 대표팀을 한 숨도 자지 못하게 했다. 컨디션이 무너진 두 나라 선수들은 적지에선 한 골도 넣지 못하고 패배하고 말았다.

엘살바도르와 그 주요 도시들(출처 : 미국 위키피디아 'El Salvador')


  중립국 멕시코에서 벌어진 3차전 시합은 연장전까지 간 끝에 엘살바도르가 3 : 2로 힘겹게 승리를 거두어, 기세를 탄 엘살바도르는 다음 상대인【 아이티 】에게도 승리하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본선진출을 이루어냈다.

  이 시합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패배한 온두라스 측은 엘살바도르에 국교단절國交斷絶을 통고했고, 자국에 있던 엘살바도르인들의 국외추방정책國外追放政策을 본격화시켰다. 온두라스 국내에선 엘살바도르인이 경영하는 상점들이 약탈대상이 되었다. 엘살바도르도 이에 응수하여 7월 14일, 온두라스 수도首都 【 테구시갈파 】의 공항空港을 폭격한 후 19세기 이래 분쟁의 싹이 되어있던 온두라스와의 불명료한 국경선을 월경, 온두라스로 진군하였다.

온두라스군의 F4U-5NL No. FAH-609 코르세어 전투기
(출처 : 미국 위키피디아 'Football War')


  그러나 두 나라 어느 쪽도 결코 유복하다고는 할 수 없는 국가여서, 양군의 장비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생산되었던 중고품 무기들이 많았다. 7월 17일엔 온두라스군의【 F4U 코르세어 전투기 】와 엘살바도르군의【 P-51 머스탱 전투기 】가 참가한, 아마도 역사상 마지막이라 추측되는 레시프로 전투기 간의 공중전이 펼쳐졌다. 이 전투에서 온두라스군의 코르세어는 엘살바도르군의 머스탱 1기를 격추했다고 한다.

  병력적으로 우세했던 엘살바도르군은 두 나라를 이어주는 간선도로幹線道路를 따라 전진하여 이를 요격하는 온두라스군을 압박한 끝에 다음 날인 15일 밤에는 온두라스 영내 8km 정도를 잠식했다. 그러나 그 후로는 연료燃料ㆍ탄약彈藥 등의 부족으로 공세는 돈좌頓挫되고 말았다.

당시의 엘살바도르 대통령 '피델 산체스 에르난데스'
(출처 : 미국 위키피디아 'Fidel Sánchez Hernández')


  양국 간의 전투가 개시된 직후 미주기구(OAS)와 유엔이 조정에 나서, 대규모 무력충돌은 4일 만에 종결되었다. 때문에 이 전쟁은 '100시간 전쟁' 이란 별칭을 갖게 된다. 양국의 사망자 수는 3천 명 ~ 6천 명 정도였다고 한다.

  이 전쟁의 배경에는 앞에서 언급한 국경선 문제뿐만 아니라 엘살바도르에서 온두라스로 건너간 불법 체류자들 문제가 있었다. 근면한 엘살바도르 사람들이 온두라스에 있는 미국 자본 과일농장에서 일하며 온두라스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던 것으로, 양국의 군사정권 입장에선 축구의 승패란 건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려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당시의 온두라스 대통령 '오스왈도 로페스 아렐라노'
(출처 : 미국 위키피디아 'Oswaldo López Arellano')


  이후로도 양국의 험악한 관계는 지속되어, 국경선을 반 년 내로 확정한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삼은 조약이 두 나라 사이에 조인된 건 전쟁 발발로부터 무려 30년 가까이 지난 1998년이었다.
    

덧글

  • 시그마 2019/07/17 20:53 # 답글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전쟁이었죠.
  • 3인칭관찰자 2019/07/17 21:27 #

    월드컵 축구 경기에 전쟁이 묻어버린 흑역사라 하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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