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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4대》고대 일본 토호쿠 역사의 이면 (3) ┗ 微妙な話たち



  이 글은 1993년에 출간된 (舊)《歷史群像シリ-ズ 34 藤原四代》 의 P. 182 ~ 185페이지에 수록된,《특별기획》〈고사고전에 기록된 '뒷면' 의 고대 토호쿠 역사〉를 번역한 글입니다. 지금은 위서僞書임이 확정된《츠가루소토산군시東日流外三郡誌》의 기록이나 유물조작 역사왜곡 사기꾼임이 밝혀진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의 구석기시대 관련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는 등, 현 통설과는 지극히 차이가 나는 전설의 범주를 넘지 못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감안하셨으면 합니다. 고대사 연구가 사지 요시히코佐治芳彦 님께서 집필하신 글입니다.

 
  <용어해설 2>

  ● 아라하바키 족荒吐族

  《츠가루소토산군시》에 등장하는 오우奥羽의 종족. 진무 텐노神武天皇의 동정東征에 저항했던 나가스네히코長髄彦와 그의 형이라 일컬어지는 아비히코安日彦가 텐노에게 패배하여 츠가루津軽로 망명한 후, 선주민 아소베アソベㆍ츠보케 족ツボケ族과 대륙에서 건너온 표류민漂流民들을 규합하여 '아라하바키 족' 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통합의 핵인 '아라하바키 신앙' 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


  ● 아테루이阿弖流為

  타모노키미 아테루이大墓公阿弖利爲. 에미시 인蝦夷人 저항의 중심이 되어 활약한 이자와(胆沢 지금의 이와테 현 남부)의 족장族長으로, 여러 번 정이군征夷軍을 격파한 용장이었다. 호우키의 난宝亀の乱 도중에 에미시들의 수장이 되었으며, 결국엔 부장인 모레(母礼, 이와구노키미 모레盤具公母礼)와 함께 타무라마로田村麻呂에게 항복하여 교토로 끌려가, 카와치 지방 모리야마 산河内国杜山에서 참살당했다.

2013년 NHK 사극《화원火怨ㆍ북의 영웅 아테루이전》의 DVD 표지.
오오사와 타카오大沢たかお 씨가 아테루이 역을 맡음.(출처 : 아마존 재팬)


  에미시 저항의 상징적인 존재이다.


  ● 히타카미 국日高見国

  일본의 옛 칭호 중 하나? 그 위치와 범위를 놓고 많은 학설이 있다.《니혼쇼키日本書紀》에선 에미시들이 거주하는 동쪽 나라를 가리켰고(<케이코키>) 《히타치노쿠니후도키常陸国風土記》에서는 히타치 시다 군이 본래 히타카미 국이었다고 기록되었다.

  헤이안 시대의 오오하라에노리토大祓詞에 따르면 '오오야마토 히타카미 국' 이라고 하는데, 이를 근거로 히타카미국이란 오오야마토의 미칭이란 설과 오오야마토에 흡수된 나라라는 해석이 생겨났다. 어느 쪽이든 그 위치와 범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동쪽, 그리고 북쪽으로 이동해갔다.

  키타가미 강北上川이 히타카미 강이었다는 설도 있다. 덧붙이자면 키타카미 강 하류 유역엔 히타카미 신사가 지금도 존속 중이다.


  ● 호우키의 난宝亀の乱

  나라 시대 후기인 코켄 여제 치세까진 비교적 안정되었던 야마토와 에미시의 관계는 호우키 원년(770)에 에미시의 족장 우카메노키미 우쿠하우宇漢迷公宇屈波宇가 현장 관헌의 처치에 분개하여 동족들을 데리고 자기 영내로 도망쳐 돌아가면서 불온화되었다. 그리고 호우키 5년(774), 무츠 지방 에미시들이 반란을 일으켜 모노우 성桃生城을 공격했다.

  이후 수 차례에 걸쳐 정동사征東使 / 정동군征東軍이 파견되어 일진일퇴一進一退 속에 호우키 시대 내내 전란이 이어졌고, 그 간에 코닌 텐노光仁天皇는 퇴위하기에 이르렀다.

막부 말기의 위인전《센켄코시츠前賢故実》의 타무라마로 삽화(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이 전란은 텐오 원년(天応元年, 781)부터 엔랴쿠延暦 시대(782~806) 동안 사카노우에노 타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를 위시한 정이군의 활동으로 비화했고, 타이토大同 / 코닌弘仁 시대의 훈야노 와타마로文室綿麻呂의 정이군에 이르기까지 무려 38년에 달하는 대동란大動亂이 벌어졌다.


  ● 간교의 난元慶の乱

  간교 2년(878), 데와 지방에서 일어난 이후(夷俘, 에미시 인)의 반란. 아키타 성秋田城을 방화하고 관병官兵을 격파했으며 그들의 병기兵器를 탈취했으나, 조정에선 전투보다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방침(현지 관인들의 잘못을 시인한다는 내용 같기도)을 내렸다. 이에 따라 데와곤노카미出羽権頭로 파견된 후지와라노 야스노리藤原保則는 '료니센세키良二千石' 라 불리던 헤이안조 최고의 지방관이었던 데다, 친쥬후쇼군鎮守府将軍 오노노 하루카제小野春風의 처치도 적절했기에 커다란 사건으론 비화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때 야스노리를 기용했던 후지와라노 모토츠네藤原基経의 정치력과 행정능력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 텐교의 난天慶の乱

  죠헤이ㆍ텐교의 난承平天慶の乱이라고도 불리는, 10세기 초반 동일본의 타이라노 마사카도平将門와 서일본 해안의 후지와라노 스미토모藤原純友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일으킨 반란.

이바라키 현 반도 시에 있는 마사카도의 기마상(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특히 타이라노 마사카도는 시모우사 지방 사루지마 군 이시이 고下総国猿島郡石井鄕에서 '신황(新皇, 새로운 텐노라는 뜻)' 임을 선언하고 문무백관文武百官을 두는 등 그야말로 일본 역사상 최대의 모반인謀反人 중 하나라 할 수 있으나, 근세 말기에 이르기까지 칸토 지방의 민중들은 그를 "쇼몬 님将門樣" 이라 부르며 경모하였다.


  ● 히노모토 쇼군日本將軍

  '日下將軍' 이라고도 쓴다. 정사에 따르면 호죠 싯켄北条執権이 안도 고로安藤五郎란 자를 '에미시 땅의 칸레이管領' 로 임명했는데, 에미시(이 시점에선 '아이누アイヌ' 가 되었다) 측은 이 직분을 '히노모토 쇼군' 이라 불렀다 하며 중세 말기까지 이 지위가 유지되었다.

  그러나《소토산군시》에 따르면 그 기원은 더욱 더 오래된 것으로, 아베노 히라후 시기의 안도노 무네하루安東致東가 초대였다고 한다. 즉 오우의 최고지도자를 가리키는 칭호로 사용되었단 말이 되겠다.


덧글

  • 2019/07/06 16: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7/06 16: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남중생 2019/07/06 19:12 # 답글

    오오... 저도 동남아시아의 유사역사학 관련글을 번역할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 3인칭관찰자 2019/07/06 23:00 #

    동남아 국가들도 유사역사학에서 자유롭지는 않은가 보네요. 올려주시면 감사히 보겠습니다. ㅎㅎ
  • 無碍子 2019/07/06 21:05 # 답글

    내 어렸을때 본 드라마에서 일제시대 법관이 버선처럼 생긴 법모를 썼었고요, 임진왜란도 버선모자를 쓴걸 본기억이있는데요.
    근초고왕드라마에도 등장한거같고요.
    마지막짤을 보니 생각나는데 그런모자가 있었나요?
  • 3인칭관찰자 2019/07/06 23:23 #

    복식 분야에 과문하여 자신 있게 말씀드리진 못하지만 제가 아는 범위에서 말씀드리면 일본의 귀인들이 중요한 자리에서 착용했던 '칸무리' 내지 그보단 더 보편적으로 쓰인 '에보시' 란 모자가 그 뿌리일거라 추측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모양을 비롯한 많은 것이 변해갔지만 둘다 끈질기게 영향력과 생명력을 유지해 갔지요. 특히 메이지 시대 ~ 패전 이전 법복은 서양식 법복을 '고대 일본의 전통의상' 에 맞춰 어레인지한거라 옛날의 그 버선같은 모자가 일제시대 법모와 닮았다고 느끼시는 건 당연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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