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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가타케 전투》히데요시의 미노 제압전 (2) 역사



  이 글은《(旧) 歷史群像シリーズ 15 賎ケ岳の戦い ~「秀吉vs勝家」覇権獲得への死闘 ~》에 수록된 글【 히데요시의 미노 제압전 - 노부타카의 숨통을 틀어쥔 히데요시의 전략 】을 번역한 글로, 예전에 네이버 카페 <낭인풍운록>에 올렸던 내용을 다듬어서 올립니다. 필자는 일본의 역사학자이신 타니구치 켄고谷口研語 님입니다.

  1989년에 출간된 서적이니만큼 시대적 한계가 다소나마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히데요시 편에 선 모리 씨森氏와의 싸움 시작되다

  오다 가문의 후계자임을 자부하는 노부타카였으나, 그도 자신의 구심력求心力을 과신하지는 않았다.

  키요스 회의의 약정에 따르면 산보시(三法師, 역주 : 노부나가의 적손자)는 빠른 시기 내에 아즈치로 옮겨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노부타카는 그 약정을 무시하고 산보시를 기후 성岐阜城에 계속 잡아두었다. 산보시를 틀어쥠으로써 미노美濃의 여러 세력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려는 꿍꿍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미노인들은 분열되어, 기후 성의 배후인 미노 동부東美濃에서는 모리 씨 VS 그 외의 여러 세력이라는 대결구도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적으로 돌리기 위협적인 모리 나가요시森長可는 그가 이케다 츠네오키池田恒興의 사위라는 관계도 한 몫 하여, 히데요시 편에 서 버렸던 것이다.

모리 나가요시의 초상화(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이런 혼노사의 변 직후의 미노 동부 정세는,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미노를 평정하던 시절의 사정에서 그 복선을 찾을 수 있다.

  노부나가의 미노 공략 최종단계에서는 미노 중부 방면 전투와 이노구치 공략전 정도가 벌어졌을 뿐, 전투다운 전투가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 사이토 타츠오키斎藤龍興는 이미 미노 지방을 지배할 통제력을 잃었고 미노인들 대부분은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노부나가에게 투항했기에, 미노에선 구 영주들 다수가 그대로 지위를 유지했다. 그 중에서 예외적인 존재가 바로 모리 씨로, 새로이 미노의 지배자로 눌러앉은 건 노부나가 본인을 제외하면 모리 씨가 유일했다.(역주 : 미노 동부는 타케다 가문武田家의 영향력 하에 있던 에나 군 토오야마 씨恵那郡遠山氏를 제외한 대부분이 1564년 경 노부나가에 의해 평정된 바 있다)

  노부나가 정권하에서 미노 동부의 성주들 다수는 모리 씨에 배속되었던 걸로 여겨지는데, 미노 서부의 여러 무사들과 이나바 씨의 관계가 오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던 데 비해, 모리 씨와 동 미노 무사들의 관계는 전적으로 노부나가에 의해 억눌린 산물이었다. 동 미노 무사들이 모리 씨 밑에 있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고 노부나가의 죽음을 기화로 모리 씨 타도에 나선 것은 자연스런 행동이었다.

  6월 하순 카네야마 성에 귀환한 모리 나가요시는 즉시 동 미노 제압에 나섰다.

Fate《제도성배기담》에 출연한 모리 나가요시
(출처 : 나무위키 '버서커(제도성배기담)')


  우선 코메다 성米田城의 히다 겐바(肥田玄蕃, 역주 : 나가요시의 아버지 모리 요시나리가 카네야마 성주가 되었을 때 그에게 붙여진 대표적인 요리키)를 공격하여 카지타 성加治田城으로 몰아내고, 히라마키平牧의 오오모리 성주大森城主 오쿠무라 마타하치로奥村又八郎 / 카미에토上恵土의 하세가와 고로우에몬長谷川五郎右衛門을 멸망시켰다. 코메다 성이 함락되자 카지타 성에서는 가모 군의 무사들을 모아 우시가하나牛ケ鼻에 포진하여 나가요시에게 대항했으나, 우시가하나의 진채도 모리 씨의 일격에 무너졌다.

  노부타카 측도 미노 동부가 모리 씨 VS 그 외 세력의 충돌이 될 거란 건 어느 정도는 예측했던 것 같다. 노부타카의 중신으로 미노 사이토 씨 출신(사이토 도산의 서자라는 설이 있음)인 사이토 토시타카斎藤利堯가 사이토 신고로를 잃은 카지타 성에 입성한 것은, 모리 나가요시를 견제하기 위해서였으리라.

  그러나 기세를 탄 모리 나가요시에 의해 카지타 성까지도 눈 깜짝할 사이에 함락되어, 토시타카는 기후로 도망쳤고 히다 겐바는 자결했다. 카지타 성을 떨어뜨린 모리 군은 더 나아가 키시 카게유岸勘解由의 하치야 성蜂屋城을 함락시키고, 코즈치 성上有知城의 나가오 하야토長尾隼人를 공격하여 쫓아냈다.

  겨우 10일 만에 이를 성취하였던 것이다.


덧글

  • 차가운 도시남자 2019/05/26 13:27 # 답글

    꽤 잘 싸운 무장이었군요. 전국시대 배경물을 좀 읽었다고는 해도 거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큰 인물들에 가려져서 잘 설명이 안 되고 지나가는 소무장들이 많은데 이런글들을 통해 알게되서 좋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9/05/26 14:23 #

    사실상 모리 나가요시가 이번 글에서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이죠.

    동생인 란마루보다 인지도는 많이 낮긴 합니다만 노부나가 시동으로서의 행적밖에 없는 동생과 달리 10년 정도를 전장 지휘관으로 구르면서 다양한 활약을 한 인물이었던 만큼 좀 더 평가받아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지 뜻을 못 펴고 20대 중반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경우이기에 비중 있게 다뤄지지 못하는 것 같더군요... 마이너한 무장의 행적을 아는 데 도움이 되셨다면 저도 포스팅한 보람을 느낍니다.
  • 無碍子 2019/05/26 17:27 # 답글

    시즈가타케가 7본창의 그곳입니까?
  • 3인칭관찰자 2019/05/26 17:47 #

    네 그렇습니다.
  • windxellos 2019/05/26 21:40 # 답글

    좀 다른 이야기지만, 노부나가의 아들 중 그나마 기량이 있었다는 평을 받는 노부타다나 노부타카는 전부 비명에 가고 결국 평균 이하라는 평가를 받은 노부카츠만 오래 살아 자손을 남겼다는 걸 보면 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영 위협이 안 될 정도로 무능해서 살아남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서도.
  • 3인칭관찰자 2019/05/26 22:14 #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는 속담이 노부카츠에게 들어맞지 않을까 하고 평소부터 생각해 왔습니다. 오히려 멍청하고 무능했던 덕에 다이묘 지위와 가문을 유지한 경우가 아닐까 싶네요.
  • 함부르거 2019/06/02 16:36 # 답글

    일본 역사를 보다 보면 지자무샤로 불리는 토착 호족들의 향배가 영향을 줄 때가 많은데 자세히 알기는 참 어렵습니다. 시나노를 비롯한 구 다케다령이 도쿠가와한테 넘어간 것도 그랬는데 보통은 한 줄로 퉁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죠. 사실 역사가들의 그런 식의 서술이 틀린 건 아니지만 뭔가 사람 사는 이야기를 알고 싶은 사람들한테는 좀 아쉽죠.
  • 3인칭관찰자 2019/06/02 17:20 #

    아무래도 마이너한 지방 토호같은 경우 수요가 적으니까요. ^^;; 마찬가지로 마이너한 향토사 잡지라면 모를까, 메이저한 출판사의 역사책 주역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은 면도 있지요.

    시나노 지방의 토호들에 포커스를 맞춘 책은 잘 모르겠지만 토쿠가와의 카이/시나노 정복전 or 토쿠가와 vs 호죠 vs 우에스기의 타케다 옛 영지 쟁탈전을 다룬 글이라면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한번 번역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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