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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나가군의 사령관》오다 노부타카와 시코쿠 방면군 (下) 역사



  예전 네이버 카페에 올렸던 글을 오늘 문서 정리 도중 발견해, 포스팅합니다. 오다 노부나가 가신단 연구의 권위자이신 타니구치 카츠히로谷口克広 님께서 2005년 집필하신《노부나가군의 사령관信長軍の司令官》의 해당 부분을 번역한 글입니다. 번역 실력이 지금보다 많이 미흡했던 때의 글이라 상당 부분을 뜯어 고쳤습니다.


  칸베 노부타카에 대해

  어떻든 간에, 그는 노부나가의 3남이라는 대우 이상은 받지 못하였고, 특히 장남인 노부타다信忠 / 차남인 노부카츠信雄에 비해 현격히 차별받았다.

  텐쇼 9년(1581) 2월에 개최된 우마소로에(馬揃え, 기마 열병식)를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때 장남 노부타다가 오다 일족 행렬의 스타트를 끊으며 80기를 인솔하여 행진, 그 뒤를 이어 노부카츠가 30기를 인솔한 데 비해, 노부타카는 삼촌인 노부카네信包보다도 뒤쳐진 4번째로 겨우 10기를 거느리며 행진하였다.

  노부타다 / 노부카츠의 어머니는 실질적인 노부나가의 정실이었던 이코마 씨生駒氏였기에, 동갑이라곤 해도 노부카츠와 격차가 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4남 이하는 가신에게 양자養子로 줘 버리는 등 거의 반쯤 버린 자식 정도의 대우밖에 하지 않았던 노부나가였기에, 그나마 노부타카는 아들 대접은 받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자식 대우라도 받았던 것은 노부타카의 자질에 따른 면이 크다. 크리스트교 선교사들의 노부타카 평가를 보도록 하자.

 【 전도유망한 청년. 】
 【 사려깊고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대단한 용사이다. 】

  크리스트교에 호의적이었던 듯한 노부타카이기에 이 평판은 어느 정도 값을 깎을 필요가 있으나, 일본인이 쓴 글에서도 노부타카의 평판은 우수하다.

 【 산시치 노부타카도 역시 쇼군(노부나가)의 아드님으로 지용이 범상치 않다. 】(《텐쇼키天正記》)
 【 지각과 영특함을 지니신 분으로 부족한 구석이 없다. 】(《카와스미타이코키川角太閤記》)

  여기에 비해, 노부카츠 쪽은 참담하다.

 【 미친 것인지, 지능이 낮은 것인지. 】
 【 차남은 멍청癡愚하여... 】(《예수회 일본연보》)

  노부타카의 자질을 인정한 노부나가는 언젠가 그에 적합한 지위를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다 일족으로서 노부카츠보다 상위에 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일족이라는 특별한 입장을 벗어난 곳에서 그의 자질을 살려보자. 이러한 사고의 결과가  이 '시코쿠 방면군' 의 사령관 인선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시코쿠 방면군의 출진

  5월 7일, 노부나가는 노부타카에게 보증서를 발급했다. 이후의 서술과 여러 가지로 연관되어 있는데다 그다지 긴 문서도 아닌 까닭에, 전문을 번안하여 게재하겠다.

  <금번, 시코쿠에 이르러 받들어야 할 조항들>

  - 사누키讃岐 지방을 너에게 주겠다.
  - 아와阿波 지방을 미요시 야마시로노카미(三好山城守, 야스나가康長)에게 주겠다.
  - 그 외 두 지방(토사土佐 / 이요伊予)의 처분은 노부나가가 탄슈(淡州, 아와지 지방淡路国)에 도착했을 때 결정하겠다.
  - 위의 조항을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지키고, 토착 세력들의 충성을 꼼꼼하게 살펴, 기용할 만한 무리는 기용하고 내쳐야 할 무리는 내쳐 정도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오직 야마시로노카미를 군신, 부모처럼 여기며 따르도록 해라.
  - 충절에 만족하고 있다. 훌륭히 그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 본다.
 
  제 1조부터 제 3조에 이르는 내용에 대한 문제는 후술하기로 하고, 일단 뒷부분의 내용을 다시 읽어주십사 한다.

  "오직 야마시로노카미를 군신, 부모처럼 여기며 따르도록 해라." 바로 이 구절이다.《우노 몬도 일기》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 산시치로 님(노부타카). 아슈(阿州, 아와) 미요시 야마시로노카미의 양자가 되어 도해渡海하신다. 】

  칸베 노부타카는 칸베 씨神戸氏의 양아들이다. 양아버지 토모모리具盛는 강제로 은거당하였기에 이 때는 칸베 씨의 당주 지위에 있었다. 노부나가는 노부타카가 이세 지방 소영주에 불과했던 칸베 가문 대신 명문가인 미요시 가문을 이어받도록 하려던 것 같다.

  그런 행동에는 자기 밑에서 시코쿠를 통치할 자는 벼락출세한 신흥 쵸소카베 씨보다 명문가인 미요시 씨가 적합하다, 는 주장이 내포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즈치安土를 출진한 노부타카는 5월 29일, 사카이堺 북쪽에 있는 스미요시住吉에 도챡했다. 총 병력은 1만 4천 명. 부장인 니와와 노부즈미는 오사카大坂에, 하치야는 키시와다岸和田에 병력을 집결시켜 놓았다. 시코쿠 도해 예정날짜는 (1582년) 6월 3일. 이미 그 준비는 충실히 갖추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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