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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 다이몬] 미야모토 무사시와 1차 사료 역사



출처 : 와타나베 다이몬渡邊大門 著,宮本武蔵 謎多き生涯を解くp.140 ~ 143. 平凡社新書, 2015.


  무사시에 관한 1차 사료

  (미야모토宮本) 무사시武蔵에 관한 1차 사료는 과연 어느 정도가 남아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1차 사료란 '무사시 본인이 발신자가 된 편지 내지 타인이 무사시에게 보낸 편지' 정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동시대에 쓰여진 일기日記' 등의 기록물 부류는 다분히 주워들은 요소를 함유하고 있어도 위에 준하는 급으로 포함된다.

  '무사시 사후 간행公刊된 사료'(편찬문헌)는 2차 사료로 분류된다. 지금까지 빈번히 언급해왔던《니텐키二天記》나 가계도家系圖 부류들은 모두 2차 사료에 속한다. 2차 사료란 '어떤 사건 내지 인물에 대한 사실을 후대에 정리한 사료들'로, 일반적으론 후세에 만들어졌다 하여 사료적 가치가 비교적 떨어지는 걸로 간주된다. 군담물 이야기軍記物語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2차 사료 중에도 1차 사료를 잘 구사한 탁월한 내용의 기록물들이 있지만, 남에게 주워들은 이야기 / 가계도 / 출처가 수상쩍은 사료들로 구성된 문헌들이 다수를 점한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 의도(조상을 부각시키기 위한 목적 등)에 따라 집필된 기록들도 적지 않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2차 사료를 이용할 때는 충분한 검증檢證을 하는 행위가 지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2차 사료라고 해도 성립년도가 이르거나(사건 종료 직후 내지는 인물이 죽은 후 곧장 쓰여진) 명문가名門家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헌일 경우 양질良質의 사료라고 믿어버리기가 쉬우나 어디까지나 중요한 건 그 내용으로, 위와 같은 믿음은 그다지 의미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1차 사료의 경우 당시의 무사시가 실제로 직접 편지왕래를 한 것이므로 신빙성이 높으나, 2차 사료의 경우 주워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타인이 기록한 이야기가 많아 그렇지 못하다. 오류誤り나 창작創作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사료적 성질 자체부터 문제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인물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성을 지닌 문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2차 사료에 전면적인 믿음을 주는 건 위험하다는 것이다. 무사시 관련 저서나 논문 중엔 2차 사료에 기반해 쓰여진 것들이 많고, 그러한 상황을 토대로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다. 신뢰할 수 없는 사료에 기반하여 주장을 반복하는 건 그다지 의미 없는 일이라 하겠다.

  유감이지만 무사시에 관한 1차 사료는 극도로 희소하다. 무사시가 발신자로 기록된 편지는 고작 몇 점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했듯이 무사시의 주변인(아버지 등)에 대한 사료도 그다지 많지가 않다. 역사연구를 해 나가는데 있어 1차 사료가 극단적으로 부족하다는 건 치명적인 문제다. 어째서 무사시에 관한 1차 사료가 적은 걸까? 그 이유를 이것저것 생각해보기로 하자.


  무사시의 1차 사료가 희소한 이유

  일반적으론 "무사시 정도의 저명인사니, 편지 부류가 많이 남아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의 역사에서 살아남기 쉬운 사료는 권리관계權利關係를 증명하는 고문서古文書들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번주로부터 봉록(俸祿. 급여給與, 녹봉)을 내려받았음을 증명하는 문서는 후대의 증거로 남기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러나 무사시에겐 사관仕官의 경험은 없다고 추측되기에(만년에 들어 호소카와 가문細川家의 영지에 체재하고 있던 건 사관한 것이 아니라 손님 대우를 받은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사료가 남겨지긴 어렵다.

  그리고 무사시는 각지를 전전하였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정주하였으리라 생각하기가 힘들다. 무사시 본인은 아마 많은 편지를 쓰고 받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러나 그는 편지를 받았더라도 단순한 사적 기록이었던 편지를 보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대다수는 그냥 처분해 버렸으리라 생각된다. 권리관계가 수반되지 않는 문서였던 만큼, 굳이 보존해야 할 이유도 궁색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무사시에 관한 사료는 극히 잔존률殘存率이 저조하다. 뭐 역으로 생각하자면 현존하는 무사시 관련 1차 사료나마 지금까지 보존되어온 것만 해도 행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무사시가 남긴 그림 등의 예술작품은 대단히 많은 양이 전해 내려오기에 이를 토대로 미술사美術史 관점에서의 연구가 행해지고 있다. 본서에서는 이 방면을 다루지 않을 것으로, 다음의 기회를 기다리려 한다.

  무사시에 관한 사료집史料集, 자료집資料集 중에서 마루오카 무네오丸岡宗男 씨가 편집하신《미야모토 무사시 명품집성宮本武蔵名品集成》(코단샤)에는 무사시와 관련된 그림 / 문헌사료가 폭넓게 수록되어 있다. 도판도 풍부하여, 대단히 편리한 사료집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책의 출간시점 기준으로 가장 많은 양의 무사시 관련 자료 / 사료 / 그림들을 수록하였지만 아무래도 무사시의 문헌 사료가 극히 희소한 만큼, 앞으로 적극적인 사료조사를 행할 필요가 있으리라 본다.

  이처럼 무사시를 알아 나가는 데는 사료상의 제약이 너무나 커서, 그의 전반생(정확히 말하자면 말년이 될 때까지 그러하다)은 2차 사료에 기대어 짚어나갈 수밖에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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