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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무장 인기의 뒷사정》마에다 토시이에의 그릇 역사



  본 글은 2008년, 일본출판사 PHP연구소에서 신서본新書本으로 간행된 스즈키 마사야鈴木眞哉 님의 저서《전국무장ㆍ인기의 뒷사정戰國武將の人氣のウラ事情》제 4장 <주변인들이 본 전국무장> 중 9편인【 마에다 토시이에는 대물인가 소물인가 】부분(p. 142 ~ 144)을 번역한 것입니다. 위 책은 2020년 현재 문고본으로 신판이 출시되어 있으므로 이 이상의 번역글은 올리지 않으려 하며, 이미 포스팅한 내용도 절대로 배포나 불법공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명확히 하겠습니다.


  가모 우지사토(蒲生氏郷, 1556~1595)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를 높이 평가한 반면,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그다지 호평하지 않았다고 제 1장에서 거론한 바 있으나, 이 일화는《로진자츠와老人雑話》라는, 우지사토보다 9세 연하로 100세의 수명을 누린 유학자 겸 의사儒医 에무라 센사이江村専斎가 기록한 이야기들을 정리한 책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우지사토는 측근으로부터 "타이코(太閤, 역주 :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세상을 떠나면 칸파쿠 님(關白樣, 히데요시의 양자 토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을 따르시렵니까?" 질문을 받자 "그런 멍청이를 따를 자가 누가 있나?"고 답했다. 측근이 "그렇다면 누가 천하의 주인이 되겠습니까?"라고 거듭 묻자, "카가의 마타자에몬(又左衛門, 토시이에)이지."라 우지사토는 이야기했다. "마타자에몬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또 질문하자 우지사토는 "그렇게 되면 내가 천하를 잡아야지."라고 답했다.

유력 다이묘 중 하나였던 가모 우지사토의 초상화.(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아이즈会津를 중심으로 토호쿠 남부 지역에 92만 석 영지를 갖고 있었다.


  이 대화에선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습니까?"라는 질문도 나왔다. 우지사토는 "그 자는 남에게 녹봉을 통 크게 내려줄 수 있는 타입이 아니어서 도저히 천하를 잡을 만한 인물로는 보이지 않아." 라고 답한 반면, "토시이에는 남이 과분해 할 정도로 통 크게 베풀 줄 아는 자이니 천하를 잡을 만 한 건 그 사람이라 생각하네." 라고 평가했다.

  포상을 받은 자가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될까요."라고 당혹해 할 정도로 통 크게 상을 내리는 건 히데요시의 수법이다. 우지사토의 말대로라면 토시이에도 히데요시의 수법을 따라하고 있단 말이 된다. '그 정도로 베풀어야 사람들이 따라오기 마련이므로, 천하를 잡기 위해선 이익을 잘 뿌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우지사토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참고로 이에야스의 경우는 그가 구두쇠였음을 이야기하는 일화가 적잖이 남아 있는 반면, 씀씀이가 헤펐음을 전해주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1560~1600)는 히데요시가 죽은 후 열심히 토시이에의 등을 떠밀었으나, 이는 이에야스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이었지 그 자신이 우지사토처럼 토시이에를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니었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미츠나리는 마시타 나가모리増田長盛 / 나츠카 마사이에長束正家들과 앞날을 논의하는 와중에 마에다 토시이에 / 토시나가利長 부자父子를 "담이 작은 자들이야." 라고 평했다 한다. "지략과 무용을 겸비했을진 모르나, 시세에 편승하여 입신하고 집안을 보전하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아." 라는 이유였다.

토시이에의 적남嫡男 마에다 토시나가의 초상화(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아들을 얻지 못했기에 서출 동생 토시츠네利常에게 가문을 물려주었다.


  이 때 미츠나리는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の戦い 당시를 거론하며, "그 당시 토시이에 / 토시나가 부자는 본래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의 둘도 없는 아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데요시 공이 승리를 거둘 것 같자 곧바로 카츠이에를 떠나 히데요시 공에게 가담했고, 그 덕택에 오늘과 같은 높은 관위와 막대한 녹高位大祿을 누릴 수 있었던 거지." 라고 덧붙였다. 보신保身의 지혜는 있을지 모르나, 적극적으로 승부에 나서 천하를 다툴 그릇은 아니라는 게 미츠나리의 관찰이었던 것이리라.

  물론 이 이야기는 에도 막부 시대 후기의 오쿠쥬샤(奥儒者, 역주 : 쇼군의 시강侍講을 담당하는 유학자)였던 나루시마 모토나오成島司直가 편찬한《카이세이미카와고후도키改正三河後風土記》가 전하는 내용이므로, 우지사토 쪽 이야기와는 달리 정말로 미츠나리가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 보장할 순 없다. 나루시마 본인의 견해라고까진 할 수 없을지라도, 어쩌면 에도 시대 사람들이 토시이에를 바라보던 시각을 미츠나리의 입을 빌려 이야기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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