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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무장 인기의 뒷사정》마에다 토시이에의 그릇 역사



  본 글은 2008년, 일본출판사 PHP연구소에서 신서본新書本으로 간행된 스즈키 마사야鈴木眞哉 씨의 저서《전국무장ㆍ인기의 뒷사정戰國武將の人氣のウラ事情》제 4장 <주변인들이 본 전국무장> 중 9편인【 마에다 토시이에는 대물인가 소물인가 】부분(p. 142 ~ 144)을 번역한 것입니다. 위 책은 현재 종이책으론 절판된 상태이나, 아마존 킨들 등을 통해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는 책입니다. 가능한 한 필요한 부분만 번역하겠으며, 절대로 배포나 불법공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명확히 하겠습니다.


  가모 우지사토(蒲生氏郷, 1556~1595)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를 높이 평가한 반면,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그다지 호평하지 않았다고 제 1장에서 거론한 바 있으나, 이 일화는《로진자츠와老人雑話》라는, 우지사토보다 9세 연하로 100세의 수명을 누린 유학자 겸 의사儒医 에무라 센사이江村専斎가 기록한 이야기들을 정리한 책에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우지사토는 측근으로부터 "타이코(太閤, 역주 :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세상을 떠나면 칸파쿠 님(關白樣, 히데요시의 양자 토요토미 히데츠구豊臣秀次)을 따르시렵니까?" 질문을 받자 "그런 멍청이를 따를 자가 누가 있나?" 고 답했다. 측근이 "그렇다면 누가 천하의 주인이 되겠습니까?" 라고 거듭 묻자, "카가의 마타자에몬(又左衛門, 토시이에)이지." 라 우지사토는 이야기했다. "마타자에몬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라고 또 질문하자 우지사토는 "그렇게 되면 내가 천하를 잡아야지." 라고 답했다.

유력 다이묘 중 하나였던 가모 우지사토의 초상화.(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아이즈会津를 중심으로 토호쿠 남부 지역에 92만 석 영지를 갖고 있었다.


  이 대화에선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떻습니까?" 라는 질문도 나왔다. 우지사토는 "그 자는 남에게 녹봉을 통 크게 내려줄 수 있는 타입이 아니어서 도저히 천하를 잡을 만한 인물로는 보이지 않아." 라고 답한 반면, "토시이에는 남이 과분해 할 정도로 통 크게 베풀 줄 아는 자이니 천하를 잡을 만 한 건 그 사람이라 생각하네." 라고 평가했다.

  포상을 받은 자가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될까요." 라고 당혹해 할 정도로 통 크게 상을 내리는 건 히데요시의 수법이다. 우지사토의 말대로라면 토시이에도 히데요시의 수법을 따라하고 있단 말이 된다. '그 정도로 베풀어야 사람들이 따라오기 마련이므로, 천하를 잡기 위해선 이익을 잘 뿌릴 줄 알아야 한다.' 는 게 우지사토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참고로 이에야스의 경우는 그가 구두쇠였음을 이야기하는 일화가 적잖이 남아 있는 반면, 씀씀이가 헤펐음을 전해주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시다 미츠나리(石田三成, 1560~1600)는 히데요시가 죽은 후 열심히 토시이에의 등을 떠밀었으나, 이는 이에야스에 대항하기 위한 방편이었지 그 자신이 우지사토처럼 토시이에를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니었다. 히데요시가 죽은 후 미츠나리는 마시타 나가모리増田長盛 / 나츠카 마사이에長束正家들과 앞날을 논의하는 와중에 마에다 토시이에 / 토시나가利長 부자父子를 "담이 작은 자들이야." 라고 평했다 한다. "지략과 무용을 겸비했을진 모르나, 시세에 편승하여 입신하고 집안을 보전하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아." 라는 이유였다.

토시이에의 적남嫡男 마에다 토시나가의 초상화(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아들을 얻지 못했기에 서출 동생 토시츠네利常에게 가문을 물려주었다.


  이 때 미츠나리는 시즈가타케 전투賤ヶ岳の戦い 당시를 거론하며, "그 당시 토시이에 / 토시나가 부자는 본래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의 둘도 없는 아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히데요시 공이 승리를 거둘 것 같자 곧바로 카츠이에를 떠나 히데요시 공에게 가담했고, 그 덕택에 오늘과 같은 높은 관위와 막대한 녹高位大祿을 누릴 수 있었던 거지." 라고 덧붙였다. 보신保身의 지혜는 있을지 모르나, 적극적으로 승부에 나서 천하를 다툴 그릇은 아니라는 게 미츠나리의 관찰이었던 것이리라.

  물론 이 이야기는 에도 막부 시대 후기의 오쿠쥬샤(奥儒者, 역주 : 쇼군의 시강侍講을 담당하는 유학자)였던 나루시마 모토나오成島司直가 편찬한《카이세이미카와고후도키改正三河後風土記》가 전하는 내용이므로, 우지사토 쪽 이야기와는 달리 정말로 미츠나리가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 보장할 순 없다. 나루시마 본인의 견해라고까진 할 수 없을지라도, 어쩌면 에도 시대 사람들이 토시이에를 바라보던 시각을 미츠나리의 입을 빌려 이야기했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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