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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료타로] 소설《고개峠》- 니이가타와 나가오카 독서



  - 막부 말기가 끝나가던 무렵엔 사츠마(薩摩, 시마즈 가문島津家 77만 석)ㆍ쵸슈(長州, 모리 가문毛利家 36만 9천 석) 세력은 그야말로 깡패였다. 폭력暴力을 앞세워 자신의 전략戰略에 유리한 쪽으로 정의正義와 불의不義를 재단했는데, 그 '불의'의 편에 삿쵸薩長 세력보다 한 발 늦게 진보한 근대사상을 지닌 번이 있을 경우엔 역사는 비통한 쪽으로 흘러갔다.

  - 카와이 츠기노스케河井継之助가 지도하던 에치고 나가오카 번(越後長岡藩, 마키노 가문牧野家 7만 4천 석)이란 조그만 번小藩이 그러했다. 카와이는 삿쵸가 시대적 구호인 '존왕尊王' 사상을 마법의 지팡이처럼 써먹는 것도, 양이攘夷라는 이름의 저열한 국민감정이 번져가는 것을 정의론화시켜 막부 타도倒幕를 도모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 사츠마 쵸슈는 도사 번(土佐藩, 야마우치 가문山內家 20만 2천 석) 무사 이와무라 세이이치로岩村精一郎를 앞세워 오지야小千谷에서 벌인 담판에서 카와이를 윽박질렀다. 삿쵸가 받드는 '조정朝廷'의 굴욕적인 예속번이 되라는 것이다. 이 요구에는, 토쿠가와 막부徳川幕府를 배반하라는 윤리적 과제와 터무니없는 액수의 금전헌납이 포함되어 있었다.

젊은 시절의 이와무라 세이이치로(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岩村高俊')
오지야 담판 / 사가의 난 당시의 행적 때문에 안티가 많은 인물이다.


  - 카와이는 나가오카 번만을 일종의 유럽식 공국으로 근대화시키려는 개혁을 하고 있었고, '미츠이의 앞잡이三井の大番頭' 라도 된 듯한 기세로 산업국가産業國家를 지향한 합리주의 정책을 시도했던 사람이지만, 자기 번이 굴욕적인 생존生存이냐 명예로운 파멸破滅이냐 하는 양자택일을 강요받자 비합리론자로 전향하여 무사도武士道를 관철했다. 이성적으론 근대화의 앞잡이었을지언정 그 본질은 무사士였던 것이 카와이의 크나큰 모순이었다.

에이료사栄涼寺에 있는 카와이 츠기노스케의 묘
(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河井継之助')


  - 그는 이 모순을 통일하지 못한 채, 요란하고 격렬하고 미학적인 파멸로 가는 길을 택했다. 막부 말기幕末에 응축된 수많은 풍경 속에서, 윤리적 대결을 기조로 하는 그리스 비극의 정경 속으로 자기 자신과 그 집단을 끌고 간 사람은 카와이 하나밖에 없다.

  - 전쟁이 터지자 삿쵸 측은 몇 번이나 절망적인 참상으로 내몰렸다. 이 방면의 삿쵸 측 총지휘관이었던 야마가타 쿄스케(山県狂介, 아리토모有朋)는, "적이 지키는 성채의 화톳불이 타오르는 밤에 여름인데도 코시越의 산바람이 몸에 스민다." 는 시를 지었다.

  - 탄카短歌 가인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물건이지만, 이 시기의 야마가타에게는 당대의 가장 거대한 정책가를 적으로 돌렸다는 인식이 없었다. 나는 카와이란 인간과, 그런 인간이 작은 집단에서 나온 괴이함을《고개》에서 썼고, 남겨진 의문점을 단편작《영웅아》에서 다루었다.


덧글

  • 2019/02/05 15: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2/05 12: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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