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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동인잡지《가면仮面》과 사람들 아오조라문고



원제 :「仮面」の人々
출처 :
아오조라 문고


  학생시절 나는 제 3차&4차《신사조新思潮》동인들과 가장 친밀하게 지낸 바 있었다. 원래 작가지망생도 아니었던 내가 결국 작가가 되어 버린 건, 전적으로 그들이 끼친 악영향 때문이다. 전적으로? 물론 전적이라고 하기에는 의문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 나는 그들 외에 와세다(早稲田, 와세다 대학) 쪽 사람들과도 교류하고 있었다. 그 자들도 청정했던 내게 악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그 자들이란 게 다름아닌 동인잡지《가면》을 출간하고 있던 히나츠 코우노스케日夏耿之介 / 사이죠 야소西条八十 / 모리구치 타리森口多里 제군들이다. 나는 산구 마코토山宮允 군과 함께 붉은 삿갓처럼 생긴 전등을 달아놓은 사이죠 군의 응접실로 한두 번 놀러갔었다. 히나츠 군과 모리구치 군은 물론이요, 선생님 격이었던 요시에 코간吉江弧雁 씨께 나를 소개하였던 곳도 이 응접실이었다. 당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이젠 완전히 잊어버려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언젠가 괴담怪談을 들은 날 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던 비 내리는 오오쿠보大久保에서 질색하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던 기억은 난다.

중년기의 히나츠 코우노스케(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그러나 그 후 요시에 씨를 위시하여, 사이죠 군과 모리구치 군과도 오랫동안 격조해있었다. 카마쿠라 오오마치鎌倉大町에서 지낼 무렵 히나츠 군도 하세長谷로 거처를 옮겼기에, 유일하게 히나츠 군과는 때때로 왕래하며 지내었다. 당시 히나츠 군의 다다미 8개짜리 객실은 (나와) 마찬가지로 세를 얻은 방으로, 죄다 장지를 닫아도 토코노마床の間 벽에서 술술 바람이 새어왔던 게 우스웠다. 그러나 카마쿠라를 떠난 이후로는 히나츠 군과도 언제부턴가 소원疎遠해지고 말았다. 제군들은 모두 건재한가. 히나츠 군은 때때로 츄오코론中央公論에 시詩와 관련한 긴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원고를 쓰고 있는 그의 방에는 더 이상 토코노마에서 바람 따위가 새어 들어올 일은 없을 것이리라.

- 타이쇼 13년(1924)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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