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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춘추 Special》다테 마사무네, 최후의 야망 (下) 역사



  이 글은 일본의 거대출판사인 분게이슌쥬文芸春秋에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삼아 3달에 1번씩 계절별로 출간하던 잡지인《文芸春秋 Special》의 2016년 봄호 p.98 ~ 105, 아오모리츄오가쿠인대학의 오오이즈미 코우이치大泉光一 교수님께서 집필하신《다테 마사무네 - 독안룡獨眼龍이 로마 교황에게 보낸 밀사를 번역한 글입니다.


  <오오이즈미 코우이치大泉光一>

  1943년 나가노 현長野에서 출생. 멕시코 국립자치대학国立自治大学 연구원 -> 스페인 국립 바야돌리드 대학国立バリャドリッド大学 객원교수 -> 니혼대학日本大学 교수 지위를 거친 후 현직에 이르렀다. 저서로《하세쿠라 츠네나가》(츄코신쇼中公新書) 등이 있다. 근래 간행된 저서는《마사무네의 음모》(오오조라슛판샤大空出版社)


  스페인 정부의 불신

  케이쵸 18년 9월 15일(=1613년 10월 28일). 다테 번과 막부가 합동한 총 180명의【 訪 멕시코 통상사절단 】이 (지금의) 이시노마키 시 츠키우라 항구(石卷市月浦港, 일설에 따르면 이시노마키 시 오카츠 만雄勝湾이라고도)를 출범했다.

  다음 해인 1614년 1월, 아카풀코 항구에 도착한 하세쿠라 등의 다테 번 무사 몇 명과 막부 측 무카이 쇼겐의 가신들은 멕시코 부왕【 과달카사르 후작 】을 알현하여, 막부로부터 칭탁받은 대로 이에야스에게 답서를 보내도록 재촉하는 한편 다테 번과 스페인 사이에 9개 조항으로 이루어진《합의문申合条条》을 체결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여기서부터가 마사무네와 소텔로의 '음모陰謀' 였다. 귀국하는 막부 측 일행과 헤어진 하세쿠라 일행(다테 번 무사들 + 일본인 키리시탄들)은 독자적으로【 訪 유럽 사절단 】을 편성, 스페인->로마로 향하게 된다. 다테 번 단독으로 벌이는 비밀외교가 시작된 것이다.

  1614년 5월 멕시코 시를 출발한【 訪 유럽 사절단 】은 도중에 스페인 함대에 승선, 쿠바를 경유하여 스페인 남부에 도착했다. 소텔로의 출신지【 세빌리아 】시에 도착한 사절단은 같은 해 10월 21일에 시청을 방문해 다테 마사무네의 친서와 증정품인 일본도를 시장에게 선물했다. 이 마사무네의 친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우리나라에 찾아온 프라이 루이스 신부로부터 훌륭한 주님의 가르침과 그 사적을 듣고서 그 분의 가르침은 진실되며 확실한 구원을 받는 길이자 성스럽고 훌륭한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그 가르침에 따라 크리스트 교도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중략) 귀국貴國에는 세계 방방곡곡의 선박과 수많은 항해사가 모인다고 들었다. 그들로 하여금 일본에서 귀국까지 직접 항해가 가능한지, 어떤 경로를 거치며 어떤 장소 / 항구에 기항해야 하는지를 검토하도록 명령해 주길 바란다. 】

  만약 이에야스가 이 마사무네의 친서를 읽어봤다면 즉각 다테 번의 영지를 몰수하고 타카야마 우콘高山右近에게 그랬듯 키리시탄 다이묘キリシタン大名란 이유로 마사무네를 필리핀에 추방해버렸을 것이다.

  하세쿠라와 소텔로는 스페인 정부가 파견한 통상원 원장에게 사정청취를 받았다. 이 때 하세쿠라와 소텔로는 "선교사 파견 요청은 일본의 황제(皇帝, 쇼군將軍)의 인증을 받은 것이다." 며 허위로 설명했다.

  그러나 스페인 쪽은 이미 일본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크리스트교 금교령을 발포한 일본의 황제 = 쇼군이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고 있는 오슈의 왕(마사무네) 같은 자의 대응을 인정할 리가 없다."3 며 사절단의 모순을 갈파하고, 하세쿠라와 소텔로에게 깊은 의심을 품고 있었다.

  새해가 밝은 후인 1615년 1월 30일, 하세쿠라 츠네나가는 수도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를 알현, 마사무네의 친서와《합의서》를 건네며 (프란체스코회) 선교사를 파견해 줄 것을 열심히 요청했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의 초상화(출처 : 위키피디아 'Philip III')


  같은 해 2월 17일, 하세쿠라는 왕립선족회王立跣足會 여자수도원 부속교회에서 국왕 임석하에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세례식 직후 하세쿠라는 국왕, 그리고 국정 담당자인【 레르마 공작 】에게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카톨릭 신도만이 임명될 수 있다)로 임명해 달라." 고 청원서를 제출해가면서 열심히 요청했다.

  하세쿠라가【 산티아고 기사단 】의 기사가 된다는 건 그가 마사무네의 신하임과 동시에 스페인 국왕의 신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이를 통해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지원(군사적인 면까지 포함한)을 받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스페인 측은 이 하세쿠라(더 나아가서는 마사무네)란 자가 어떤 특별한 목적(야망)을 감추고 있으리라는 의혹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하세쿠라가 일본에 돌아가서 배교棄敎할 공산이 있다." 는 이유로, 이 청원을 각하4하였다.

  그리고 스페인 정부는 멕시코와 센다이 번 간의 통상교역 문제에 관해서도 "필리핀 무역을 교란시킬 수 있다." 고 판단했다. 이러한 일련의 판단 배후에는 "일본의 황제(쇼군)에겐 이미 크리스트 교를 용인해줄 여지가 없다." 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결국 사절단 일행은 스페인 정부와의 외교교섭에서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 카톨릭 국왕 】청원을 거부하다

  1615년 8월, 사절 일행은 최후의 목적지인 로마로 가기 위해 마드리드를 출발했다.

  10월 29일, 로마 교황은 머나먼 동양에서 찾아온 사절이 로마를 방문했음을 전 세계에 알릴 목적으로 성대한 입시식入市式을 거행해주었다. 그리고 11월 3일, 하세쿠라와 소텔로를 위시한 사절 일행은 마사무네의 대리인 신분으로 교황 파울루스 5세(=바오로 5세)에게 "복종과 충성" 을 서약하기 위해 교황을 알현했고, 마사무네의 친서를 봉정했다.

교황청에서 츠네나가에게 증정한 로마 시 공민권증
(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慶長遣欧使節')


  이 친서에서 마사무네는 교황에게 (프란체스코 회 소속) 선교사를 파견해 줄 것 고위성직자(高位聖職者, 사교司敎)를 임명해 줄 것  멕시코와의 통상교역 개시를 실현시키기 위한 중재를 서 줄 것 등을 청원했다.

  이에 대한 회답은 바티칸 기밀문서관에 보존되어 있었다.

  소칙서(小勅書, 로마 교황이 내리는 가장 중요한 정식통지. 말미에 교황의 인장(Bulla)이 첨부된다)와 이단심문회의의 결의에 따른 회답문서 초안5 등이다.

  이들 문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마사무네를【 카톨릭 국왕 】으로 서임해 줄 것, 그리고【 크리스트 교도로 이루어진 기사단 】을 창설하게 해 달라는 청원이 행해졌다." 고 명기하고 있는 점이다.

  카톨릭 국왕 마사무네가 로마 교황의 공인 하에 크리스트 교도들로 구성된 기사단을 인솔한다. - 는 것은 그야말로 토쿠가와 체제에 대한 강렬한 반역,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로마 퀴리날레 궁전에서의 사절단 일행들
(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ルイス・ソテロ')

앞열 왼쪽츠네나가. 앞열 오른쪽소텔로


  이에 대해 로마 교황청은 어떻게 답했을까?

  교황청은 이 청원을【 이단심문회의 】에 부쳤다. 그리고 두 요청 모두를 "마사무네는 크리스트 교도가 아니다." 는 이유로 거부하였다. 그러나 "마사무네가 세례를 받고【 카톨릭 국왕 】이 된다면, 통상적으로【 카톨릭 국왕 】에게 주어지는 갖가지 만족(滿足, 권리를 가리킴. 예를 들자면 사교 임명권 등)이 주어지고, 산 피에트로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는 첨부도 더해졌다.

  참고로 마사무네가【 카톨릭 국왕 】이 되고 싶어한다는 정보는 프란체스코 회의 라이벌인 예수회 쪽에서도 입수한 바 있었다. 예수회 측의 사료인《루이스 소텔로 관계문서》(센다이 시 박물관 소장)에서도【 루이스 소텔로 신부가 다테 그리고 이름은 마사무네란 자를 일본 영토의 카톨릭 국왕으로 서임받도록 하기 위해 로마 교황에게 청원했다는 건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흥미로운 건, 마사무네 외교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카톨릭 국왕 】과【 기사단 창설 】어느 쪽도 마사무네가 로마 교황에게 보낸 친서와 앞에서 언급한 <일본 키리시탄들의 연서장> 등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즉 막부 쪽에 정보가 누설되는 것을 꺼려해 사절단 중에서도 극히 한정된 인물 외에는 극비사항이어서, 소텔로와 하세쿠라, 그리고 키리시탄 대표자 3명만이 로마 교황에게 비밀리에 구두로 청원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은 스페인 체재 중에도 이 두 건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고, 로마 교황에게만 이를 명언했다. 말하자면 '비밀 중의 비밀' 이었던 셈이다. 로마 교황청 측은 이 점을 배려하여 회답문서에서 본래의 의미인【 크리스트 교도의 왕 내지는 카톨릭 국왕 서임 】이란 표현을【 검(劍, 왕좌)과 모자(帽子, 왕관)의 서임 】이란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해 에둘러 회답하였다.

  이 점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를 살아남은 마사무네의 만만찮은 모습이 엿보인다. 마사무네는 토요토미 정권豊臣政權 시기 몇 번이나 모반혐의를 추궁받아 궁지에 몰렸던 경력이 있었다.【 방유사절단 】파견 때도 막부 토벌의 계략을 막부가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하세쿠라와 그 수행원들은 극도로 신중하게 행동했다. 그러나 하세쿠라의 너무나 강한 경계심에 교섭의 상대인 스페인 정부와 로마 교황청조차 의심을 품게 되었고, 최후까지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토요토미 히데츠구의 초상(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豊臣秀次')
마사무네도 그가 히데요시에게 숙청당할 때 거의 연좌될 뻔 했다.


  사절단 일행은 1616년 1월 7일 로마를 출발하여 그 해 4월, 곤궁함에 빠진 상태로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의 대응은 냉정해져, 즉각 국외추방에 처해질 위기를 맞았다. 하세쿠라와 소텔로는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 약 1년 반 가까이 버티긴 했으나, 결국 다음 해인 1617년 6월 13일에 스페인 정부는 그들에게 강제적인 국외퇴거명령을 내렸다. 1620년 8월 24일, 하세쿠라들은 센다이로 돌아갔다. 실로 7년에 달하는 여행이었다.


  만약 마사무네의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만약 마사무네가 구상하던 대로 로마 교황으로부터【 카톨릭 국왕 】으로 서임되고, 로마 교황 지배하의【 기사단 창설 】을 인정받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국내에서는 로마 교황의 보증서를 이용하여 30만 명 이상의 키리시탄들을 규합하고, 스페인으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토쿠가와 막부에 접근하던 네덜란드 / 영국 등의 프로테스탄트 세력과 카톨릭 세력이 된 다테 군 간에, 세계사에 남을 만한 대리종교전쟁으로 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얄궂게도 이러한 장대한 계획을 저해하는 최대 장애요소는, 마사무네 본인이었다. 마사무네는 로마 교황이나 스페인 국왕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서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라는 애매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에겐 애초부터 막부(와 국법國法)와 척을 지면서까지 진심으로 크리스트 교도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는 막부 토벌 계획이 어긋날 경우를 우려하여, 가장 비겁하다고 할 수 있는 기회주의적 방도도 서슴지 않았다.

  하세쿠라들이 센다이로 돌아온지 이틀이 지난 후, 마사무네는 키리시탄을 상대로 잔학한 박해를 시작했다. 스페인 국왕과 로마 교황과의 외교교섭이 실패한 이상 카톨릭 교는 마사무네 입장에선 써먹을 데가 없었고, 그는 즉각 본심을 드러내어 영내에서 비호해 오던 수많은 키리시탄들을 배신한 것이다.

묘역에 안치되어 있는 마사무네의 목상(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伊達政宗')


  결국, 마사무네의 천하를 향한 꿈도 허무하게 스러졌다. 그러나 하세쿠라 사절단의 사적만큼은 멕시코 ~ 유럽 각지에서 역사적 중요사료가 되어 남겨졌다. 전국시대 인물의 야망과 노력은 세계사에 깊이 새겨진 것이다.


  3. 스페인 국립 시만카스 총문서관(A.G.S.) Estado Legal 2644,37
  4. 인디아스 고문서관(A.G.I.) Filipinas 1, No.158
  5. A.S.V., Fondo Borghese, Serie Ⅳ. No.63, Lettere Dicerse, 1615


덧글

  • 2019/01/31 09: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1/31 12:5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9/01/31 10: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1/31 12:5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남중생 2019/01/31 18:49 # 답글

    재미있네요!!! +_+
    이번에 아마존 프라임에서 방영한다는 MAGI와 함께 시의적절한 연재라고 생각합니다.ㅎㅎ
  • 3인칭관찰자 2019/01/31 20:15 #

    남중생님 댓글 보고 검색해봤는데, 이런 드라마도 있었군요. 텐쇼 큐슈 소년 사절단이 이야기의 중심으로 그려지는 사극이라니 참신합니다. 세계 시장을 노린 작품답게 스케일이 커 보이네요 ㅎㅎ
  • 남중생 2019/01/31 20:56 #

    네! 포르투갈어 대신 영어를 쓴다는게 슬프긴 하지만... 어른들의 사정, 이해합니다. ㅠ
  • 동두철액 2019/02/01 22:33 # 답글

    마사무네가 크리스트교도라고 거짓말도 할 법한데 안한게 신기하군요. 진짜 군사원조요청을 위해 보냈는지 의심이 드네요.
  • 3인칭관찰자 2019/02/01 23:16 #

    키리시탄이란 이유만으로 무자비한 박해가 행해지던 시대였던 만큼 몸을 사렸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히데요시 정권 시기에만 3번의 모반혐의를 받은 바 있던 이력도 있는 만큼 유럽에서 공공연히 자신이 키리시탄 다이묘라 밝혔다가 운 나쁘면 그 문제가 일본에서 불거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런지...

    그리고 하세쿠라 사절단에 한하면 그 '단계'에서는 직접적인 군사원조를 요청하는 수준이 아닌, 나중에 그런 제휴를 할 수 있도록 할 기초를 다지려는 의도가 더 컸을 것 같습니다.(결국 그것조차 실패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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