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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춘추 Special》다테 마사무네, 최후의 야망 (上) 역사



  이 글은 일본의 거대출판사인 분게이슌쥬文芸春秋에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삼아 3달에 1번씩 계절별로 출간하던 잡지인《文芸春秋 Special》의 2016년 봄호 p.98 ~ 105, 아오모리츄오가쿠인대학의 오오이즈미 코우이치大泉光一 교수님께서 집필하신《다테 마사무네 - 독안룡獨眼龍이 로마 교황에게 보낸 밀사를 번역한 글입니다.


  <오오이즈미 코우이치大泉光一>

  1943년 나가노 현長野에서 출생. 멕시코 국립자치대학国立自治大学 연구원 -> 스페인 국립 바야돌리드 대학国立バリャドリッド大学 객원교수 -> 니혼대학日本大学 교수 지위를 거친 후 현직에 이르렀다. 저서로《하세쿠라 츠네나가》(츄코신쇼中公新書) 등이 있다. 근래 간행된 저서는《마사무네의 음모》(오오조라슛판샤大空出版社)


  1613년,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  1567~1636)는 가신 하세쿠라 로쿠에몬(支倉六右衛門, 통칭 츠네나가常長. 1571~1622)을 스페인 국왕, 그리고 로마 교황에게 파견하였다. 흔히【 케이쵸 견유사절 】로 불리는 사건이다.

케이쵸 견유사절단의 대표, 하세쿠라 츠네나가
(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支倉常長'


  종래의 연구에선 그 도항의 목적이 누에바 에스파냐(濃毘数般, 새로운 스페인, 즉 멕시코를 가리키는 말. 앞으론 '멕시코'로 통일)와의 직접통상교역 개시 / 카톨릭 교 선교사 파견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 정설에는 두 가지 의문이 존재한다.

  우선, 1612년에 이미 토쿠가와 막부는 크리스트 교 금교령을 내리며【 정교분리정책 】을 단행했다. 이를 마사무네가 공공연히 위반하며 영내에서 크리스트 교 포교를 허가했을 뿐 아니라, 스페인 국왕 / 로마 교황에게 선교사 파견을 요청했던 것이다.

  두 번째 의문점은 크리스트 교도도 아니었던 마사무네가 감연히 로마 교황에게 사절을 보내 "복종服從과 충성忠誠" 을 서약했다는 점에 있다.

  나는 반 세기에 걸쳐 멕시코 / 스페인 / 이탈리아 등 관계 국가들의 문서관,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방대한 양의 케이쵸 견유사절 관련 원문사료와 문헌들을 탐색하여, 난해한 필기체로 이루어진 고전 로망스어로 표기된 이들 원어를 번자ㆍ일본어로 번역하여 해독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의 정설과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절에는 센고쿠다이묘 다테 마사무네가 에도 막부 성립 이후에도 간직하고 있던, 최후의 '천하통일' 야망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저자분의 저서《폭로된 다테 마사무네의 막부전복계획》
2017년 분슌신쇼文春新書에서 출간되었다. (출처 : 일본 아마존)


  바티칸 교황청에 남겨진 사료에 따르면 마사무네는 자신을【 카톨릭 국왕 】으로 서임해줄 것을 요구했으며,【 크리스트 교도 기사단 】창설을 제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스페인과 동맹을 맺고 카톨릭 세력을 포섭하여 '천하를 차지天下取り' 하려던 그의 마지막 도전이었다.


  멕시코에 깊은 관심을 가지다

  신대륙新大陸 발견 이래, 광대한 식민지植民地를 소유하면서 흥륭興隆한 끝에 세계의 패권자로 군림하고 있던 스페인. 이런 스페인과의 통상을 강하게 요망하고 있었다는 점에선 마사무네도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도 마찬가지였다.【 쇄국鎖國 】이란 이미지에 현혹되기 쉬우나, 이에야스는 대담한 개국정책을 추진하면서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과의 통상교역通商交易에도 힘을 쏟고 있었다.

당대 일본의 권력자였던 토쿠가와 이에야스(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徳川家康')


  그런 한편으로, 선교와 통상을 일체시하던 카톨릭 교(구교)를 금지시키고, 프로테스탄트(신교) 국가인 네덜란드(オランダ, 1609)와 영국(イギリス, 1613년)과의 통상교역을 개시했지만, 스페인과의 교역 그 자체를 단념한 건 아니었다.

  그리고 이에야스는 멕시코로부터 은광석 정제기술(수은 아말감 정련법)을 도입하기를 원했고, 직접 통상교역을 벌이는 것을 열망하고 있었다. 1609년 가을,【 비벨로 】전 필리핀 임시총독이 치바 현千葉県 이와와다 섬岩和田島에 표류했을 때, 이에야스는 은 정련기술자 50명을 일본에 파견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마침 이 시기, 마사무네는 멕시코에서 보낸 답례사答禮使인【 비스카이노 】사령관 / 프란체스코회 신부【 루이스 소텔로 】와 개인적인 교류를 나누며 멕시코와의 통상교역 개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점에서 막부와 마사무네의 꿍꿍이가 일치, 양자가 합동으로 멕시코에【 방 멕시코訪墨 통상사절단 】을 파견하는 계획이 도모되었다. 막부는 선박 행정관船奉行 무카이 쇼겐向井将監의 담당하에 선박 도편수船大工들을 센다이仙台로 파견, 5백 톤짜리 사절선使節船【 산 판 바우티스타 호 】건조를 허가했다.

  이【 방 멕시코 통상사절단 】의 파견목적은, 첫 번째가 이에야스가 원하던 은 정련기술 도입과 관련된 답서를 받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비스카이노 일행 40여 명을【 아카풀코 항구 】까지 송환해주는 것이었다.

1628년의 아카풀코 항구.(출처 : 위키피디아 'Acapulco')


  그리고 세 번째 목적으로 마사무네가 든 것이 다테 번과 멕시코 사이에《합의문申合条条》(스페인 측에선 평화조약平和條約이라 명명)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마사무네의《합의문》체결 제안문에는 크리스트 교 금교령 중임에도 선교사를 파견해달라고 요청하고, 막부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네덜란드인 / 영국인들을 국외추방(스페인어 번역에선 사형死刑이라 명명) 한다는 등, 이에야스의 대외정책과 상충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참고로 이에야스는 1612년 7월자로 누에바 에스파냐 국왕 마하(摩下 = 멕시코 부왕副王)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본정부의 외교방침을【 상선무역을 통한 교류만을 바랄 뿐, 일본 국내에서의 크리스트 교 포교는 허가할 수 없습니다. 】라고 명확히 전달한 바 있다. 그리고 비벨로나 비스카이노가 네덜란드인 추방을 강하게 요망했음에도 이에야스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렇기에 이 마사무네의《합의문》은 막부의 인증을 받은 것이었다고는 생각하기가 힘들다. 다테 번이 단독으로 스페인 정부와 자의적인 동맹관계를 맺으려 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마사무네와 소텔로의 음모

  그럼 이 정도로 대담한 '독자외교'를 입안한 자는 누구였을까? 바로【 사절단 】의 일원이었던 소텔로 신부였다.

  예수회(예수회와 프란치스코회는 아시아에서 포교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본부에 보낸 안젤리스 서간1에 따르면, 사절선의 의장이 마무리에 접어들면서 마사무네가 도항계획을 중지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소텔로는 마사무네 측근 고토 쥬앙後藤寿庵을 통해 "멕시코까지로 한정된 당초의 계획을 변경, 극비리에 스페인 국왕과 로마 교황에게 밀사 = 방 유럽 사절단을 파견해야 한다" 고 마사무네에게 진언했다. 이에 대해 마사무네는 소텔로를 전면적으로 신뢰하며 도항지 변경을 승낙했다.

  마사무네와 소텔로가【 방 유럽 사절단 】파견을 결의한 이유를 파악하는 단서가 되는 물건이 로마 교황 파울루스 5세에게 보낸 라틴어문 <일본 키리시탄들의 연서장連署状>(1613년 10월 1일자)과 <키나이 키리시탄들의 연서장連署状>(1613년 9월 29일자, 이하 '연서장' 으로 표기) 이상 두 통(둘 다 바티칸 기밀문서관 소장 중2)의 편지이다.

당시의 로마 교황(재임 1605~1621) 파울루스 5세.
(출처 : 위키피디아 'Pope Paul V')


  1615년 11월 25일에 로마 교황에게 봉정奉呈된 편지에 따르면,

【 위대한 교황 성하이시여. 주님께서 상술한 오슈의 왕(奥州の王, 다테 마사무네)에게 역사하시어 그에게 영예를 비추심으로써, 커다란 앞날이 열릴 것이라는 점을 의심치 말아 주소서. 그의 세력과 권력은 그 누구보다도 강대하며, 저희들은 그가 장래 가능한 한 빠른 시기에 지배자(支配者, 쇼군將軍)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사오며, 그 자의 타고난 영지英智와 위대한 마음은 빛나는 별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상술한 자(주력 수행원으로 선발된 일본인 크리스트 교도)들을 통한 일련의 보고에서 명확해질 것입니다. 】

  고 되어 있다. 즉 크리스트 교도들은 마사무네가 쇼군이 되기를 열망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들 편지에 따르면 -

  사절선이 출발하기 직전인 케이쵸 18년 6월(1613년 8월), 에도에서 대대적인 키리시탄 사냥이 행해져 3천 명 이상의 신도들이 배교棄敎를 강제당했다. 이 때 소텔로가 세례를 주었던 키리시탄 지도자들 28명이 배교를 거부한 끝에 참수형에 처해졌고, 소텔로 자신도 화형당하기 직전까지 갔다 마사무네의 조명탄원助命歎願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토쿠가와 정권 하에서 포교활동에 절망감을 느낀 소텔로는 키나이 지방의 키리시탄 대표자들과 밀담, 다테 마사무네와 손을 잡고 막부 타도를 도모해【 크리스찬 제국 】을 만들어 보려 한 것이다. 그래서 계획된 것이 극비리에 유럽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여 로마 교황이 마사무네를 일본의【 크리스찬 국왕(지도자) 】으로 서임하도록 하고, 로마 교황 지배하의【 크리스트 교도 기사단 】창설도 인증을 받도록 하겠다는 계략이었다.

  한편 마사무네는 센고쿠 시대 무장답게 이를 '천하통일' 의 마지막 기회로 받아들였다. 막부의 박해를 받고 있던 30만 명이 넘는 일본 전국의 독실한 키리시탄들을 아군으로 규합, 당시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스페인의 강대한 군사지원을 받아 막부를 토벌하고, 자기 자신이 쇼군 자리에 앉아보겠다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1. 예수회 로마 문서관(A.R.S.I.), Jap. Sin 34. Documento, No. 15. f. 31.(1619년 11월 30일자)
  2. 바티칸 기밀문서관(A.S.V.), I-XVIII, 1838(Barberini Orientale)

덧글

  • 진보만세 2019/01/27 17:08 # 답글

    만약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독안룡 마사무네가 이끄는 '동방십자군'의 등장도 꿈만은 아니었을 뻔 했군요.

    물밑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국제적 모략전쟁의 흥미진진한 일단을 세세하게 알게 해주신 것, 거듭 감사드립니다.. ^^
  • 3인칭관찰자 2019/01/27 19:47 #

    키리시탄들을 포섭한 마사무네의 센다이 번 군대와 일본에 상륙한 스페인의 군대가 이에야스와 전쟁을 벌이는 모습이 펼쳐졌을수도 있었으려나요. ^^

    흥미진진하게 읽어주셨다니 기쁠 따름입니다.
  • 차가운 도시남자 2019/01/27 17:10 # 답글

    왜 안 실행되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 3인칭관찰자 2019/01/27 19:40 #

    선교사나 일본 키리시탄들의 바람과는 달리 스페인이 적극적인 의욕을 보이지 않은 것도 계획 실현에 지장을 줬던 것 같더군요. 며칠 뒤에 올라갈 후속 포스트도 잘 부탁드립니다 ^^
  • 無碍子 2019/01/27 21:27 # 답글

    늘 흥미있는글 고맙게읽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9/01/27 23:52 #

    감사합니다. 무애자님 뉴스비평글도 잘 읽고 있습니다(__)
  • 남중생 2019/01/27 22:24 # 답글

    오오, 흥미로운 글 감사합니다. 하세쿠라 사절단의 이면에는 이런 비화가!!
  • 3인칭관찰자 2019/01/27 23:59 #

    저자분의 이 학설이 앞으로 일본에서 어떠한 평가를 받아 나갈지, 학계의 통설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여부가 기대됩니다. ㅎㅎ
  • 함부르거 2019/01/27 23:01 # 답글

    막부의 노신들이 이에미츠 시절까지도 마사무네를 경계했던 게 다 근거 있는 거죠. ㅎㅎㅎ
  • 3인칭관찰자 2019/01/28 00:03 #

    ㅎㅎ 끝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 2019/01/28 14: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1/28 20:5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9/01/29 09: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동두철액 2019/01/29 20:21 # 답글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저자의 주장이 정설이 될 정도의 위치일까요?
  • 3인칭관찰자 2019/01/29 21:32 #

    바티칸 문서를 위시한 유럽문헌을 앞세우는 저자의 레퍼런스가 날조된 게 아니라면야 꽤 파괴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과 교차검증할만한 마사무네와 그 주변인들의 당해 사건 증언&기록이 현재로선 전무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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