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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군상》두 얼굴의 전사가戰史家 파울 카렐 (完) ┣ 雜誌 歷史群像



  이 글은 잡지《歷史群像》제 131호(2015년 6월호) 85~94쪽의 기사인,《파울 카렐의 두 얼굴 ~ 유명 전기작가의 감춰진 반생 ~》을 번역한 것으로, 오오키 츠요시大木毅 님께서 집필하신 글입니다. 냉전시대 독일의 저명한 전사가로, 세계 각국에서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던 파울 카렐Paul Carell의 과거 이력 - 나치로서의 행적 - 을 소개한 글이 되겠습니다.

  (번역하면서 생기게 된 궁금증인데 이 글 저자분은 독일 연방국방군의 공간전사公刊戰史 서술을 인용, 쿠르스크 전투 당시 '프로호르프카 전차전' 은 벌어지지도 않았다고 주장하시더군요. 저로선 처음 접해본 이야기인데 이 건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은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카렐의 기술記述에 대한 의혹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는 "본인이 묘사한 에피소드들은 수많은 참전장병을 취재하여 얻어낸 정보" 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적어도 그의 초기 저작은《지그날》편집에 관여하던 시기에 습득한 정보 + 전후 몇 명의 정보제공자(주로 前 국방군 장교들이었다. 그들의 정치적 지향점은 굳이 지적할 필요가 없으리라.)들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기반하였다는 게 판명되었다. 애초부터 어느 정도 편향성을 지닌 전거典據였던 것이다.

  그리고 카렐이 어떤 수단을 동원하여 취재를 했는지를 검증할 방도가 없다. 그의 사문서(私文書, 그 중에는 참전자 인터뷰 기록과 그들과 주고 받았던 왕복서간 같은 것들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된다)를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다는 게 알려져 있음에도, 가장 최근에 카렐 평전을 집필한 플레거는 "카렐의 아내, 그리고 그녀가 죽은 후 카렐의 유품을 관리하는 카렐의 손자에게 재삼에 걸쳐 문서열람을 신청했음에도 거절당했다." 고 했다. 결국 카렐이 수집한 정보를 어떻게 취사선택했고, 적절한 사료비판을 거쳤는가 하는 점을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란 말이다. 가령 자의적인 인용과 왜곡이 동원되었다는 의심을 품더라도, 이를 확인할 방도는 없다.

  이래서는 역사서로든, 역사 논픽션으로든 신빙성信憑性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사상 최대의 작전》《머나먼 다리》의 저자【 코넬리우스 라이언Cornelius Ryan 】이 집필 당시에 사용했던 인터뷰 기록 등이 담긴 문서는 그가 죽은 후【 오하이오 대학 도서관 】에 기증되어, 연구자이기만 하면 그 누구라도 문서열람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으나, 카렐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마켓 가든 작전을 다룬 라이언의《머나먼 다리》(출처 : 미국 아마존)


  그리고 카렐이 스스로 사료와 증언을 정밀조사하여 결론을 내렸다기보단, 국방군 변명론에 가까운 스탠스가 우선시되었다는 점도 현재에 와선 증명된 바 있다. 예를 들자면 카렐은【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元帥의 자기변호를 거들었다. 1963년 당시, 훗날《바르바롯사 작전》《초토작전》으로 간행되기에 이르는《크리스탈》잡지에 연재하던 카렐의 기사가 호평을 받는 것을 지켜보던 만슈타인은, 자신이 비판적인 평가를 받을 것을 우려해 카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물론 원수까지 진급했던 인물인 만큼 직접 카렐과 접촉하는 경박한 행동을 하는 대신, 카렐과 친교가 있던【 헤르만 호트 】상급대장上級大將을 통해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 고 (카렐에게) 제안한 것이다.

  카렐은 독소전쟁에 초점이 놓인 만슈타인의 이른바【 변호측 증언 】에 달려들어, 이후 만슈타인의 주장을 비판적인 검토도 없이 그대로 서술에 반영하였다.《바르바롯사 작전》의 스탈린그라드 이후 부분 +《초토작전》이 만슈타인의 회고록인《잃어버린 승리》와 궤를 같이 하는 내용인 건 우연15이 아니었던 것이다.

2차대전 발발 전인 1938년의 만슈타인(출처 : 위키피디아)


  그 외에도 카렐의 기술에는 문제가 있다. 정치적인 동기에서 비롯된 건 아니고, 그저 독일군의 공문서를 충분히 참조하지 못한 데서 온 오류였다. 그렇기에 그의 저작에는 인명 내지 연월일, 부대번호 등에 대한 사실인식에서 적지 않은 오류가 섞여 있었다.《그들은 왔다》같은 경우, 훗날 연합군이 압수했던 문서들이 독일에 반환되고 여기에 기반한 연구서가 간행되자, 오류를 수정할 필요에서 대폭적인 가필정정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정도라면 큰 문제는 아니다.《초토작전》의 백미白眉라 할 만한【 프로호르프카 전차전 】에 대한 카렐의 기술 등은, 현실에는 존재하지도 않은 내용이었다는 게 증명된 바 있다. 독일의 공간전사에 해당하는《독일국과 제 2차 세계대전》이 이 점을 지적한 부분을 인용하겠다.

【 (전략) 이 줄거리 "1943년 7월 12일, 프로호르프카에서 대전차전이 벌어졌다는 전후 소련 측, 특히 그 당사자인 로트미스트로프 장군의 주장" 은 독일 전기작가 파울 카렐의 공상을 자극했다. 그는 프로호르프카를 향해 경주하는 제 3 장갑군단을 이렇게 연출하였다.『전사상 그러한 사례가 없을 터이나, 지금도 이후 전쟁의 경과까지 좌우할 만한 운명적인 결정이 시계의 움직임에 달려 있었다. 날짜가 아닌, 시간에. <워털루의 세계사적 시간>이 프로호르프카에 재현되었다고 할 만 하다.』 현저하게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던 영국군 총수 웰링턴을 구원하기 위해 앞을 서두르는 프로이센의【 블뤼허 】원수와 그의 개입을 방해하려 한 끝에 실패한 나폴레옹의 원수【 그루시 】사이에 벌어진 "워털루를 향한 경주" 에 이를 비유한 것이다. 당시의 그루시 원수가 그랬듯, 프로호르프카에선【 켐프 】장군의 도착이 너무 늦었다, 는 것이었다. (원문 행바뀜) 그러나 독일의 문서관 사료에 따르면 7월 12일에 벌어졌다는 경주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물론 로트미스트로프가 기술한 프로호르프카 남방 전차전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해당 전투지역에선 최대 44대의 전차밖에 보유하지 않았던 제 6 장갑사단밖에 없었다. 】(문장 중《초토작전》에서 인용한 문장은 후지슛판샤フジ出版社에서 내놓은 마츠타니 켄지의 번역문임)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카렐의 저작을 놓고 "지금으로선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정보가 담겨있다." 고 평가하며 '비판적 활용'이란 명분 하에 이 책에 기반을 두는 전사연구가도 있다. 그러나 카렐이 집필한 그 시점부터 이미 그가 사용한 증언 / 사료, 그리고 그의 사료비판에 심각한 문제성이 존재했다는 건 명백하다. 그리고 당대의 사료적 제약으로 인한 오류도 다수 존재하였다는 게 판명되었는데도 감연히 그의 저서에 근거를 두려 하는 판단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연방국방군의 카렐 문제

  1997년, 파울 카렐은 세상을 떠났다. 만년에 들어 본인의 저작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당하고, 국방군의 전쟁범죄가 부각되기 시작하는 시대에 마주했던 만큼 그로서도 분명 불쾌하긴 했으리라. 그러나 자신의 과거가 폭로되기 전에 이승을 등질 수 있었던 건 오히려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독일 (책) 시장에서 끊임없이 팔려나가던 그의 저작도 2005년, 벤츠의 전기가 카렐의 진실을 폭로한 후 모조리 품절&재판매 미정 상태로 전환되었다. 일본어 번역본도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의 책을 신간으로 입수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자신의 저서를 들고 있는 만년의 파울 카렐(출처 : 야후 'Paul Carrel' 이미지검색)


  그리고 2010년, 다시 카렐을 둘러싼 스캔들이 발생했다. 연방국방군에서 육군 병사들의 교재로 배부하던《출격에 대비한 교육. 전투임무의 설명서》라는 팸플릿에《그들은 왔다》《초토작전》내용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었음이 발각된 것이다. "명백한 역사왜곡 의도를 갖고 있던 인물의 저작을 연방군 장병의 교육에 사용하다니 무슨 짓이냐" 는 책망을 받은 연방국방군 육군총감은 "문제의 팸플릿은 2009년에 사용을 중지했으며, 현재 신판을 준비중입니다." 라는 공식회답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파울 카렐 저작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일반사회에 널리 알리면서 사실상의 치명타를 가했다. 현재의 독일에선 파울 카렐의 저작은 전문가 그룹 뿐만 아니라 일반독자들 사이에서도 역사서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기술을 인용하거나 근거로 삼는 자체가 모종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카렐의 작품이 그러한 평가를 받고 있다는 냉엄한 사실은 일본에서도 더욱 인식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15. 이에 대한 전말을 밝힌 만슈타인 - 호트의 왕복서간은 연방군사문서관이 소장한 <호트 문서>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 松谷健二「訳者あとがき」, パウル・カレル 著, 松谷健二 訳《焦土作戦》(フジ出版社, 1972年)
 - Auswartiges Amt, Biographisches Handbuch dder deutschen Auswartigen dienstes 1871-1945, Bd 4, Paderborn u.a., 2012
 - Wigbert Benz, Paul Carrel, Ribbentrops Presschef Paul Scmidt vor und nach 1945, Berlin 2005.
 - Ders., "Einsatznah ausbilden" mit Paul Karl Schmidt alias Paul Carell, Presschef im Nazi-Aussenministerium. In : Forum Pazafismus. Nr. 26(2010)
 - Ingeborg Fleischhauer, Die Change des Sonderfriedens. Deutsch-sowjetische Geheimgesprache 1941-1945, Berlin, 1986.
 - Peter Longerich, Propagandisten im Krieg. Die Pressabteilung des Auswartgen Amtes unter Ribbentrop, Munchen, 1987.
 - Milltargeschichtliches Forschungsamt Das deutsche Reich und der ZwaiteWeltkrieg, BD.8, Stuttgart, 2007.
 - Christian Ploger, Von Ribbentrop zu Springer. Zu Leben und Wirken von Paul Karl Schmidt alisa Paul Carell, Marburg, 2009.
 - Oliver von Wrochem, Erich von Manstein : Vernichtungskrieg und Geschichtspolitikm 2. Aur., Paderburn u.a., 2009.


덧글

  • 2019/01/21 11: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1/21 17:4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PKKA 2019/02/19 16:59 # 답글

    2016년까지도 폴 카렐의 저작을 참고문헌으로 쓰고 있던 블로그를 발견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uesgi2003/220729273080

    구글링해 보니 1세대 밀리터리 매니아셨던 권도승(Wenck)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폴 카렐을 참고문헌으로 쓰시고 계셨더군요.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jMjP&fldid=Demv&datanum=27&openArticle=true&docid=jMjPDemv2720040904195518

    참 그 악영향이 큽니다.

  • 3인칭관찰자 2019/02/19 21:00 #

    한때 워낙 유명했고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저자와 그 저서라서 그런지 그 해악 역시 깊고도 크군요... 서구권만 해도 카렐 저서로 독소전 입문했었다는 사람&카렐의 열혈 팬이었던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하니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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