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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군상》성 요한 기사단의 몰타 대공성전 (5) ┣ 雜誌 歷史群像



  이 글은 잡지《歷史群像》제 44호(2000년 겨울호) 66~80쪽의 기사인,《몰타 대공성전 ~ 중세의 대미를 장식한 성 요한 기사단의 마지막 싸움 ~》을 번역한 것으로, 아리사카 쥰有坂純 님께서 집필하신 글입니다. 16세기 중엽, 술레이만 대제의 뜻을 받들어 몰타 섬을 침공한 오스만 투르크의 4만 대군에 맞서 본거지 몰타를 지키기 위해 싸운 성 요한 기사단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성 엘모 요새의 함락과 드라구트의 죽음

  5월 30일, 드라구트가 몰타 섬에 도착하여 육해군의 실질적 총지휘권을 장악했다. 그는 성 엘모 요새를 성 안젤로 요새의 지원으로부터 고립시켜야 할 필요성을 단번에 이해하고서 포병과 보병들의 화력을 동원하여 그랜드하버의 연락선을 제압함과 동시에, 초계부대를 보트에 태워 만으로 보냈다. 이 처치로 인한 효과는 단번에 나타나, 성 엘모 요새로 인원과 물자를 수송해오던 기사단의 행동은 날이 갈수록 힘겨워져 갔다.

몰타 대공성전주요부 지도
(출처 : 위키피디아 'Great Siege of Malta')


  6월 6일 새벽이 오기 전, 성 엘모 요새 남측 능보에 가까이 다가간 오스만군 부대가 능보의 수비대원 전원이 피로에 지쳐 곯아떨어져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이 보고를 받은 드라구트는 즉각 강습을 벌일 것을 예니체리 군단에게 명령했다.

  공성용 사다리를 타고 외벽에 달라붙은 병사들은, 드디어 칼을 뽑고서 환성을 지르며 능보로 돌입했다. 능보는 손쉽게 제압되었고 승리의 기세를 탄 예니체리 부대는 이어서 요새 본체로 이어지는 연락교連絡橋로 쇄도했으나, 비잔틴 제국의 비밀병기였던【그리스의 불】즉 초기형 화염방사기가 위기를 모면케 해주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화르륵 타오르는 액체를 뒤집어쓴 예니체리 부대의 진격이 최종적으로 저지당하고 만 것이다. 남쪽 능보를 제압한 대가로 그들은 약 2천 명의 사상자를 내는 손실을 입었다.

  다음 날인 7일, 예니체리 부대는 무너진 외벽을 통해 다시 한 번 강습을 시도했다. 기사단은 이를 간신히 격퇴하긴 했으나, 성 엘모 요새는 고립되어 병력은 소모되었고 방비는 상처입었기에 이제 장기적인 항전을 벌이는 건 절망적이 되어갔다.

공성전에서 사용되는 '그리스의 불'
(출처 : 위키피디아 'Greek fire'


  요새를 포기할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전선의 목소리에 드 라 발레트는 고개를 저었다. 드디어 시칠리아 섬에서 구원군 집결이 행해지고 있는 지금, 그들이 그랜드하버로 진입할 수 있는 입구를 남겨두기 위해선 성 엘모 요새는 반드시 확보해야 했던 것이다. 최소한 앞으로 2주 동안은 말이다.

  15일, 심대한 손해를 입으면서도 공성전을 우세 속에 주도하던 오스만군에 커다란 불운이 찾아왔다. 그랜드하버로부터 성 엘모 요새를 차단할 목적으로, 요새 동쪽으로 뻗어 있는 해자의 굴삭작업掘削作業을 전선에서 감독하고 있던 드라구트의 화려한 군복을 노린 기사단의 포병砲兵이 있었던 것이다. 피알리 파샤의 경우와 같이 튀어오른 포탄 파편을 맞은 드라구트는 두부頭部가 관통당하는 치명상을 입어,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다시 총지휘권을 장악한 무스타파 파샤는 그럼에도 결연히 공성전을 계속할 것을 명했다. 17일이 되자 포병들은 외벽 바로 바깥쪽까지 추진推進되어 탄착 위력은 배가되었다. 21일에는 서쪽 외벽 바로 밑에 위치한 사각지대死角地帶를 경유하여 보병부대가 요새 북쪽을 공격해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주제페 칼리'드라구트의 죽음'
(출처 : 위키피디아 'Dragut')


  23일, 드디어 종말의 날이 찾아왔다. 사방에서 요새 중핵을 향해 쇄도한 오스만군은 처절한 백병전 끝에 요새를 점령했다. 수비대는 최후의 최후까지 싸움을 벌인 끝에 고작 5명만이 탈출에 성공했다.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드라구트는 요새 함락 소식을 듣고서 숨을 거두었다. 향년 80세.

  성 엘모 요새 공방전에서 양군이 입은 손해는 기사단이 약 1,500명(전 병력의 약 17%) / 오스만군이 약 8,000명(전 병력의 약 30%)이었다.

         
  오스만군의 총공격

  성 엘모 요새가 함락되자 오스만 함대는 마르사 시로코 만을 떠나 마르삼세트 하버로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육군에 대한 병참지원이 몇 배는 용이해졌다.

  무스타파 파샤의 다음 목표는 성 미셸 요새였다. 그는 포로로 붙잡은 모든 사람을 처형한 후, 전사자들의 시체와 함께 십자가에다 못박아 그랜드하버로 띄워보냈다. 이 싸움이 섬멸전殲滅戰임을 드 라 발레트에게 선언하기 위함이었다.

  6월 26일 ~ 30일에 걸쳐 오스만군 포병은 센그레아 반도 쪽과【프랑스 유입구】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콜라딘 고지】로도 이동하여 사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성 미셸 요새의 방비는 성 엘모 요새보다 강력했고, 드 라 발레트의 직접지휘를 받고 있었다. 거기에다 시칠리아 부왕副王이 약속했던 구원군 선발대 약 700명이 드디어 도착하여, 섬 서쪽에서 임디나를 경유해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짙은 안개의 도움으로 오스만군의 초계선哨戒線을 돌파, 단 1명의 희생자를 제외한 전원이 비르구 반도에 도착한 것이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기사단을 기운나게 만들었다.

  같은 시기, 무스타파 파샤도 원군을 맞이하고 있었다. 드라구트의 사위인 알제리 총독【하산】이 북아프리카의 해적함대를 인솔하여 도착한 것이다. 그의 협력하에 무스타파 파샤는 결정적인 양용작전兩用作戰을 도모했다. 우선 강습부대와 수영의 달인들을 보트에 나눠 태워, 육지보단 만만해보이던 센그리아 반도의 해안방어를 뚫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드 라 발레트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15일, 10척의 보트에 나눠탄 예니체리 군단병 1,000명을 맞이한 것은 갤리 유입구 방비를 목적으로 교묘히 은닉되어 있던 대포들로, 이들의 사격에 의해 보트 9척이 격침ㆍ800명이 전사하면서 양용부대는 전멸하고 말았다.

  이 대실패를 계기로 무스타파 파샤는 정공법正攻法으로 회귀했다. 그는 포병진지를 증설시킨 후 주야를 가리지 않고 사격을 강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비르구 반도 전면前面에서도 전투정면戰鬪正面을 형성했다. 병력적으로 열세한 수비대로 하여금 전력을 다하게 하여, 그들의 귀중한 예비병력들을 전선으로 끌어내기 위한 방책이었다.

  3주에 걸친 맹렬한 연속사격에 의해 요새의 인적 / 물적 자원에 충분히 깊은 내상을 입혔다고 판단한 무스타파 파샤는 8월 7일에 총공격을 명했다. 외벽 돌파를 각오한 드 라 발레트는 비르구 시가에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오스만군을 요격했다.

대공성전의 절정을 장식한 성 미셸 요새 공방전
(출처 : 위키피디아 'Great Siege of Malta')


  비르구 반도 공격은 부상에서 회복된 피알리 파샤가, 센그레아 반도 공격은 무스타파 파샤 본인이 지휘했다. 우선 피알리 파샤의 보병이 포탄을 맞고 생겨난 파구破口를 따라 비르구의 외곽을 지키는【카스티유 보루】의 해자와 제 1 방벽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들의 전진은 미처 간파하지 못했던 제 2 방벽의 존재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방벽 뿐 아니라 뒤에서 몰려들어오는 우군友軍에 의해 강습부대의 진퇴進退가 어지러워진 사이, 수비대의 사격과 함께【그리스의 불】이 포효하면서 약 1천 명이 죽음을 당했고, 최종적으로 그들은 궤주潰走하고 말았다.

  무스타파 파샤의 공격은 피알리 파샤의 그것보다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전기戰機를 꿰뚫어볼 줄 아는 그의 통솔력과 병력적 우세에 힘입어, 오스만군은 드디어 성 미셸 요새의 외벽을 뚫고 요새 내부로 돌입했다. 센그레아 반도, 그리고 비르구 반도의 방위가 막 붕괴하려던 순간, 드 라 발레트 본인이 칼을 뽑고서는 겁먹은 기사들과 병사들을 질타한 후 문자 그대로 앞장을 서서 과감한 반격을 시도했다. 다리에 부상을 입으면서도 기사단 총장은 강습부대를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한 무스타파 파샤가 신예부대를 투입하기 직전, 기적이 일어났다. 오스만군 진중에서 돌연히 나팔소리가 울린 후, 전군全軍이 썰물같이 퇴각해버린 것이다.

  오스만군을 공황상태에 가까운 혼란에 빠뜨린 건, 임디나에 공치控置되어 있던【드 뤼그니】휘하 중기병대의 공격이었다. 임디나를 출격한 그들은 거의 무방비상태였던 마르사의 오스만군 본영을 직격하였다. 보초들과 부상병들은 무자비하게 살해당했으며, 천막과 보급물자는 화염에 휩싸였다.

임디나를 둘러싼 방벽
(출처 : 위키피디아 'Mdina')


  무스타파 파샤가 달려왔을 땐, 이미 적병의 모습이라곤 없었다. 본영의 지독한 참상을 보고 그는 한때 크리스트 교도의 대부대가 드디어 몰타에 내원來援하여 후방을 급습急襲한 것이라고 믿었다. 조국과 멀찌감치 떨어진 적지敵地에 고립되어 있는 건 기실 기사단이 아닌 자신들이라는 것을 그는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정보가 집적됨에 따라 무스타파 파샤도 사실을 파악하였으나, 이미 모든 것은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 날, 성 미셸 요새를 공략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쳐버린 걸 계기로 전국戰局은 오스만군에 불리하게 기울어 갔다. 1개월 뒤엔 겨울이 찾아오는데다, 이미 1만 명의 병력을 상실했고 사기도 떨어져 있으며, 연락선이 심하게 늘어진 군대를 가지고 공성전을 속행하는 건 지난至難하였다.

  거기에다 시칠리아의 부왕이 약속했던 원군 본대가 바로 이 때 집결을 완료했으며, 몰타로 출격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무스타파 파샤는 아직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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