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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군상》성 요한 기사단의 몰타 대공성전 (1) ┣ 雜誌 歷史群像



  이 글은 잡지《歷史群像》제 44호(2000년 겨울호) 66~80쪽의 기사인,《몰타 대공성전 ~ 중세의 대미를 장식한 성 요한 기사단의 마지막 싸움 ~》을 번역한 것으로, 아리사카 쥰有坂純 님께서 집필하신 글입니다. 16세기 중엽, 술레이만 대제의 뜻을 받들어 몰타 섬을 침공한 오스만 투르크의 4만 대군에 맞서 본거지 몰타를 지키기 위해 싸운 성 요한 기사단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대공성전Great Siege

【 그러한 일이 생기면서 기사단騎士團은 크레타 섬으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7년간, 1530년까지 머무른 후, 기사단은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5세에게 청원하여... 】(더셀 해밋 著, 코다카 노부미츠小鷹信光 번역《몰타의 매》)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을 맡은 1941년작 "몰타의 매" 영화판
(출처 : IMDB "The Maltese Falcon" 항목)  


  1565년, 지중해地中海 중앙에 위치한 몰타 섬을 둘러싼【성 요한 기사단】과【오스만 투르크】사이의 공방은, 후세에 "대공성전(Great Siege)" 이라 불리게 되는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소수의 병력이지만 해상전 / 육지전의 프로 중의 프로였던 기사단과, 동시대 세계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투르크 육해군이라는 정예병들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전쟁이었다는 점 이상으로, 중대한 역사상 의미를 여러 가지 지니게 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첫 번째는 이 전쟁이, 유럽이 중세에서 근세로 변천해가는 경계적인 시기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바야흐로 기사의 시대가 저물어가려 하던 때, 십자군 기사단(기사수도회)은 이슬람 세력에 맞서 혼자의 힘으로 사실상의 마지막 전쟁을 치룬 것이다.

  화기의 발달이 전쟁의 시스템화와 산업화를 불러일으키면서, 중포重砲의 화력과 별모양 능보稜堡가 지닌 방어력 간의 우열이 공성전의 귀추를 제압하게 되었다. "대공성전" 은 그 전형적인 전쟁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두 번째는 이 전쟁이 지중해의 해상교통, 더 나아가서는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동지중해를 사실상 제압하고 이후에도 바다와 육지에서 격렬한 공세를 지속하던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맞서 서지중해를 지키는 최전선 보루, 그것이 몰타 섬과 기사단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그리고 세 번째론 이 전쟁이 오스만 제국의 위세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일어났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술레이만 대제의 강력한 전제통치 아래 범 이슬람 세계국가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 오스만 제국의 팽창은, 육지에서의 빈 포위(1529) / 바다에서의 "몰타 섬 대공성전" 을 거친 후 대제 사후에 벌어진 레판토 해전(1571)에 의해 드디어 저지되고 만다.

당대에 그려진 레판토 해전 그림
(출처 : 위키피디아 'Battle of Lepanto'


  그 후, 유럽과 이슬람 사이의 역학관계는 "대항해시대" 의 진전에 따라, 서서히 역전당하게 된다.

  전투의 경과 뿐만 아니라, 이상과 같은 커다란 역사의 흐름을 숙지하신 후 본고를 읽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성 요한 기사단의 기원

  성 요한 기사단과 "대공성전" 을 이야기하기 위해선【제 1차 십자군 원정】이 벌어진, 아득한 11세기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셀주크 투르크】에 맞서 싸우기 위한 비잔틴 제국의 원군요청을 발단으로 삼아, 교황敎皇【우르바누스 2세】의 선동과 선전으로 열렬한 종교적 / 사회적 물결이 되어 폭발한【제 1차 십자군】은, 적어도 2만 명 이상의 병력을 시리아로 파견하여 1099년에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19세기에 그려진 '예루살렘 공성전' 그림
(출처 : 위키피디아 'Siege of Jerusalem'


  그러나 여타의 수많은 전쟁과 마찬가지로, 승리 그 자체보단 승리를 거두어 손에 넣은 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훨씬 더 힘든 법이다. 일단 주력부대가 유럽으로 철수하자, 십자군이 건국한【예루살렘 왕국】등의 여러 국가들은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시리아에서 고립무원에 가까운 상태에 빠졌다.

  크리스트 교도들은 전략적 종심이 얕은 연해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데 불과했던 데다, 인구도 자원도 정말로 빈약했으며, 당초에 입은 기습적인 타격에서 다시 일어난 이슬람 세력 측은 지금까지 벌여왔던 자기들끼리의 대립을 멈추고 단결하여 공통의 침략자에 맞서 싸우려 했다.

  이와 같은 극한의 식민지 통치상황 하에서 국가권력을 대행하는 기관으로서 출현한 것이【십자군 기사단(기사수도회)】이었다. 이는 중세사회를 구성하던 3개의 신분 - "싸우는 사람"(기사騎士) / "기도하는 사람"(성직자聖職者) / "경작하는 사람"(농민農民) 들 가운데 앞의 두 신분이 신앙과 규율로 결합한 특이한 존재였다. 이들은 "종교적 기사단" 내지 "무장한 수도회" 라 불렸다.

  1118년, 프랑스의 기사【유그 드 파얀】이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성한 사설경비대가 최초의 십자군 기사단인【신전 기사단(神殿騎士團, 템플 기사단)】의 기원이다. 그들은 1128년에 교황 직속 기사수도회騎士修道會로 정식 인가받아, 이후 예루살렘 왕에게 하사받은 솔로몬 신전 터에다 본부를 짓고 주로 성지를 방어하는 군사력을 담당하면서 경찰력도 겸하였다.

텐 두이넨 박물관의 템플 기사단원 재현
(출처 : 위키피디아 'Knights Templar')


  순수한 전투집단이었던 신전 기사단에 비해,【성 요한 기사단】은 병원 운영과 빈민 구호를 통한 사회사업을 주된 활동으로 삼고 있었다. 이 기사단은 제 1차 십자군 전역 도중, 세례 요한을 수호성인으로 삼아 프랑스 수도사 제라르가 건립한 병원을 모체로, 우선 1113년에 수도회修道會로서 공인받았다. 그리고 1120년 경, 종래의 사회사업에다 약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력을 갖추어, 새로이 기사수도회로 인가를 받았다.

  제 3의 기사단인【튜튼 기사단】은 1190년 경 독일 상인들의 손에 의해 설립된 병원을 기원으로 삼아 1198년에 기사수도회로 인가받았으나,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활동의 중심무대를 유럽으로 옮기고 동유럽 식민운동에 종사하여, 먼 훗날에 건국된 프로이센 왕국의 모태가 되었다.

  성 요한 기사단의 표상은 여덟 개의 뿔이 달린 흰 십자가로, 이윽고 "몰타 십자" 로 유명해지게 된다. 회원은 성직자가 입는 검은 옷을 상의로 걸쳤고, 출정할 때는 그 위에다 비색 망토를 걸친다. 그들은 총장(總長, 그랜드 마스터)과 본부 참사本部參事 아래 엄격한 위계질서와 "동정童貞, 복종服從, 청빈淸貧" 을 취지로 삼은 회칙에 근거하여 조직을 이루고 있었다.

성 요한 기사단깃발
(출처 : 위키피디아 'Knights Hospitaller')


  병원을 운영해야 하는 필요상 간호부看護婦를 공급하는 여자 수도회를 자매조직으로 거느리고 있었으나, 기사단 병원은 규모로 봐도 질적으로 봐도 1급이라 세상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칭송을 받았다. 이 사회사업에 대한 열의는 시대가 흘러 기사단이 변질된 후에도 계속해서 계승된 아름다운 면이었다.

  그리고 군사 면에서는 육상병력에 그치지 않고 유력한 함대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성 요한 기사단에는 특별히 "제독"(아드미랄) 지위가 상시적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기사수도회는 이론적으론 교황 외에 다른 누구의 권위에도 따르지 않았고,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초국가적 / 초민족적 조직으로서 유럽 전역에 관구(管區, 성 요한 기사단이 "프라이오리" 라 부른) 단위로 관리되는 수많은 영지와 시설, 재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중세 중기에만 해도 그들의 전략적 기동력과 전술적 전투력은 그 어떤 국왕의 군대와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성지에선【소수파】란 입장에서 "적敵" 인 이슬람교도들, 그리고 토착 크리스트교 신도들과 교묘하게 공존하는 기술을 체득하고 있었다.

  기사수도회가 없었다면, 십자군의 여러 국가들이 그 정도로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덧글

  • 조훈 2018/10/07 17:04 # 답글

    그냥 상식으로, 접두사 san을 聖-으로 번역하는 것은 과거 일본의 영향입니다.
    언어에는 관용이 있으니 그게 잘못됐다거나 쓰면 안된다는 딱딱한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니고...

    후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요한 기사단의 일견 긍정적인 면모를 그리고 있네요.
    그냥 제가 해석하기로 요한 기사단이 치른 전투의 내면에는 얘네만큼 이율배반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집단이 없는데...
  • 3인칭관찰자 2018/10/07 21:32 #

    그렇군요. 별 생각없이 써 왔는데 그런 사실이... 이 글의 경우엔 원문이 "성 요하네 기사단" 인지라 "성"을 그대로 쓰려고 합니다만, 앞으로는 염두에 두어야겠네요.

    요한기사단이야 이슬람권 사람들에게 바바리아 해적같은 재앙같은 존재로 여겨진데 그치지 않고 같은 크리스트교 국가나 세력이 이슬람이랑 타협하는 움직임을 보여도 적대시하여 공격, 습격, 약탈을 벌이기도 했으니...
  • AvisRara 2018/10/12 23:46 #

    외국어 고유명사라 번역하다보면 미묘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접두사 San을 발음 그대로 '산-'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고,(샌프란시스코, 산호세 - 지명) 성(聖)으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성 프란치스코, 성 요셉 - 인명)

    전자인 경우는 문제가 없지만 후자인 경우 '성'으로 번역하는 것이 쉽습니다. 근대화 초기부터 일본이 서구 텍스트를 광범위하게 번역했기 때문에 그 영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만 해석하기도 아쉬운 것이 '접두사 san-'의 어원이 '성스러운'이라는 뜻의 라틴어 sanctus이기 때문입니다.

    성 요한 기사단으로 번역하는 것이 관용에서도 그렇고 간편한 부분도 있어서 나쁜 선택은 아니니 너무 염려하지는 않으셨으면 하네요.

    번역 이외의 문제로는 성스럽지도 않은 집단에 '성'(聖)이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것에 저항감이 들 수도 있지만 기사단이 성스러운 것이 아니라 요한이 성스러운 것으로...(^^;;;)
  • 조훈 2018/10/14 19:34 #

    나쁜 선택이라는 뜻은 아니었는데요?
    제가 안해도 될 소리를 굳이 놀리고 말았군요.
  • 함부르거 2018/10/08 14:53 # 답글

    시오노 나나미가 물고 빨고 환장하는 요한기사단이군요. ^^;;; 그 아줌마랑은 다른 관점이 나올지 흥미롭네요. ^^
  • 3인칭관찰자 2018/10/08 22:14 #

    시오노가 요한기사단도 좋아하는 건가요. ;;; 그러고 보니 시오노 작품 중《로도스 섬 공방전》이 요한기사단을 축으로 한 이야기였다는 건 기억이 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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