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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 키요시] 사색자의 일기思索者の日記 아오조라문고





  1월 5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잦은 기침이 나왔다. 흡연으로 인후咽喉를 해쳤기 때문이다. 아침 늦게 일어날수록 기침이 심한 건 그 전날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며 담배를 많이 피웠다는 증거이다. 내 기침은 상당히 유명하여, 이웃집 아이들은 나를 "쿨럭쿨럭 아저씨コンコンのおじさん" 라고 부른다. 노인 티가 나서는 안 되겠지만 흡연량이 쉽게 줄지 않기에 곤란하다. 내가 외출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건 그 기침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다고 세상을 떠난 아내가 말했고, 내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는 기침소리가 들리는지 아닌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이웃들은 이야기하였다. 이렇게나 기침을 하면서도 내 자신이 그닥 자각이 없다는 점은, 수신修身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한 가지 사례로 써먹을 만한 사실이다.

  2층에 있는 작업실에서 문득 바깥을 바라보니 연凧 하나가 하늘 높이 올라가 있다. 날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춤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덩실거리는 것 같기도 한 그 코미컬コミカル한 자태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하늘에는 구름이 끼고 바람이 거셌다.

  우편물을 챙긴 후 필요한 곳에 답신을 쓴다. 올해는 연하장年賀状을 일절 보내지 않았으나, 그래도 시골의 지인들이 보내온 연하장에는 이쪽에서 답신을 써 보낸다. 정월이 되면 시골이 그리워진다. 도쿄에는 '정월正月' 이 없다.

  어젯밤 늦게까지 잠을 설치며 마무리지은 팸플릿 교정본을 들고, 저녁까지는 다시 교정을 받을 작정으로 서둘러 니혼바시日本橋까지 갔으나, 오늘은 인쇄소가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가니 아이(역주 : 저자 미키 키요시三木清의 외동딸로 훗날 도쿄대 문학부 교수 겸 역사학자가 된 나가즈미 요우코永積洋子 여사)가 책상 위에 내 생일을 축하하는 편지와 생일선물인【 골든배트 담배 】를 놓아두었다. 오늘은 내 생일. 이를 축하해주는 건 아이 한 명 뿐. '자축자계自祝自戒가 따로 없구나.' 라고 중얼댔다. 나는 이전부터 생일을 축하한다는 걸 그다지 해 본 적이 없었다.

  대체로 서양과 동양은 태어나거나 죽는 데 대한 사고방식에서도 다소 차이가 나는 듯하다. 소크라테스ソクラテス도 그리스도キリスト도 그들의 죽음이 사상적 영향을 펼치는데 커다란 의의를 지니는 데 반해, 공자孔子와 같은 경우 그의 죽음은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는 지적은 분명 와츠지 씨(和辻氏, 역주 : 테츠로哲郞) 등이 지적한 부분인데, 이는 "동양인들은 죽음을 문제삼지 않았다." 는 말은 아니며, 그저 죽음에 대한 사고방식이 달랐던 데서 연유한다 생각한다. "다다미 위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고 우리들은 말하곤 한다. 즉 자연적인 죽음, 극히 일상적으로 죽는 것이 일본인들의 소망이다. 태어나고 죽는 것을 우리들은 서양인들처럼【 역사적인 】사건이 아닌,【 일상적인 】사건으로서 경험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을 구별하는 데에 서양인의【 역사적 의식 】이 존재하는 데 비해, 동양인에겐 일상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이 매하나이다. 이 점에 동양적 휴머니즘의 특색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소크라테스와 그리스도의 죽음이 비극적이었던 것처럼, 이른바【 역사적 의식 】에는 비극적 정신이 깃들어 있다. 헤겔ヘーゲル이나 셀링シェリング 같은 사람들이 비극적 정신을 "역사의 본질을 이해하는 근본" 으로 두는 데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그와 같은 비극적 정신이 없다. 같은 페시미즘ペシミズム일지라도 동양의 그것은 이 점에서 서양의 그것과 다르며, 이에 따라 옵티미즘オプチミズム도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생각된다. 나는 과거에 "일본인에게는 비극적 정신이 없으므로 나치식의 정치는 일본에 적합하지 않다." 고 기고한 적이 있다. 오늘날 지나사변(支那事變, 역주 : 중일전쟁中日戰爭)에 대해 "동양의 비극東洋の悲劇" 이니 하는 단어를 쓰는 일본주의자도 존재하지만, 일본주의자가 비극적 정신을 설파한다는 건 일본주의가 변질되고 만 결과가 아닐까?

  며칠 전 타나카 미치타로田中美知太郞 군이 찾아와 테르툴리아누스テルトゥリアヌス의 책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보았기에 오늘 책을 찾아봤는데,《교부 문고敎父文庫》에 수록된 독일어 번역본만이 있었다. 이를 꺼내어 읽고 있는 동안 저녁이 되었다. 타나베 코우이치로田辺耕一郎 군이 찾아와 농민문학 간화회農民文学懇話会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는데 와타베 요시미치渡部義通 군이 내방하고, 뒤이어 마스다 케이자부로桝田啓三郎 군도 찾아왔다. 타나베 군이 혼자서 먼저 돌아간 후에는 와타베 군과 바둑을 두 번 둔 후, 세 사람이서 저녁을 먹었다. 8시 무렵에는 생일을 자축할 작정으로 마스다 군과 함께 긴자銀座로 나가 술을 약간 홀짝였다. 그 곳에서 와다 히데키치和田日出吉 씨를 만났다. "만주滿洲로 오지 않겠는가?" 하는 제안을 받았다. 12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곧장 침상으로 가 수면을 취했는데, 3시 무렵에 눈이 뜨인 후로는 잠을 이루지 못했기에 루난ルナン의 논문집論文集을 꺼내어 침상 위에서 읽고 있는 동안 새벽이 밝았다.


《분게이文芸》1939년(=쇼와 14년) 2월호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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