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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무장 인기의 뒷사정》허상幻의 군사軍師들 역사



  본 글은 2008년, 일본출판사 PHP연구소에서 신서본新書本으로 간행된 스즈키 마사야鈴木眞哉 씨의 저서《전국무장ㆍ인기의 뒷사정戰國武將の人氣のウラ事情》제 2장 <과대평가된 명군사들> 중 3편인【 에도시대에 유명세를 탄 허상의 군사들 - 야마모토 칸스케 등 】부분(p. 57 ~ 61)을 번역한 것입니다. 위 책은 현재 종이책으론 절판된 상태이나, 아마존 킨들 등을 통해 일본에서 판매되고 있는 책입니다. 가능한 한 필요한 부분만 번역하겠으며, 절대로 배포나 불법공유 목적으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기서 명확히 하겠습니다.


  야마모토 칸스케(山本勘助, 勘介) 하루유키晴行는 에도 시대 이래 대단한 유명인有名人이었다. 메이지明治 이후로도 제법 유명했으나, 최근(2008년)에 들어 NHK 대하드라마 주인공으로 선택되면서 그야말로 초 유명인으로 부상했다. 이 드라마 붐에 편승하여 많은 책들이 출간되어 있고, 칸스케를 주제로 삼아 쓰여진 책도 산처럼 많다. 그러나 그걸 보고 칸스케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느냐면, 그렇지가 않다.

우치노 세이요가 분한 2007년 NHK 대하드라마《풍림화산風林火山》의 칸스케.
우치노는 2016년작《사나다마루真田丸》에서 토쿠가와 이에야스 역을 맡기도.
(출처 : 일본 아마존《NHK 대하드라마 스토리 풍림화산》(前編))


  이 문제에 대해선《전국시대에 대한 커다란 오해戦国時代の大誤解등에서 다룬 바 있으니 했던 말을 또 하는 건 피하고 싶지만, 애초에 칸스케를 유명하게 만든 데는 타케다武田의 사료인《코요군칸甲陽軍鑑》이 크게 기여했다. 여기에 따르면 그는【 미카와 지방 출신으로 여러 지방의 정세에 능통하며 축성술築城術 등의 재능도 뛰어났으나, 피부가 검고 애꾸눈인데다 전장에서 입은 부상으로 팔다리가 부자유스런, 시원찮은 풍채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래서 스루가 이마가와 가문駿河今川家에 사관仕官하기를 청했음에도 상대도 해주지 않았던 걸, 타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좋은 조건을 제시해 데리고 왔다. 】

  그 때가 텐분 12년(1543)이었다고 이 책은 기록하고 있으며,【 이후 그는 에이로쿠 4년(1561)에 카와나카지마 전투川中島の戦い에서 전사할 때까지 신겐을 위해 지혜를 제공했다. 】고 되어 있다. 그야말로 '군사軍師' 라 할 만 하지만, '군사軍師' 라는 형용은 위 서적에 일절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이미 지적된 바 있다.

메이지 시대에 그려진 칸스케의 초상화.(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마츠모토 후우코 作. 타케다 24장의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그려져 있다.


  칸스케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이《코요군칸甲陽軍鑑》의 기사에 베이스를 두고 있으나, 그것이 '의심스럽다' 는 목소리 역시 에도 시대부터 존재하였다. 히젠 히라도 번肥前平戸藩의 영주님이었던 마츠라 시게노부松浦鎮信가 겐로쿠 9년(1696)에 편찬한《부코자츠키武功雜記》에 수록된 기사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야마모토 칸스케라는 자는, 타케다 가문의 부장部將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昌景 밑의 일개 보졸一步卒이었다. 】는 주장이 여기서 제기되었다.

  기실《부코자츠키武功雜記》에 수록된 이 기사는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내용이 차고 넘치지만, 메이지 시대 중엽에 관학계官學系 학자들이 "이것이야말로 진실이다." 는 착각을 했다. 이후 <야마모토 칸스케는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일개 보졸에 지나지 않는다.> 는 식의 논문들이 여러 편 나오면서 이 주장은 학계의 정설定說로 굳혀지게 되었다.

  이 정설이 의심받게 된 건 쇼와 40년대 중엽에 발견된, 신슈(信州, 나가노 현長野県)의 호족에게 보낸 타케다 신겐의 편지에【 사자使者로 야마모토 칸스케山本管助가 파견될 것이다. 】는 내용이 명기되어 있었기 떄문이다. 이는 '山本管助' = '山本勘助' 라 간주해도 될 것이며, "타지에 사자로 보내질 정도라면 신겐의 측근이나 그에 상응하는 지위에 있던 인물임이 틀림없다" 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는 분명 지당한 주장이리라. 그러나 생각을 해 보면, 그게 전부일 뿐이다. 칸스케가 "야마가타 마사카게의 일개 보졸" 에 불과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이 명백해진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山本管助' 씨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인물이었는가, 군학적인 소양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칸스케를 팔아먹은《코요군칸》은 단순한 군담물軍記이 아닌, 코슈 류 군학甲州流軍学의 텍스트이기도 했다. 이 유파는 "타케다 신겐의 유법을 후대에 전한다." 고 자처하면서 칸스케를 사실상 유파의 시조流祖처럼 대접했다. 코슈 류 군학으로부터 호죠 류北条流 / 야마가 류山鹿流 등을 위시한 저명한 유파들이 줄줄이 파생되어 나왔고, 쇼군 가문將軍家을 위시한 수많은 다이묘 가문大名家들이 이 코슈 류 계열의 군학을 채용하였다. 그렇기에 무사 가문武家의 세계에서 칸스케는, 가면 갈수록 커다란 존재가 되어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삐딱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고산케御三家 중 하나인 키슈 토쿠가와 가문紀州徳川家의 번조藩祖 (토쿠가와徳川) 요리노부頼宣는 종가宗家를 향한 대항심이 왕성한 사람이었는데, 이 가문은 우에스기 켄신上杉謙信의 유법이라 전하는 에치고 류 군학越後流軍学을 채용했다. '종가가 타케다 신겐의 유법을 채용했으니, 이 쪽은 신겐의 호적수인 켄신의 것을 채용하겠다!' 는 요리노부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라고 역사학자 타카하시 오사무高橋修 씨는 해석하였다.

이에야스의 10남 토쿠가와 요리노부의 초상화.(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나이대 비슷한 조카인 3대 쇼군 토쿠가와 이에미츠와 대립각을 여러 번 세우기도.


  이 에치고 류에선 야마모토 칸스케에 대항하는 또 다른 <명군사> 를 끄집어냈다.《에치고군키越後軍記》에 우사미 스루가노카미 요시카츠宇佐美駿河守良勝,《호쿠에츠군키北越軍記》에 우사미 스루가노카미 사다유키宇佐美駿河守定行라 기록된 인물이 바로 그것이다. 동일인물임을 상정한 것이라 추측되나 두 서적에 쓰여져 있는 내용은 상당한 차이가 난다. 근본이 가공인물이었으니 당연한 거지만. 일반인들에게는 후자의 호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우에스기 가문의 부장들 중엔 우사미 스루가노카미 사다미츠宇佐美駿河守定滿라는 '헷갈리기 쉬운' 이름을 지닌 자가 분명히 실존했다. 그러나 이 인물은 군학 같은 곳과는 관계가 없는 일반적인 무장으로, 이름만 차용한 것이라 추측된다.

게임《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의 우사미 사다미츠 일러스트.
군사 이미지를 반영한 능력치를 소유.(출처 : 해당 게임에서 캡처)


  기실 키슈 가문에는 이 우사미 스루가노카미 사다유키의 증손자라는 사다스케定祐라는 자가 등용되어, 요리노부가 군학을 연구하는 데 조수助手 비스무리한 직무를 수행했다. 이 사다스케가 <명군사> 우사미 스루가노카미를 날조한 것이라 추측되는데, 그는 본래 우사미 성을 쓰던 자가 아닌, 오오제키大関란 성을 쓰던 자였다. 번의 명령에 따라 우사미로 성을 고친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우에스기 가문의 대군사를 창작하여 그 병법술兵法術이라는 걸 내세운 건, 번 자체에서 벌인 작업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도 야마모토 칸스케, 우사미 스루가노카미 같은 경우엔 그럴싸한 실존인물이 존재하였으나, 에도 시대에 널리 알려진 <명군사> 중에서도 오사카 혼간사大坂本願寺의 군사 스즈키 히다노카미 시게유키鈴木飛騨守重幸 쯤 되면, 유사한 이름을 짊어진 실존인물조차 확인할 수 없다. 군학자 무리軍學徒들이 만들어낸 인물상이 아니란 점도 칸스케나 스루가노카미와 다르다 할 수 있다.

  스즈키 히다노카미는 혼간사本願寺 신도들을 잠정 독자로 삼았으리라 추측되는 패관사稗史에서 등장하는 인물이다. 아마《이시야마군키石山軍記》언저리에서 처음 등장하여, 그 후로 조금씩 바리에이션이 덧붙여진 듯 하다.《이시야마군키》는 제목대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혼간사 사이에서 벌어진 이시야마 전쟁石山戦争을 소재로 한 군담물로, 이 비슷한 이야기들은 설교승들에 의해 만담조張り扇調로 퍼져나갔고, 이 세계에서도 히다노카미는 대활약을 벌였다.

  대놓고 창작된 인물이었던지라 저자書き手도 이야기꾼語り部도 그의 출신出自같은 건 적당주의로 설명하였는데, 그 이름이 서서히 보급되고 정착되자 히다노카미의 자손을 자처하는 집안까지 등장했다. 그것도 한 두 집안이 아니었다. 쿠로사와 아키라黒澤明 감독의《츠바키 산쥬로椿三十郎》가 대박을 치자 진심으로 츠바키 산쥬로의 자손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와 비슷한 이야기라 하겠다. 물론, 스즈키 히다노카미는 군학과는 연관고리가 없이 만들어진 인물이기에 그를 유조流祖로 삼는 군학 유파는 전무하다.


덧글

  • 도연초 2018/07/05 13:40 # 답글

    쿠스노키 마사시게도 이런 의혹(정말로 제갈량급의 전략가인가에 대한 의문과 한발 더 나아가서 후세의 창작이라는 게 유력한 남공류군학[楠公流軍學]까지)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물론 그가 천황 다음가는 수준의 정서가 여전한 것도 한몫 하지만요.(중국인이 공자, 관우를 보는 시선과 비슷함) 제국시절이야 천황급의 존재였다 하니 말할 필요도 없고.
  • 3인칭관찰자 2018/07/05 14:16 #

    아무래도 그가 에도 시대 이후 본격적으로 존왕열사, 충신, 명장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인기몰이를 하면서 각색되거나 과장된 부분이 적지 않겠지요. 요즘은 덜하다지만 패전 이전의 일본에선 쿠스노키 하면 관우와 제갈량을 합친 급으로 숭배받았다고 하니 당시 분위기에선 그야말로 텐노에 버금가는 성역이었을 듯 합니다. 칠생보국, 미나토가와, 키쿠스이 같은 단어들은 그야말로 종교장치 비슷하게 쓰이지 않았나 싶기도...
  • 도연초 2018/07/05 14:20 #

    본인만 그런게 아니라 장남 마사쓰라까지 아비와 똑같은 최후를 맞은 것을 보면...
  • 3인칭관찰자 2018/07/05 14:27 #

    정말 충신은 충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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