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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180405 -《대한민국 소통법》中 '정치의 격투기화, 개그화' 독서





  옛적에 노트에 필사하였던 내용을 다시 한 번 읽고서 기록 차원에서 남깁니다. 출간된지 10년이 되어가는 책에 실린 글이지만 요즘에 와서도 생명력이 다하지 않은 것 같아 이번을 마지막으로 포스트를 올려보려 합니다. 인용하는 두 개의 글이 정확히 몇 페이지에서 몇 페이지인지를 남기지 못한 것과 제가 필사한 내용이 원문과 같은지를 확인하지 못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추후 책을 입수하는 대로 명기 / 수정하겠습니다. 저작권상으로 문제가 될 경우에는 댓글 남겨주시면 비공개글로 돌리거나 삭제하겠습니다.


출처 : 강준만 著, 개마고원(2009년 출간)
《대한민국 소통법 -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가》中

<왜 정치의 이종격투기화가 일어나나?>
<정치의 개그화, 개그의 정치화>
부분 발췌


  왜 정치의 이종격투기화가 일어나나?

  정치인이 대중을 지배하던 시대는 가고 대중이 정치인을 지배하고 정치인들의 싸움을 즐기는 시대가 됐다. 반대하는 것을 즐기고 분노하고 공격하는 정치인이 유리하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행동하고, 단순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제 정치인은 더 이상 통치하는 자가 아니다. 죽지 않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원형극장의 검투사이거나, 피를 흘리며 바닥을 기는 격투기 선수 신세가 되었다...(중략)....

  ● '민' 박성민 대표의 주장 : 정보화 / 세계화로 인해 개인적 편차에 따른 아젠다(의제)만 존재하는 시대가 도래
  ● 저자의 주장 : 민주투사들에 대한 정치적 보상이 왕성하다 못해 과도하게 이루어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시대의 업보

  대중도 처음엔 민주투사들의 화려한 변신을 '당연하다' 고 생각했지만 내심 그들만큼은 이전의 권력자들과는 다른 '절제' 를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딴판이었다. 정도는 덜했을망정 부정부패는 여전했고 '노블리스 오블리제' 도 없었다.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은 권력행사를 통해 그 어떤 보상을 찾고자 했음인지 독선으로 치닫기도 했다. 겸손은 없었다.

  민주투사 그룹 내에도 서열은 있기 마련이라서 재미를 본 건 지도자 그룹 뿐이다. 이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 출세를 하면서도 이구동성으로 그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혁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야만 개혁을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중략)....

  각자 억대에 육박하거나 억대를 넘는 연봉에서 조금이라도 떼내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이름 없는 민주투사들이나 소외된 이를 돕는 행사를 자주 벌였다면 자신들의 초심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 대신 자신만을 위한 재테크에 신경쓰고 골프장으로 몰려다니면서 정략 연구에만 몰두했다.

  물론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니, 민주투사에게만 특별한 그 무엇을 요구하는 건 기득권자들의 자기정당화 논리에서 비롯된 부당한 일일 수 있다. 그들에게도 크게 잘못된 것일망정 한국의 보편적인 출세문화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들이 그걸 수긍하는 자세를 보이기보다는 기회만 있으면 당당하면서도 순진한 척 하는 얼굴로 민주투사 시절의 레퍼토리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불신을 키웠다는 데 있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중이 냉소 이외에 무엇으로 대처할 수 있으랴. 정치가 원형극장의 검투혈전이나 이종격투기로 변질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중은 열망 없는 구경꾼의 심리로 싸움이나 즐기겠다는 자세로 돌아섰다. 이는 헌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신뢰회복이 제1의 개혁과제다.


  정치의 개그화 - 개그의 정치화(집단사고의 일상적 상례화)

  "밟으면 밟을수록 커지는 것은? 요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갈수록 험악해지는 개그맨들의 '씹고 밟기' 경쟁 속에서 악한 자만 살아남는다." 공감이 간다. 언제부턴가 개그맨들의 입담이 험악해졌다.

  씹고 밟기에 능한 정치인을 보라. 열성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라는 말로 대변되던 아첨의 문법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노골적인 아첨은 누구에게나 거부감을 준다. 그러나 정적에 대한 씹고 밟기로 아첨을 대체하면 투사 이미지를 지키면서 아첨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다.

  과거엔 '씹고 밟기' 로 크긴 어려웠다. 인간의 기품을 비교적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같은 편이라 하더라도 기품 없이 험한 독설로 상대편을 난도질하는 작태를 곱게 보진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엔 기품의 가치가 크게 약화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인터넷의 공이 큰 것 같다. 인터넷은 이른바 '집단사고' 의 상례화를 몰고 왔다. 집단사고란 동질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강경노선을 대표 의견으로 채택하는 사고 경향을 의미한다. 인터넷 이전엔 동질적인 사람들을 찾아내 한곳에 모으기란 어려웠을 뿐 아니라 매일 만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그 어려움과 불가능을 일시에 해결해준다....(후략)


덧글

  • 2018/04/06 11: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4/06 13: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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