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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이하라 타다오] 도쿄대 성서 연구회 폐강사 (上) 아오조라문고



  이 포스트는 청년시절 우치무라 칸조内村鑑三의 훈도를 받은 무교회파 크리스트교인의 양심에 기대어, 쇼와 시대 초기 일본 도쿄 제국대학 경제학부 교수로서 일본의 식민지 통치와 침략주의를 끊임없이 비판하였기에 중일전쟁(1937) 이후 학계에서 추방되셨다가, 일본 패전 이후 복권되어 1951~1957년 도쿄대학 제 16대 총장으로 재임하셨던 故 야나이하라 타다오(矢内原忠雄, 1893~1961) 교수님의 글로, 1937년 중일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셨다가 반강제적으로 도쿄 제국대학을 사직해야 했을 때, 15년간 본인이 지도해오시던 학내모임인【 제국대학 성서 연구회帝大聖書研究会 】의 회합에서 마지막으로 강의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사야서イザヤ書 34장, 35장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 부분은 이사야가 한 말이 아니라, 2세기가 흐른 후 바빌론 유수バビロン捕囚라는 국민적 비운을 경험하던 시대에 이름이 알려지지 못한 어느 예언자預言者가 부르짖은 말을, 그로부터 다시 2세기가 지나 이사야서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편집되던 때에 편집자가 이사야서 예언의 마지막 곡으로 수록한 대목이다. 이사야서에는 이사야가 한 말은 물론, 그로부터 후대에 이름 없는 예언자들이 한 말도 수록되었으며, 편집자들의 신앙도 반영되어 있다. 유대ユダヤ 국민은 역사 속에서 온갖 사건을 경험해왔는데, 그 오랜 시간동안 국민들 가운데 독실한 신앙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이 대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물려받으며 이를 지켜왔고, 편집자로선 이를 편집하는 작업이 바로 예언의 한 가지 형식이었던 것이다.

  이 이사야서의 마지막 곡은 세계의 심판(34장 1~4절)과 에돔의 형벌(34장 5~7절), 그리고 이스라엘의 부흥(35장)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너희 많은 민족들아, 가까이 와서 들어라.
수많은 백성들아, 귀를 기울여 들어라.
땅과 땅, 그 사이에 가득한 자들아.
세계와 그 곳에서 사는 모든 자들아, 들어라.


  세계의 모든 민족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하느님이 지구를 창조하시고 그곳에서 인류를 살아가게 하신 것은, 그들이 서로 죽고 죽이기를 바라셨기 때문이 아니다. 이 세상을 아름다운 세계로 만드시기 위해서이셨다. 그러나 누구 하나도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국민은 없었으며, 그들은 서로 다투며 하느님의 길에서 떠나갔다. 그들은 마음속에 하느님을 받아들이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마음대로 하게 하시어 그들이 죽도록 내버려두셨다.(34장 2절) 이처럼 하느님께 버림받은 것은 가장 비참한 일이요, 가장 큰 형벌이다.(로마서ロマ書 1장 24절 참고)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어째서 이렇게 전쟁이 일상적인 것이 되었느냐면, 그들이 마음속에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자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그들을 죽였고, 파국을 향하여 돌진해갔다. 인류는 막다른 길에 다다를 때까지 하느님의 심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하느님의 심판은 세계 모든 국민들에게 미친다. 심판의 내용이란, 하느님께 적대하는 자에게는 형벌이 될 것이요, 하느님을 믿는 자에게는 은혜가 될 것이다. 이들 가운데 하느님께 적대하는 자들에 가하는 형벌 쪽을 고조시킨 것이 34장 5절 이후의 구절들로, 이스라엘의 숙적宿敵인 에돔エドム이 그 대표자로 거론되고 있다. 에돔은 쑥대밭이 되어, 펠리컨과 고슴도치와 들개와 늑대, 그리고 요괴들의 천국이 될 것이다. 인간다운 인간은 씨가 마르고, 사회는 황폐해져 평화와 질서를 상실하고, 피비린내나는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하느님을 믿는 이스라엘이 눈부시게 부흥하는 모습은 35장에 예언되어 있다. 하느님의 심판은 엄정한 것이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에 있고, 또 부흥에 있다. 하느님께 적대한 자를 벌하는 것도 실은 하느님을 믿는 자를 구원하기 위한 준비인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비참한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본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심판이 최종적으로는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이사야서 35장은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즐거워하며 꽃이 만발하리라.
샤프란처럼 무성하게 피어 빛나며
크게 기뻐하며 즐겁게 노래하리라.


  라는 대목으로 시작하는 실로 아름다운 시구로, 엄청난 부흥의 모습이 담겨있다. 바빌론 유수라는 비운 속에서 다가오는 희망의 목소리를 외치는 자와, 이 시구를 최종곡으로 삼아 이사야서를 편집한 사람은 실로 크나큰 신앙을 가진 자였으리라 생각된다.

  예언자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 유대의 국위는 아직 번영을 누리고 있었음에도, 그러한 국민들의 교만함 속에서 이사야는 멸망의 징조를 보았다. 그 후로 2백 년이 지나자 결국 망국의 비운은 찾아왔고, 국민 상하가 위축되어버렸을 때, 또다른 예언자가 나타나 "황야에 물이 솟구치리라" 고 예언하였다. 지금은 황야일지라도 하느님은 은총을 내려 황야에서도 물이 솟구쳐 오르게 하신다. 야훼 하느님エホバの神을 믿는다면 망한 나라도 부흥할 수 있다. 고 말한 것이다.

  훗날 바빌론 유수에서 국민들이 돌아와 신전이 재건되고, 황폐해졌던 국토도 서서히 회복되었으나, 왠지 모르게 국민들에게는 기력이 없었다. 그들은 죄에 대해 심각하게 슬퍼하지 않았고, 구원의 힘으로 충만하여 기뻐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시대, 이사야서를 편집한 자가 나서서 이 글을 국민에게 보이며, 하느님의 심판을 자각할 것을 가르친 것이다.

  예언자는 국민들이 기쁨의 절정을 누리며 공허한 낙관에 탐닉해있을 때 멸망의 징조를 보고 슬퍼하며, 국민이 의기소침하여 비애에 빠져있을 때 부흥의 싹을 찾아내어 희망을 예견한다. 중국支那의 격언 중에 "사람들보다 먼저 걱정하고, 사람들보다 늦게 기뻐한다." 는 말이 있는데, 우리들의 경우엔 앞뒤의 문제가 아닌 깊이의 문제이다. 사람은 표면을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본질을 보신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표면적인 사람의 마음을 심판한다. 우리들이야 기쁨과 슬픔을 드러내지 않는 속 깊은 성인군자가 아니다. 그저 슬퍼해야 할 때는 하느님의 슬픔을 슬퍼하고, 화낼 때는 하느님의 노여움을 노여워해야 할 것이다. 기쁠 때도 하느님의 환희를, 희망을 품을 때도 하느님의 희망을 지녀야 할 것이다. 인간적이고 표면적인 희노애락의 정에 빠지지 말고, 하느님과 함께 하면서 비롯되는 사람들의 교만을 슬퍼하고, 사람들이 의기소침해 있을 때 희망을 줄 수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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