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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이하라 타다오] 독서와 저서 (下) 아오조라문고


  이 포스트는 청년시절 우치무라 칸조内村鑑三의 훈도를 받은 무교회파 크리스트교인의 양심에 기대어, 쇼와 시대 초기 일본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 교수로서 일본의 식민지 통치와 침략주의를 끊임없이 비판하였기에 중일전쟁(1937) 이후 학계에서 추방되셨다가, 일본 패전 이후 복권되어 1951~1957년 도쿄대학 제 16대 총장으로 재임하셨던 故 야나이하라 타다오(矢内原忠雄, 1893~1961) 교수님께서, 은거하고 계시던 1940년 7월 이와나미쇼텐의 잡지《토쇼図書》에 기고하셨던〈독서와 저서〉라는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자서전《내가 걸어온 길》표지에 실린 야나이하라 타다오의 사진(출처 : 아마존 재팬)




  2. 글을 읽는 건 즐거울지 모르나, 글을 저술하는 건 고통스럽다. 책 한 권을 저술할 때마다 드는 심신의 소모는 대단하다. 특히 지금과 같은 시세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아담 스미스도 그만한 대작을 쭉쭉 써나갔다는 건, 읽으면서 대단히 유쾌하게 와 닿는 바였다.《국부론》에서 지대地代에 관해 길게 서술한 장, 내지는 그 가운데서도 특히 내용이 긴 "은銀 가치에 대한 지론" 같은 것도 애독하다 보니 장황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였다. 오히려 세심히 온갖 견문과 독서의 산물들을 글로 옮기는 스미스의 풍모를 미소지으며 상상할 수 있었다. 그들의 학식과 식견과 정력과 노력에 힘입은 바였음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을 그렇게 자유로이 집필할 수 있도록 도운 사회적 풍토가 부럽다. 스미스는 적지 않은 연금을 지급받으며 많은 여가를 누리는 연구생활 도중에《국부론》을 집필하였는데, 여기에 비하면 히포 지방의 감독으로 대단히 바쁜 교회생활 속 사무를 처리해나가면서도 13년의 세월을 들여 조금씩 조금씩《신국》을 저술한 아우구스티누스는 한층 더 고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검열에 의한 고초는 그도 겪어보지 못했으리라. 이 점에선 엄혹한 시세의 압박 속에서 저술된 글들이 성서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주의를 끄는 바이다.(예를 들자면 구약의 <다니엘서>, 신약의 <요한묵시록>)

 《내가 존경하는 인물余の尊敬する人物》이라는, 문자 그대로 내가 집필한 작은 저서가 최근 이와나미 신서岩波新書로 출간되었다. 이 책을《신국》이나《국부론》과 비교하는 것은 너무나 격차가 크고 괴어하여 말할 가치도 없으나, 약간 지면이 남았으므로 자화자찬을 조금 늘어놓도록 하겠다.

 《내가 존경하는 인물》은 예레미야エレミヤ / 니치렌日蓮 / 링컨リンコーン / 니토베 박사(新渡戸博士, 역주 : 이나조稲造) 이상 4명을 다루고 있다. 앞의 두 사람은 예언자형 인물이며, 뒤의 두 사람은 좋은 의미에서의 상식인형 인물이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존경하는 미덕이자 이 4명에게 공통된 성격은 다음 4가지이다.

  (1) 진리를 사랑했음
  (2) 성실했음
  (3) 평민적이었음
  (4) 결점이 있는 인물이었음

  마지막인 (4)의 성격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나는 결점이 없는 인물, 내지는 결점이 없는 인물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자들을 존경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러한 인물은 우선 재미가 없다. 그리고 친근감이 들지 않는다. 그뿐만이랴, 대개는 위선자僞善者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결점이 있는 인간, 내지는 결점을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인간은 적어도 정직하다. 물론 자신의 결함을 자랑하며 고의로 이를 남에게 과시하는 건 고약스런 오만이지만, 진리를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인간적 결점이 자연히 드러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인물은 필시 진리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고 천부적으로 진리와 부합하는 성격을 지닌 자일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인간이 가진 모든 성정과 욕망을 한결같이 원만하게 발달시켜, 그 균형에 기반하여 인격완성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인생관에 나는 공감할 수 없다. 이는 공리주의이며, 타협과 위선, 타산과 물욕이 발생하는 텃밭이 된다.

  이익보다도 진리를 우선하고, 진리를 위해서 싸우는 진실한 성격의 소유자는, 진리 이외에는 자신이 가진 내적 / 외적 장식을 일절 필요로 하지 않는 평민적인 인물이자, 결점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직선적인 인물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러한 성격은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 말하자면 어떠한 나라 / 어떠한 시대에서도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인 개인은 역사적 존재이므로, 각자가 생활하는 사회의 역사적 관계를 밝혀야 그 인물의 가치란 게 더욱 더 명료해진다. 물론 역사적 관계와 얽혀 있는 이상 개개의 시대에 따라 마냥 동일하지는 않은 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사회에서 행해져 온 것과 동일한 원리가 필요한 부분만 약간씩 수정되어(mutatis mutandis), 현재의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과거의 인물을 논하는 건 과거의 사회를 논하는 것이요, 과거의 사회를 논하는 건 현재의 사회를 논하는 것으로, 따라서 과거의 인물을 논하는 건 현재의 사회를 논하는 것이 된다. "예레미야" 는 하나의 사회비판이요, "니치렌" 은 하나의 종교비판이고, "링컨" 은 정치비판 / "니토베 박사" 는 교육비판이 된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이 작은 저서를 그렇게까지 깊게 읽어주시기를 요구하는 건 무리한 주문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역시 자화자찬에 불과하다. 그저 아우구스티누스나 아담 스미스는 나같은 자와는 비교도 되지 아니할 정도로 위대했으며, 또 엄청나게 행복했다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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