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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이하라 타다오] 독서와 저서 (上) 아오조라문고



  이 포스트는 청년시절 우치무라 칸조内村鑑三의 훈도를 받은 무교회파 크리스트교인의 양심에 기대어, 쇼와 시대 초기 일본 도쿄제국대학 경제학부 교수로서 일본의 식민지 통치와 침략주의를 끊임없이 비판하였기에 중일전쟁(1937) 이후 학계에서 추방되셨다가, 일본 패전 이후 복권되어 1951~1957년 도쿄대학 제 16대 총장으로 재임하셨던 故 야나이하라 타다오(矢内原忠雄, 1893~1961) 교수님께서, 은거하고 계시던 1940년 7월 이와나미쇼텐의 잡지《토쇼図書》에 기고하셨던〈독서와 저서〉라는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도쿄대학 총장 시절의 야나이하라 타다오(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1. 사람들에게 "귀하는 지금 뭐하고 지내십니까?" 란 질문을 자주 받는다. 기실 나는 소수의 청년들에게 고전강의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첫 번째가《성서聖書》/ 두 번째는 아우구스티누스의《신국神の国》/ 세 번째는 아담 스미스의《국부론国富論》. 그렇다 해도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아마추어 수준의 학문에 그치는지라 전문가들의 눈에는 유치하게 보일 게 분명하다.

  그러나 고전을 읽는 것은 실로 즐겁다. 몇 천년, 몇 백년 "시간" 의 시련을 거친 서적이면서 단순히 고고학적 호사가들의 장난감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인에게도 일반적인 흥미를 갖게 하는 것, 그것이 고전이다. 고전은 단순한 고서가 아니다. 약간 친근한 태도로 고전을 읽다 보면, 그 저자는 역사의 옷을 벗고서 생생히 우리들 앞에 나타난다. 현대 사람들이 시국 속에 위축되어 자기 할 말을 하지 못하거나 / 노예의 언어로밖에 말하지 못하거나 / 내지는 거짓되고 왜곡된 언어를 놀리는 가운데, 고전은 솔직하고 상세하게 진실을 이야기해준다. 그 뿐 아니라 고전의 이야기는 현대의 생생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고전은 우리들에게 진리의 영원성을 깨닫게 한다. 우리들은 고전을 읽으면서 놀라울 정도로 현대를 알아나갈 수 있다. "시간" 의 파도를 넘어 살아 있는 영원한 진리의 탐구자와 손을 맞잡고 현대를 논한다. 이것이 내겐 참을 수 없이 즐거운 것이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의《신국》은 지금(1940년)으로부터 약 1,520년 전에 저술된 책으로, 그 집필이 시작된 건 북방 야만족의 군대가 로마를 함락시키고 마음껏 약탈을 저지른 사건으로부터 3년이 지난 후(413년)였다. 당시 이 재난을 "로마 제국이 크리스트교를 공인하고, 고유의 다신교 예배를 금지시킨 데 대한 신들의 분노" 라고 일컫는 자들이 있었다. 이러한 여론에 맞서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하기 위해 아우구스티누스는 22권으로 이루어진 이 대저작을 집필한 것이다.

  이 책의 최초 5권은 로마의 역사와 다신교에 관한 기술이 많아서, 지루해하지 않으며 읽을 수 있는 자는 드물다, 고 일컬어졌다. 그러나 직접 읽어보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 거론되고 있는 문제를 요약하자면, 다음의 두 문장으로 좁혀진다.

  (1) "전쟁에 수반하는" 살육 / 약탈 / 포로 / 능욕 등의 재앙이 크리스트교인들에게까지 미친 건 어째서인가. 그리고 이와 같은 재앙이 닥쳐왔을 때 크리스트교인들이 자살하지 않았던 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가?

  (2) 로마 제국이 영토를 광대히 확장하는 한편으로 이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과연 로마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다신교 신들에 힘입은 것이었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극히 세세하게 논하면서, 다신교의 미망迷妄함과 크리스트교의 진리를 논증하였다. 찔러보면 피가 솟아날 정도로 생생한 현실문제를 놓고 그는 정면에서 달려들어 오래도록 축적한 학문적 교양을 쏟아 붓고, 열렬한 종교적 신앙을 들이부어 진리를 변호할 목적으로 싸운 것이다. 교회 내부에서 펠라기우스파 / 도나티스트들과 논쟁을 벌이는 데 종사하고 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책에선, 교회 밖에 있는 크리스트교의 적인 다신교에 맞서 현세적 문제를 놓고 싸움을 벌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통절하게 와 닿는 점이란 진리를 위해 싸우는 그의 열렬한 정신과 기백이었다. 이 점이 내 가슴을 울리고, 내 피를 끓게 한다. 그의 박식한 교양과 지식과 견해는 대단히 유익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러나 그가 살아있는 인간이 되어 페이지에서 뛰어나와, 내 손을 잡으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건 그의 저술 태도 / 정신 / 기백 덕택이다. 고전을 읽는 쾌락은 여기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고전을 읽는 자는 그 전문全文을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저자의 정신과 기백은 서문과 결론만을 읽어선 알 수가 없다. 이것들은 전편全篇에 걸쳐 흐르고 있으며 때로는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글에도 샘솟고 있다. 그렇기에 초록抄録이나 다이제스트梗概, 읽고 싶은 부분만 읽는 도서는 상당수의 경우엔 고전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고전은 원어로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언어는 사상을 표현하는 그릇인 만큼, 저자의 정신과 기백에 의한 섬세하고도 주도면밀한 표현은 저자 자신의 언어를 따르는 게 최선임은 자명하다. 그러나 모든 독자들에게 "고전은 그 나라의 언어로 읽으라." 고 요구하기는 대단히 힘들다. 그렇기에 고전 번역은 고전 그 자체 다음으로 중요하다. 그 번역은 좋은 번역이어야 하며, 완역이어야만 한다. 조악한 번역은 악한 저술 이상으로 유해하며, 부분번역은 고전의 정신과 기백을 전하는 데는 불충분하리라.

  나 자신도《신국》을 원어로 읽을 만한 능력이 없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라틴어 번역은 참고만 할 뿐, 영어 / 프랑스어 번역본 등을 가지고 읽는 중이다. 이 대작의 일본어 번역이 아직 한 종류도 나오지 못한 것은 일본문화에 얼마만한 손실이 될지 헤아릴 수가 없다. 아니, 불명예스런 이야기라 생각된다. 다이제스트 비슷한 것이 한두 권 출간되어 있지만, 저자의 사상과 정신을 꽤나 잘 소화한 사람이 집필하지 않는 이상은 다이제스트 부류는 고전에겐 이익은 없고 해롭게 작용할 경우가 많을 것이다.

  크로머 경이 집필한 소책자 중에《로마 제국주의와 영국 제국주의ロマ帝国主義と英帝国主義》라는 제목을 지닌 책이 있다. 로마 제국과 영 제국을 이러저러한 점에서 대비하는 게 흥미롭다. 서고트족의 왕 알라리크가 로마를 함락시킨 사건을 동기로 삼아 아우구스티누스가《신국》을 집필했듯이, "20세기의 신화" 를 외치며 크리스트교 배격을 표방하는 나치의 군대가 남하하여 각지를 석권한 지금, 영국 내지 프랑스의 어딘가에서 현대판《신국》을 저술하기로 뜻을 정한 "이 시대의 아우구스티누스" 가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동양 - 일본 - 다신교 -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연상도 해 보는 것이다.  
   

덧글

  • 진냥 2018/02/04 16:56 # 답글

    저도 고전 정말 좋습니다...ㅠㅠ 하편 기대하겠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8/02/04 20:37 #

    저도 그렇습니다. 글 저자분과는 달리 다이제스트 같은 물건에 많이 의존하긴 하지만요. ^^;;; 하편은 내일 안으로 올리기로 하겠습니다!
  • 2018/02/04 21: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05 10:1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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