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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료타로] 역사를 바꾼 황금黃金의 성 (1) 역사



  이 글은 故 시바 료타로 씨의 역사 에세이집인《역사의 세계로부터》의 38 ~ 50쪽에 수록된〈역사를 바꾼 황금의 성〉을 번역한 포스트입니다.


  - 이 성城이 번영했던 시기는, 빈곤한 일본사 속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호화찬란했던 때였다.

  (토요토미豊臣) 히데요시秀吉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이었나 하면, 그가 천하를 차지했을 때 마치 이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일본의 온갖 광산에서의 황금 산출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오오타규이치자츠키太田牛一雜記》에서도【 히데요시 공이 출세하신 이후, 일본 산야 곳곳에서 금과 은이 쏟아져 나왔다. 】고 기록되어 있다. 광산사鑛山史를 다룬 자료를 보아도 이 시대에서부터 시작하여 에도시대 초기에 이르는 때까진, 일본은 세계 굴지의 금 산출국이었다 한다. '골드 러시' 시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히데요시는 '산야에서 쏟아져 나오는' 황금을 물 쓰듯이 뿌려대며 천하를 안정시켰다.

  예를 들자면 케이쵸오오반(慶長大判, 역주 : 1601년에 발행된 금화 화폐로 기실 히데요시 사후에야 만들어졌다. 히데요시가 발행한 오오반은 1588년에 주조된 텐쇼오오반天正大判.)  / (케이쵸) 코반(小判, 역주 : 오오반에 비해 단위가 낮은 금화 화폐. 1595년 히데요시의 허가하에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주조하도록 한 게 시초)을 새로이 주조하였을 때, 히데요시는 여러 다이묘들의 손에다 이를 쥐어주었고, 그것도 한 두 번으로 그친 게 아니었다고 하니, 사람들이 보기엔 이 사내는 '황금의 신'으로 보였음이 틀림없다.


케이쵸오오반(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이에 따라 호탕豪宕했던 히데요시 치세의 영향을 받은 모모야마 시대桃山時代의 예술은, '황금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화가들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화구畵具들을 사용했다. 원래 색상이란 건 빨강 / 노랑 / 파랑의 3원색을 기반으로 성립하는 것이나, 모모야마 시대 화단의 화가들은 대담하게도 금金과 은銀을 그림에 사용했다.

  일본의 화가들은 지금도 금과 은을 그림에 사용하며 외국인들의 기이한 시선을 받고 있는데, 이는 토요토미 시대의 획기적인 황금 산출액에 기원을 둔 것이라 하겠다.

  그러한 황금시대를 상징한 것이 텐쇼 11년(1583)에 축성되기 시작하여 텐쇼 13년(1585)에 완성된 오사카 성大坂城이었다. 우리 일본인들은 토쿠가와 300년의 쇄국봉건제도鎖國封建制度를 겪으면서 오늘과 같이 소심하고 약삭빠른 민족이 되어버렸으나, 이전 시대에는 이와 같은 방탕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호쾌한 시대도 있었음을 생각해주십사 한다.

  이 성의 외곽은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요도가와 강淀川을 따라 서쪽으로는 히가시요코보리東橫堀를 외부 해자로 삼아, 지금의 미츠코시 백화점三越百和店 주변에 있는 코우라이 다리高麗橋를 정문으로 삼고, 남쪽으로는 도톤보리道頓堀에서 타마즈쿠리玉造에 이르기까지 카라보리(空堀, 물 없는 해자)를 구축한, 둘레 약 30리(약 12km)에 달하는 일본 역사상 공전절후空前絶後의 거성巨城이었다.



병풍도에 그려진 오사카 성의 텐슈가쿠(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주요 방어진지는 혼마루本丸 / 니노마루二の丸 / 산노마루三の丸 3개로 나뉘어있으며, 내부 7층으로 지어진 텐슈가쿠天守閣의 지붕에는 황금으로 만든 범고래 장식을 달았고, 기와마다 금박을 입혀 셋츠摂津 / 카와치河內 / 이즈미和泉 세 지방 어느 장소에 있더라도 이곳이 보이도록 했다.(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보인다)

  누벽의 높이는 20간(역주 : 약 36미터)으로 해자가 넓고 물이 깊어, 니노마루와 산노마루의 해자 폭은 40간(역주 : 약 72미터) ~ 60간(역주 : 약 108미터)에 달했다. 이 해자들 모두는 케이쵸 19년(1614) 겨울 전역 강화 당시, (토쿠가와德川) 이에야스家康의 교묘한 밀고 당기기 수법에 의해 싸그리 메워지고 말았다.

  성 안이 얼마나 광대했는가 하면, 겐나 원년(1615)의 여름 전역 당시 장병 10만여 명이 농성하였다는 걸로 이해가 갈 것이며, 그들 외에도 이곳에 거주하던 부녀자들만 1만 명이 되었다. 성 하나에 지금의 중형 도시급 인구가 수용되어 있었다. 규모와 크기가 얼마만한 것인지를 알 수 있으리라.

   

덧글

  • 2017/10/31 21: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10/31 21: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10/31 22: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10/31 23: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키키 2017/11/01 12:07 # 답글

    저 황금의 성을 지금은 볼 수 없다는게 아쉽지요.. 현재의 오사카성은 도쿠가와가 부셔버리고 새로 지은 오사카성에다가 현대의 기괴한 복구작업이 이루어진 것..
  • 3인칭관찰자 2017/11/01 18:23 #

    그렇습니다. 당시의 모습 그대로 지금 남아있었다면...
  • 남중생 2018/01/02 18:54 # 답글

    범고래... 장식이었군요.
  • 3인칭관찰자 2018/01/03 17:06 #

    자세히 보니 그렇네요. 옛날 오사카 성 지붕에도 범고래 장식이 있었군요.

    인사가 늦었지만 남중생님, 올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많은 일 성취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남중생 2018/01/03 23:07 #

    음력 설은 아직 멀었는걸요^^ 3인칭관찰자 님에게도 운수대통한 한 해가 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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