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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쿠가와 이에야스》이시카와 카즈마사石川数正 탈주사건 역사



  이 글은 2008년에 출간된《新 歷史群像シリーズ 12 德川家康 ~大戰略と激鬪の譜~》P. 70에 수록된 토막글【 이시카와 카즈마사 탈주사건의 진상 】을 번역한 글로, 필자는 일본 전국시대사의 저명한 권위자이신 오와다 테츠오小和田哲男 現 시즈오카 대학 명예교수님입니다.


  이시카와 카즈마사石川数正라 하면 사카이 타다츠구와 함께 '양대 가로兩家老' 라 불리던 이에야스 가신단의 쌍벽 중 하나였다. 에이로쿠 12년(1569) 이후로는 숙부 이시카와 이에나리石川家成를 대신하여 '미카와 서부의 군단장西三河の旗頭' 이 된 중신 중의 중신이었다. 출신도 괜찮았다. 그의 할아버지인 (이시카와) 키요카네清兼는 이에야스가 태어났을 때 히키메 역할(蟇目の役, 역주 : 귀한 가문의 자식이 태어났을 때 역귀를 쫓기 위하여 화살을 쏘는 의례를 맡은 자)을 수행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타케치요竹千代라 불리던 이에야스가 아직 슨푸駿府에서 지낼 때부터 그를 따른, 이에야스 유소년기 이래의 고굉지신股肱之臣으로 이에야스가 벌인 대부분의 전투에 출진하였으며, 외교 방면에도 유능하였다. 그야말로 미카와 무사三河武士를 상징하는 듯한 흠잡을 데 없는 충신이었던 것이다. 그런 카즈마사가 텐쇼 13년(1585) 11월 13일, 갑자기 탈주해버렸으므로 이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리고 하필 그는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 밑으로 도망쳐버렸으므로, 이에야스 입장에서 이는 이중의 쇼크가 되었다. 토쿠가와 군의 군사제도軍制가 만들어지는 데는 카즈마사의 공적이 컸다고 하니 당사자인 카즈마사가 히데요시 밑으로 도망쳐버린 이상, 토쿠가와 군의 군법軍法 / 군사기밀軍事機密 모두가 히데요시에게 누설된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후 이에야스가 급속히 옛 타케다 군대旧武田軍의 군법을 수용하여 타케다 식 군사제도로 탈태한 것도 이 사건이 이유였다.

  그렇다면 '둘도 없는 충신' 이라고 할 만했던 카즈마사가 탈주한 건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역시 그가 도망친 시기, 즉 텐쇼 13년(1585) 11월이라는 시기가 어떠한 시대의 흐름 속에 위치하였던가, 하는 점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 이에야스와 히데요시가 싸움을 벌인 코마키ㆍ나가쿠테 전투小牧ㆍ長久手の戦い는 작년인 텐쇼 12년(1584)에 일어났다. 이 전투에선 쌍방 어느 쪽도 결정적인 대미지를 상대에게 입히지 못한 채, 강화를 맺는 형태로 결착이 난 바 있다. 그러나 역학관계의 차이는 누가 보아도 명백한 것이었다. 이에야스는 차남인 오기마루(於義丸, 훗날의 유우키 히데야스結城秀康)를 히데요시에게 양자로 보냈으나, 형식적으론 양자였을지언정 실질적으론 인질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히데요시는 이에야스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들이밀었다. "입경하라." 는 명령이다. 표면적으로는 온건하였으나, 그 이면에선 불꽃 튀기는 두 사람의 신경전이 이후 1년간 계속되었다.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와의 교섭을 벌이기 위한 사신으로서 파견되어, 몇 번이나 하마마츠 성浜松城과 오사카 성大坂城을 왔다리갔다리 한 자가 바로 이 이시카와 카즈마사였다.

  실은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한데, 이에야스의 가신이 많았다고는 해도 직접적으로 히데요시와 접촉하고 있던 건 이시카와 카즈마사 한 사람밖에 없었다, 는 사실이 카즈마사 탈주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키포인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카즈마사는 히데요시를 직접 접하면서 히데요시의 위대함을 알아버린 게 아닐까. 이에야스와의 역학관계는 명백했다. "히데요시가 천하를 잡는 건 이젠 시간문제다." 라고 판단을 내렸으리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자기주장을 하면 되었을 것이다. 탈주와 같은 비상수단을 취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

  그렇기에 이유로는 2번째가 되겠지만, 하마마츠 성에선 카즈마사의 주장에 동조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주군인 이에야스는 물론, 가신들 가운데 누구 하나도 카즈마사의 '히데요시 평가론' 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리라 추측된다. 즉 카즈마사의 '히데요시 평가론' 은 토쿠가와 가문 내에서도 고립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고립되어 있다는 것 뿐이라면 탈주하는 사태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순박하다고 할까, 외골수적이고 완고한 이에야스의 가신들이 카즈마사를 '히데요시의 세작' 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다. 토쿠가와 가문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였음에도, 동료들로부터 이와 같은 시선을 받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으리라. 언제부턴가 토쿠가와 가문을 버릴 마음이 싹튼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이긴 하나, 이에야스와의 '정신적' 인 충돌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카즈마사가 태어난 해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카즈마사는 이에야스보다 10년 정도 연상이라 추측되며, 소년시대의 이에야스를 항상 리드하는 입장에 있었으리라 본다. 아마 이에야스는 사카이 타다츠구와 이시카와 카즈마사의 진언에 따라 나아왔으리라 생각된다.

  "히데요시에게는 절대 머리를 숙이지 않겠다." 는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한 이에야스의 모습을 보고, '노신老臣' 으로서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두운 느낌을 받은 게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이유가 존재한다. 히데요시로부터의 공작 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란 흔히 일컬어지는 것처럼 "강자에게 기대는" 시대로, 훗날 무사도덕의 근간처럼 언급되게 된 "무사는 두 군주를 섬기지 않는다." 라는 개념이 없을 때였다. 이 점에선 충성심으로만 똘똘 뭉친 무리들처럼 언급되어 온 미카와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히데요시는 한편으로는 카즈마사의 역량을 평가하였고, 다른 측면에서는 철벽처럼 보이던 토쿠가와 가신단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 카즈마사 회유에 나선 것이라 생각된다. 훗날 카즈마사가 히데요시로부터 그닥 중용되지 못한 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후자 쪽의 의미가 더욱 강했으리라 볼 수 있다.

  텐쇼 13년 11월의 시점에선 이에야스보단 히데요시 쪽이 압도적으로 성장주成長株였다. 이에야스가 훗날 천하를 차지하였기에 "카즈마사는 서두르다 바보같은 짓을 했구만." 이란 식으로 볼 수도 있으나, 카즈마사가 도주했던 당시는 이에야스가 천하를 잡을 가망이 백에 하나도 없던 상황이었다.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카즈마사는 자신의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해 줄 법한 히데요시에게 기대를 걸고서 주군을 바꾼 데에 지나지 않는다. 카즈마사는 당시의 전국시대 무사들의 상식에 기반하여 행동했을 뿐으로, '불충한 자不忠者' 라든가 '배신자裏切り者' 같은 레테르를 붙이는 건 '신군神君' 사관史觀에 의한 조화라 하겠다.

           

덧글

  • 키키 2017/10/16 13:00 # 답글

    읽으면서, 카타기리 카즈모토가 떠올랐네요. 진영만 바뀌었지. 완벽히 같은 사례네요. 이에야스의 의도치 않은 복수일까요.

    그나저나 '미카와 무사'의 충심이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에야스 선대도 그렇고 충심보다는 꾀돌이의 고장같은 느낌을 늘 받습니다 ㅎㅎ

    이번에도 잘 봤습니다. 날씨 쌀쌀해지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 3인칭관찰자 2017/10/16 14:16 #

    확실히 둘은 많이 닮았습니다. 폭풍전야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인 세력에 속한 비둘기파, 온건파 중역의 비애라고 할까요... 그래도 이에야스는 카즈마사의 탈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후 자중할 줄 알았다는 점이 히데요리 모자와는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뭐 이에야스 선선대와 선대의 일생을 보더라도 미카와 무사가 언제나 '충심'으로 똘똘 뭉친 집단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에야스가 그들에게 실리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줬기 때문에 미카와 무사들도 '충심'이 생겨 단결력을 발휘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ㅎㅎ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키키님도 감기 조심하시길(__)
  • 히알포스 2017/10/17 00:19 # 답글

    이번 번역도 수고하셨습니다. 꾸벅m(__)m. 다 읽었네요.

    한국에서 대개 일본 역사의 메인 콘텐츠(!??!)라고 인식되는 센고쿠 지다이에 한해선, 저는 영 잘 읽혀지지가 않습니다. 아마 제가 관심도 부족하고 그만큼 지식도 부족하기 때문이겠지요. - 당장 이 글에서 미카와 가로들 중의 하나로 언급된 사카이 타다츠구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지금 다른 인물과 헷갈릴 뻔 했는데요. - 위의 "키키" 님 같이 한자만 보고 인물을 맞추거나, 어떤일을 했다거나, 이해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배경지식이 풍부한 분은 부럽네요. -

    그래서인지 관찰자님 글 중에서 전국시대에 조금 심도있게 들어간 이런 글은 안 읽는 경우도 많았습니다만, 오늘은 다 읽었습니다. 재미있었네요.
  • 3인칭관찰자 2017/10/17 10:57 #

    배경지식을 많이 갖고 있지 않은 분야의 글을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건 저도 요즘 절실히 느끼는지라 히알포스님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어쨌든 읽어주시는 건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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