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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군상》2차대전 당시 일본의 원폭 개발 시도 ┣ 雜誌 歷史群像



  이 글은 잡지《歷史群像》제 50호(2001년 12월호) 89쪽의, '제 2차대전 당시 일본의 원폭개발' 을 번역한 글로, 노기 케이이치野木恵一 씨가 집필하시고 스다 코우지須田幸治 씨가 일러스트를 그리신 기사《맨해튼 계획》(p.81 ~ 91)에 삽입된 역사군상 편집부의 토막글입니다. 


  2차대전 당시의 일본군은 '정신론精神論' 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간주되기 일쑤이나, 항상 그러하였던 건 아니다. 사실 쇼와 10년대 중반에 들어 국민들 사이에 '과학 붐' 이 일어나, 쇼와 16년(1941) 코노에 내각近衛內閣 아래에서【 과학기술 신체제 확립요강 】이 결정된 바 있었다.

  일본의 원자폭탄 개발은【 육군항공연구소陸軍航空硏究所 】의 소장所長이었던 야스다 타케오安田武雄 중장의 제안에 따라 시작되었다. 기술에 정통하였던 야스다 중장은, 미국 잡지에서 우라늄을 이용한 핵분열과 관련된 기사들이 급작스레 자취를 감춘 데 주목하여, 미국이 원자폭탄 개발을 시작했다는 걸 알아냈다. 미국의【 맨해튼 계획 】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군인이 원자폭탄 개발을 처음으로 제언한 것이다. 쇼와 16년(1941) 4월에 육군은【 이화학연구소理化學硏究所 】에 정식으로 원폭 개발을 의뢰, 같은 연구소의【 니시나 연구실仁科硏究室 】이 개발의 중심이 되었다.

  쇼와 17년(1942) 7월, 이번에는 해군의 기술연구소技術硏究所가【 물리간담회物理懇談會 】를 설립하여 원폭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 간담회에서 검토를 거친 결과, 원폭 이외에도 개발 필요성이 거론된 주요 신병기들 중엔 '살인광선殺人光線' 도 있었다. 해군의 원폭 개발도 니시나 연구실이 담당하게 되어, 100평 정도의 연구실에서 우라늄 235 분리연구가 개시되었다. 동시에 육군도 우라늄광 탐사를 실시하여 점령지에서 수색을 벌였다.

  그러나 대전 말기에 접어들면 본토공습이 격화되면서, 안심하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거기에다 점령지에서 수색 중이던 우라늄광도 충분한 양이 확보되지 못했다.

  이전부터 남방(南方, 역주 : 동남아시아) 자원루트가 적들에 의해 차단당하고 있던 상황에선, 아무리 유망한 우라늄광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이를 이용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남는다.

  개발체제 쪽을 살펴봐도 해군과 육군은 제각기 원폭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원폭개발에 대해 쌍방이 연락을 주고 받았다는 흔적도 없었기에, 나라가 일치단결하여 원폭개발에 임했던 미국과는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흥미로운 건 연구소의 니시나 박사(仁科博士, 요시오芳雄)가 해군에겐 "원폭개발은 불가능" 이라 말했으면서, 육군에게는 "가능하다" 고 상반되는 대답을 하였다는 점인데 그 이유는 지금도 밝혀져 있지 않다. 거기에다 맨해튼 계획에는 수천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동원된 반면, (일본에선) 니시나 연구소에 한하면 기껏해야 100명 정도의 인원으로 개발에 임하였다고 한다. 개발체제 / 인적ㆍ물적 자원 면에서만 봐도 일본의 원폭개발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덧글

  • 진냥 2017/10/14 08:29 # 답글

    ...정말이지 일치단결해서 전력을 다 해도 어려웠을 원폭개발을 '또' 육군이랑 해군이 따로따로...ㅠㅠ
    요즘 호사카 마사야스의 [쇼와 육군]을 읽고 있는데 이기지 못할 전쟁을, 이겨선 안될 전쟁을 두 번이나 이긴 결과 잘도 이런 군대가 1945년까지 숨통이 붙어있었구나 싶어 씁쓸할 따름입니다.
  • 3인칭관찰자 2017/10/14 19:23 #

    여기서도 따로 노는가 싶더군요. ;;; 군인교육을 처음 받을 때부터 유년학교와 해군병학교로 갈라져 서로 부대끼는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인가 싶기도 하지만 서로 절실히 뭉쳐야 될 때 뭉치지 못하는 걸 보면 ㅋㅋ

    《쇼와 육군》도 읽고 싶은 책입니다만 5만원 넘는 책이라는 이유로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선 들여주지 않는지라 지금은 관망만 하는 중입니다. ㅠㅠ 일본 육군은 러일전쟁 당시 만주 전역에서 러시아에게 호되게 패배하였다면 이후에 조금 정신을 차렸으려나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합니다.
  • 히알포스 2017/10/15 00:53 #

    아.....정말 여기서도 이러는 모습을 보니 같은 생각이 듭니다.....

    뭐 이들이 뻘짓할수록 한국의 광복이 가까워지는건데, 또 읽는 입장에서는 답답함만이 느껴지지요.
  • 3인칭관찰자 2017/10/15 13:33 #

    히알포스 // 이런 애들에게 잡혀서 조아리고 살았나...
    비슷한 자괴감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 도연초 2017/10/14 09:22 # 답글

    저 니시나 연구소는 원폭, 레이저뿐만 아니라 음파병기도 연구했었던 적이... 압축공기를 작은 태풍같이 만들어서 B-29를 조종불능 또는 공중분해시킨다는 아이디어였죠; 물론 개발이 되었는지는 말 안해도 뻔할듯
  • 3인칭관찰자 2017/10/14 19:35 #

    뭐 여러 가지로 손을 쓴 끝에 실용성 있는 결전병기가 하나라도 나왔다면 그들로선 대박이었겠지만...
  • 레이오트 2017/10/14 12:54 # 답글

    그러고보니 1945년 8월 초에 일본이 대한해협인가 어디선가 원폭 기폭실험을 했다는 도시전설이 최근까지 나돌더라고요.
  • 3인칭관찰자 2017/10/14 19:38 #

    뜬소문에 불과할 겁니다. 일본의 원폭개발은 지지부진하다가 1945년 들어서는 연구시설들이 미군 공습으로 대부분 파괴된 상태였는데 그 상황에서 기폭실험을 할 정도로 연구가 진전되진 못했을 겁니다.
  • 남중생 2017/10/15 00:05 #

    맥아더가 니시나 연구소의 핵융합로를 도쿄만에 수장시켰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 3인칭관찰자 2017/10/15 13:35 #

    남중생 // 그런 이야기도 있었군요.
  • 하니와 2017/10/14 21:14 # 삭제 답글

    니시나 박사라면 닐스 보어의 제자였던 그 니시나 겠죠.
  • 3인칭관찰자 2017/10/14 21:18 #

    네. 그렇습니다.
  • 히알포스 2017/10/14 23:11 #

    아....니시나 요시오가 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닐스 보어의 제자였군요.
  • 3인칭관찰자 2017/10/15 13:51 #

    히알포스 //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히알포스 2017/10/16 01:16 # 답글

    사실 역설사의 모 게임에서 일본의 기술 관련 인물로 주구장창 나오거나 언급되는 인물이지요. 니시나 박사.

    역설사 게임 덕분에 전쟁 중의 일제도 핵무기를 연구는 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만(지구 반대편의 독일에는 전후 추궁에서 "태업했다" 라고 주장했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있구요.)

    장작위키에도 꽤 예전부터 항목이 만들어지고 재미있는 내용이 실려 있었습니다. 알찬 내용 같으니 한 번 보시는 것도 좋을것같구요. 위키에서는 [일본제원폭의 진실] 이라는 책도 언급되어있군요.

    니고연구 : https://namu.wiki/w/%EB%8B%88%EA%B3%A0%EC%97%B0%EA%B5%AC
  • 3인칭관찰자 2017/10/15 13:39 #

    남간에도 항목이 있었군요. 발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히알포스 2017/10/16 01:16 #

    지금 보니 글 주소를 복붙하기만 했고 하이퍼링크가 아니네요.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관찰자님도 나무위키를 남간위키라고 하시네요.....뜻밖인데요.
  • 3인칭관찰자 2017/10/16 14:01 #

    뭐 하이퍼링크가 아니라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 링크해주신 게 중요하지.

    남간은 그냥 사람들이 나무위키보고 남간 남간 하길래 그냥 따라서 쓰고 있는데 단어에 뭔가 안 좋은 의미라도 있는 건가요?
  • 히알포스 2017/10/16 22:09 #

    아, 고맙습니다.
    이거, 이상하게 이글루스 덧글에는 하이퍼링크가 안 달리더군요. 관찰자님은 어떻게 하이퍼링크를 연결하시나요?

    그리고, "남간" 이라는 단어 말이예요?? 사실 저도 정확한 의미는 모릅니다.(아니 이럴 수가!!) 저 역시 어감상 뭔가 안좋은 의미라는 것만을 짐작하고 사용하는 겁니다.

    저는 나무위키를 칭할때 장작위키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더라구요. 재밌거든요. 나무<->장작.
  • 3인칭관찰자 2017/10/17 00:12 #

    제 기억에 맛폰보단 컴퓨터 댓글로 사이트 링크 걸 때 하이퍼링크가 잘 걸렸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 착각일수도 있겠지만은.

    나무위키에서 남간으로 뒤지니 옛날 한글을 이용한 나무위키의 '멸칭'이라 적혀있던데.... 뭐 어쩌면 매일같이 항목서술 둘러싸고 전쟁이 벌어지는 동네이니 불판 달구는 장작이 가득하다는 의미에서 장작위키라 불러도 제법 어울릴 것 같기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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