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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 세키가하라》'부코야와武功夜話' 로 보는 미츠나리 (完) ┗ 微妙な話たち



  이 글은 신인물문고新人物文庫 20《이시다 미츠나리 야망! 세키가하라石田三成 野望! 關ケ原에 수록된 글들 중 하나(p. 75 ~ 91)로 모리모토 시게루(森本繁, 1926~) 님께서 집필하신 <부코야와로 보는 이시다 미츠나리>란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글이 주로 참고한《부코야와武功夜話》란 문서는, 위 책이 처음 출판된 30년 전과는 달리 지금 일본 내에서 위서인지 아닌지 여부를 놓고 연구자 간의 찬반양론이 극심히 갈리는 사료가 되어버린지라, 일단 '미묘한 이야기' 카테고리에 포함시켰습니다.


  칸파쿠 히데츠구 사건関白秀次事件

  마에노 가문에 전해지는 문서前野家文書 중에《부코야와슈우이武功夜話拾遺》<타이코 전하(역주 : 토요토미 히데요시)와 칸파쿠 (토요토미) 히데츠구 공 사이에 틈이 생긴 사건>에서 미츠나리에 대해【 타이코 전하의 측근으로 고슈 출신자江州衆인 이시다 지부쇼유 사키치石田治部小輔佐吉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 사키치라는 자는 고슈(江州, 오우미近江 지방) 이시다고石田鄕 사람이다. 어린 시절, 즉 타이코 전하가 아직 낮은 신분이셨을 때 등용되어 입신을 거듭해, 쟁쟁한 후다이들을 제치고 중히 쓰이게 되었다. 오사카 성大坂城에 있던 타이코 전하의 세자 히로이마루기미(拾丸君, 역주 : 훗날의 토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의 후견역이 되면서 요도노미카타 님(淀の御方樣, 역주 : 요도도노淀殿. 챠챠茶茶)에게 아첨하기 시작했다. 타이코 전하께서 친아들인 히로이마루기미를 총애하시는 걸 보고 고슈 인사들과 합심하여 칸파쿠 히데츠구를 제거하기로 모의하고 온갖 소행들을 꾸며내어 아뢰었다. 】고 평하고 있다.

  그리고 타이코 히데요시와 칸파쿠 히데츠구의 대립에 대해선, 이시다 미츠나리를 필두로 삼은 고슈 출신자들이 히데츠구에 대한 저잣거리의 악의적인 항설巷說에 편승하여【 비열하게도 요도노미카타 님을 의식하여 욕심이 생기고, 스스로의 입신을 원하여 후시미에 있는 칸파쿠 히데츠구 공의 정도御政道가 온전하지 않다는 뜻을 말씀드렸기 때문 】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부코야와슈우이武功夜話拾遺》<치요죠카키토메千代女書留> 라고도 불리는, 주인공 마에노 나가야스前野長康로부터 3대가 지난 후에 그 증손녀였던 치요죠가 아마 칸에이(1624~1644) 말년기 이후, 미츠나리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확정되어버린 때에 집필하여 정리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만큼, 당시의 진상을 전해주는 글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칸파쿠 히데츠구 쪽은 차치하더라도, 타지마노카미 나가야스조차 미츠나리를 위시한 간신배佞臣輩들의 참언을 믿고 히데요시가 모살해버렸다고 기록하는 건, 곡필曲筆하였다는 비방을 면할 수 없으리라.

  이 점에서《부코야와》본문 쪽은 나가야스 자신의 기록인《고소우키五宗記》와, 그의 가신인 마에노 세이스케前野淸助로부터 청취한 기록이 그대로 게재되어 있어, 당시의 진상을 알려준다.

  우선 분로쿠 3년(1594) 시모츠키(霜月, 음력 11월) 25일자《고소우키》에 따르면, 나가야스는 5월 이래로 (토요토미) 직할지 조사를 하기 위해 오랫동안 남방의 사츠마 지방으로 출장가 있던 미츠나리와 친근하게 면담하며, 미츠나리로부터 "칸파쿠 전하(히데츠구)의 건은 부재중이었던 터라 힘을 쓰지 못한 게 정말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라고 위로하는 말을 들은 바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토요토미 가문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밤새도록 잠도 자지 않고 이야기하며 】- 미츠나리와 나가야스는 고슈 시대 이래 특별히 친밀한 관계였던지라 -【 칸파쿠 전하의 역량을 짐작하며 미간을 찡그리고 팔짱을 꼬고 앉아서는 토요토미 가문의 존망을 걱정했다. 】고 한다. 그리고 이 때 나가야스는 미츠나리에게,

  "그러고 보면 요도도노의 측근들은 칸파쿠 전하의 좋지 못한 행실들을 일일이 고해 바치며, 요도도노를 국모로 받들면서 제장들의 속마음 같은 건 신경쓰지도 않고, 타이코 전하가 히로이기미에게 매어 그 총애가 한량없는 것을 이용해 무분별하게 (히로이마루를) 천하의 주인으로 삼기 위해 타이코 전하의 마음을 미혹시키고 분노를 일으키려 하는데, 무익할 뿐 아니라 어떤 득도 없는 일입니다." 고 말하고 있으므로, 미츠나리는 그러한 측근들의 일원이 아니라는 말이 되겠다.

  혜안을 가진 미츠나리로서는 히데츠구와 관련된 문제도 문제이지만, 오히려 이 문제에 집착하게 된 히데요시의 마음이 약해져 에도 다이나곤(江戸大納言,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과 카가 다이나곤(加賀大納言, 마에다 토시이에前田利家)의 비위를 맞추고 있는 현상이 더욱 걱정되는 바였다. 이 두 사람은 히데요시에게 "교묘히 달라붙어 코우라이 전역高麗陣에서 조선으로 건너가지도 않았으며, 군역도 적게 냈고, 유복하게 지낸다는 소문도 자자하였기" 떄문이다.

  그렇기에 미츠나리는 이 칸파쿠 히데츠구 사건 당시 극력 마에노 나가야스를 옹호하려 했다. 이윽고 사건이 빼도박도 못할 단계에 접어들어, 히데츠구의 후견인으로서 변명을 하기 위해 마에노 타지마노카미와 키무라 히타치노스케木村常陸介가 후시미 회의장으로 출두하였을 때도, 미츠나리는 타지마노카미 나가야스를 별실로 특별히 호출하여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 있다.

  이 때 규문의 대상이 된 칸파쿠 히데츠구의 난행이란 건 여자문제였다고도 하나, 사실은 히데츠구가 타이코 히데요시에게 모반을 일으키려 했다는 혐의였다. 이는 모리 테루모토毛利輝元가 히데요시를 직접 배알하여 "칸파쿠 전하에게 모반의 싹이 보입니다. 제가 쥬라쿠聚樂에서 그 분을 알현했을 때, 연판장을 내미시며 칸파쿠 전하에게 충절을 다하라는 내용에 도장을 찍을 것을 재촉받았습니다." 라고 아뢰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다, 이 연판장에는 나가야스의 적자嫡子인 (마에노) 이즈모노카미 카게사다出雲守景定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고 했다. 타이코 히데요시는 열화같이 화를 내어, 이 일이 칸파쿠 히데츠구 주종이 모살당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세이스케오보에가키淸助覺書> 는 기록하고 있다.

  미츠나리는 나가야스에게 "아무쪼록 성급해하지 마시기를. 타이코 전하께는 좋게좋게 이야기드리겠습니다." 라고 통고했고, 히데츠구를 위시한 사건 관계자들이 체포된 이후에도 나가야스의 사위인 마에노 효고 타다야스前野兵庫忠康에게 "본인이 타이코 전하께 말씀을 올리자 타이코 전하께서는 '타지마노카미의 행동거지는 대단히 기특하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윽고 선처의 기별이 갈 터이니 적당히 있어라.' 고 하셨던 만큼 후일에 배알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나가야스에게 전해주도록 명령하고 있다.

  이 떄 미츠나리는 마에노 부자를 감싸기 위해 극력 변호를 하려 했으나 "직무상 어쩔 수 없는 일인지라" 라며 탄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미츠나리의 단순 제스처가 아니었다는 건, 마에노 씨가 녹을 몰수당하고 가문이 단절된 후 나가야스의 사위인 효고 타다야스가 많은 녹(5천 석)을 받으며 미츠나리 가문의 사무라이타이쇼侍大將로 등용된 것을 봐도 실증될 수 있다.

  참고로 칸파쿠 히데츠구의 후견인 입장에 있던 타지마노카미 나가야스가 자살한 건 <세이스케오보에가키>에 따르면, "타지마노카미 님에 대해선 특별한 책망은 없었으나, 이즈모노카미(역주 : 나가야스의 적자 카게사다)가 자결했다는 걸 아신 후 로쿠칸사六漢のお寺에서 혼자 마음을 먹고 자해하셨다." 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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