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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세상》교육의 의미 (3) 인사밸



  본 글은 1975년 3월, 일본출판사 츄오코론샤中央公論社에서 신서본新書本으로 간행한 故 쿄고쿠 쥰이치 교수님과 영화평론가 사토 타다오 님{이 분의 책 중 한국어로 번역된 저서로는《소년병, 평화의 길을 열다》,《한국영화와 임권택》(절판),《일본영화 이야기》(절판)등이 있습니다.} 의 대담집인《학교와 세상 - 진학문명을 뛰어넘는 것(中公新書 388) 제 1장 <교육의 의미> 에 수록된【 시스템적 재생산과 교육 】부분 중반부(p. 11 ~ 14)를 번역한 것입니다. 일단은 몇 년 전에 미리 번역해 놓았던 (그리고 헌책이었기 때문인지 책심도 박살난....) 1장만 포스트로 올릴 예정입니다.


  쿄고쿠 쥰이치(京極純一, 1924 ~ 2016)

  1924년(타이쇼 13년) 쿄토 출생. 1947년에 토쿄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 현재(1975년) 토쿄대학 법학부 교수. 정치과정론 전공.

  사토 타다오(佐藤忠男, 1930~)

  1930년(쇼와 5년) 니가타 시 출생. 1957~1962년 사이에《영화평론》,《사상의 과학》등의 편집에 종사한 후, 프리랜서로서 영화 / 교육 / 대중문화 분야 평론을 해 왔다. 1973년부터 개인잡지인《영화사 연구》를 간행중.


  사토 : 방금 하신 말씀을 듣고 그렇지. 하면서 수긍하게 되는 게, 소비에트 연방의 영화대학에는 영화비평가를 양성하는 코스가 존재합니다. 물론 소련 뿐만 아니라 세계의 주된 영화산업 국가들이 대체로 영화대학을 지니고 있으며 영화의 역사를 가르치는 코스가 존재합니다만, 소련 같은 경우 그곳을 졸업하는 자체가 비평가가 되는 중요한 과정을 형성합니다. 그 점이 저에겐 기이하게 다가왔지요.

  영화비평가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을 생각해 보면, 일본에도 영화잡지 등을 통해 누군가가 젊은 인재들을 비평가로 육성하는 코스가 분명 존재하긴 합니다. 선배가 집필한 저작이 전통화되어 물려지는 경우야 존재하는데 그 방식은 비체계적이고 조잡한 편으로, 소련은 영화비평가가 되려면 영화의 역사를 구성하는 고전적인 명작들을 반드시 관람해야만 하는 식으로 철저히 시스템화되어 있는데 비해, 일본에는 그러한 시스템이 전혀 없습니다.

  어느 인물, 예를 들자면 정치에 몰두한 청년政治靑年이 특정 영화에 대해 정치적인 발언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발언이 유니크한 것이라면 그 청년은 영화비평가가 될 수가 있어요. 그리고 신문사의 영화담당 기자라도 어느 정도의 인텔리적 문화소양을 갖고 있으면 영화비평을 기고하는 지면에 적당히 기용해도 꽤 그럴싸해 하죠. 영화비평가 육성이란 점에서 보면 일본은 개략적rough이고, 소련 쪽은 상당히 체계적systematic으로 조직되어 있습니다.

  쌍방이 일장일단을 갖고 있지만, 소련 쪽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역사를 철저히 교육시킨다는 건 장점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영화에 대해 일정한 기본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평론가가 될 수 있다면 이제는 참신한 의외성을 가진 평론이 나올 여지가 사라집니다. 영화문화라는 건 본래 시스템적으로 틀에 가두지 않고 유연함을 허용함으로써 그 장점이 발휘되는 것으로, 비교적 특이한 무언가가 진입하기 쉽다는 점에서 존재의의를 가진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문화가 있는 곳에 재생산 시스템이 있다는 거대한 원칙에 정말로 동의하게 되는데, 그 시스템들 가운데서도 개략적이라서 좋은 부분과 엄밀해서 좋은 부분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교육은 딱히 학교교육에 한한 것이 아니지만, 문부성에서 생각하는 교육이라는 건 명백히 문화적 전통을 편협하고 딱딱하게 규정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자면 천황제론天皇制論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으로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문부성의 높으신 분과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을 때, 학교의 역사교육에서 (고대 일본) 신화神話를 왜 가르쳐야만 하는가 하고 물어보자 "헌법에 천황제가 규정되어 있는 이상, 천황제의 근거도 확실히 가르치는 것이 문부성으로서 헌법상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고 했지요. 이는 문화를 재생산하는 시스템으로서는 상당히 완고한 것입니다. 문화의 재생산을 위해서 이를 어느만큼 개략적으로 취급하고, 어느만큼 엄격하게 취급해야 할지는 (저자 본인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말이죠.

  쿄고쿠 : 문화적 문제를 정치적 시스템으로 보자면, 그 정치적 시스템을 재생산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정치 측에서 평가한 문화요소에 집중적으로 투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소련 같은 경우 영화는 국민의 교육과 통합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그만한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뛰어난 영화작가 / 기술자들의 재생산 시스템에만 그치지 않고 평론가들도 최소한도의 질적 소양을 담보해 주는 재생산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앟으면 정치 시스템 쪽이 곤란해질 겁니다. 그렇기에 영화비평과라는 학과를 만들어서 영화비평가들을 재생산하는 데 열을 올리는 거겠죠.

  일본의 재생산 시스템에서 영화가 '가장 중요한 문화 중 하나' 로서 평가받은 적은 최소한 지금까진 없었습니다. '영화는 오락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적으로 간주하고, 정치하는 쪽에선 방치를 해 온 겁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일본 내의 수많은 예술 분야들이 반정치적인 자발성을 지금까지 지켜올 수 있었습니다. 예술의 경우, 국가가 열심히 손을 대면 댈수록 예술에서의 자발적인 요소, 사토 씨께서 '의외성' 이라고 말씀하셨던 면모가 깎여나가기 마련입니다.

  어떤 나라이든지 정치 시스템이 구동하면, 모든 생활 속 시스템 속에서 어느 요소가 중요하고, 어느 요소가 부차적인지를 정치 시스템이 취사선택을 하여 우선순번을 매깁니다. 프랑스 같으면, 아카데미에서 만드는 프랑스어 사전에 열의를 집중하겠죠. 언어라는 문화적 요소를 규제한다는 것은, 정치적 시스템 속에서 언어가 대단히 높은 지위를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 언어는 내버려두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기에 정부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지요. 반대로 말하자면, 정부가 열성을 다해 공들이는 것은 천연적이고 자연적인 것 이상의 '인공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세계' 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사토 씨의 말씀에서 예를 들자면, 천황제는 메이지 유신 이후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삼기 위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근대적 상징이죠. "일본은 하나의 나라이며, 그 정점에는 에도의 쇼군님公方さま이나 지방의 영주님殿さま과는 또 다른 천자님天子さま이 계신다." 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정치 시스템이 존립할 수가 없었어요. 그헣기에 정치체제의 기본원리를 학교교육을 통해 사람들에게 주입시켰고, 그러한 인공적 노력의 계보가 도중에 이러저러한 사정에 따라 모습을 바꾸면서 오늘까지 이어져내려온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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