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문예춘추 Special》일본의 크리스트교 세력이 약한 이유 (下) 세계밸



  이 글은 일본의 거대출판사인 분게이슌쥬文芸春秋에서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삼아 3달에 1번씩 계절별로 출간하는 잡지인《文芸春秋 Special》의 2016년 겨울호 p.62 ~ 67, 시마다 히로미島田裕巳 교수님께서 집필하신《크리스트 교가 일본에 널리 퍼지지 못한 이유를 번역한 글입니다. 집필된지 1년이 넘어가는 글이라는 점을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마다 히로미島田裕巳>

  1953년 토쿄 도에서 출생. 토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소 박사과정 수료. 현 일본여자대학 교수. 토쿄대학 첨단과학기술 연구센터 특임연구원 등의 지위를 역임. 주된 저서로는《전후 일본의 종교사》(筑摩選書) /《크리스트교 입문》(扶桑社新書)등이 있다.


  미션 스쿨은 많은데

  흔히, 일본에 크리스트교가 침투해 있다는 사례로서 거론되는 것이 수많은 미션 스쿨들의 존재이다.

  소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종교를 배경삼은 학교는 전국에 849곳이 있는데, 이들 중 565개 학교가 크리스트교 계열로 전체 비율로 따지면 66.5%에 달한다. 즉 3분의 2는 크리스트교 계열 학교란 셈이다.

  거기에다 미션 스쿨들 중에는 유력한 진학교進学校가 적지 않다. 카나가와의 에이코카쿠엔栄光学園이라든가 세이코카쿠인聖光学院, 카고시마鹿児島의 라 살, 히로시마広島의 히로시마카쿠인広島学院 등이 대표적이다.(타치바나키 토시아키橘木俊詔《종교와 학교》(카와데북스河出ブックス))
    
  미션 스쿨, 특히 카톨릭계 학교의 경우에는 꽤나 열심히 종교교육이 행해지며, 학생이나 생도에게 예배 참가를 의무로 요구하는 곳도 있다.

  그렇기에 특히 사춘기 생도들이 다니는 중학교 / 고등학교 단계에 종교적 감수성 면에서 영향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신자가 아니었던 생도가 졸업 후에 세례를 받고 크리스트교 신도가 되는 경우는 그다지 없다.

  미션 스쿨은 메이지 시대로 접어들어 금교령이 풀린 후 차례차례 생겨났는데, 교회나 수도회 등에서는 이들을 늘려 나가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는 당연히 포교활동의 일환이었다. 아니, (포교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대들보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그 전략은 절반은 성공했다. 미션 스쿨은 오늘날까지 명문교로 남아 일본 교육계에서 일대 세력을 구축하였으니까.

  그러나 "포교활동에 성공했는가?" 라고 묻는다면,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매년 50만 명의 졸업생들이 미션 스쿨을 졸업하며, 고등학교 졸업생만 해도 15만 명을 상회하지만, 신자 수 증가로는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점도 역시 일본 사회와 크리스트교의 관계 사이에 얽힌 커다란 수수께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미션 스쿨을 교육기관으로서 이용하긴 해도 신앙심을 심어주려는 기능 쪽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도록 일본 사회가 방해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 사회는) 어떻게 이를 방해하고 있는가?

  이를 설명하는 건 상당히 난해한데, (우선) 미션 스쿨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는 크리스트교 신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원래부터 신자수가 적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미션 스쿨 졸업생은 가족이나 친족들 가운데 크리스트교 신자를 발견하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미션 스쿨에 아이들을 보내는 집안은 가족과 친족들의 유대가 강하고, 관혼상제를 접할 기회도 많기 마련이다.

  미션 스쿨 졸업생은 여성들이 많은데, 그녀들이 결혼하는 경우에도 시댁은 경제적 여유가 있고 관혼상제에 열성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신토神道나 불교仏教와 많이 연관되어 있어서 크리스트교를 신앙하고 있을 경우 이 점이 충돌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크리스트교에 공감을 보이면서도 세례까지는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졸업생들이 다수를 점하게 되면서 신자가 늘지 않는데 기여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신흥종교들의 신자들을 보면 요즘은 그 부모가 신흥종교 신자인 경우가 많다. 신흥종교가 포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던 시기에 새로운 신자들이 줄줄이 유입되었다가 안정화를 거쳐 정체되기에 이르면, 신앙이 2대, 3대, 식으로 대를 물려 전해지는 경향이 농후해진다. 창가학회 같은 경우도 과거엔 강권적인 압박까지 하면서 회원을 늘려나갔으나, 요즘은 회원들의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로 신앙이 계승되는 경우가 태반을 점하고 있다.

  크리스트교가 일본에서 신자를 늘려나가기 위해서는 가정 전체를 포섭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 즉 '창가 가정創価家庭' 과 마찬가지로 '크리스트교 가정キリスト教家庭' 을 만들어 낼 필요가 존재하는 것이다.

  창가학회의 경우 회원으로 가입하면 니치렌日蓮이 그렸다는 만다라曼陀羅를 베낀 사본이 주어지고, 이를 불단함에 모신 후 그 앞에서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経" 을 외우는 과제를 매일매일 실천하게 된다. 그렇기에 회원수도 개인 단위가 아니라 세대 단위로 집계하고 있다.     
 
  메이지 시대 이래, 크리스트교에 입신하려는 경우 그들 중 다수는 젊은 세대로, 자신이 신앙을 가진다고 해도 이를 가족에게까지 전도시킨다는 게 불가능했었다. 젊은 세대의 경우 관혼상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것도 아니므로, 개인의 신앙을 관철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정을 가지고 관혼상제와 연을 맺게 되면, 크리스트교 신앙과는 충돌하게 된다. 가족 전체가 크리스트교 신자가 아닌 한 그런 상황을 피할 수가 없다. 일본인의 종교가 '집안' 을 단위로 삼는다는 점이 크리스트교의 확대를 방해하는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는 면이 있다.


  데우스(デウス, 주님)는 다이니치大日

  물론 이러한 면은 비단 일본뿐만이 아닌 다른 나라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유럽의 수많은 사람들이 크리스트교 신도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크리스트교 신도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이슬람 세계 쪽도 마찬가지이다. 사회가 크게 변하기라도 하지 않는 한 신앙은 가정을 통해, 내지는 지역을 통해서 이어져 가게 된다.

  새로운 종교가 전파될 때에는 아무리 점点을 늘려봤자 그 세력은 확대되지 못한다. 개인을 단위로 삼아서는 쉽사리 퍼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선線을 통하여 면面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확대현상이 일어난다. 종전 이후의 창가학회는 그야말로 가정과 지역을 통째로 회원으로 삼았기 때문에 면面으로서 확대되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크리스트교가 면으로서 확대되었던 건, 최초로 이 종교가 전파되었던 키리시탄キリシタン의 시대(역주 : 일본 전국시대)에 한정된다. 이 시대엔 지역에 따라선 신자가 꽤나 증가한 곳도 존재했다고 한다. 키리시탄 다이묘キリシタン大名들이 줄을 이어 탄생했던 것도 그만큼 종교가 널리 침투해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마 그러한 이유 때문에 크리스트교는 금교禁教가 되어, 선교사는 추방당하고 신자들은 엄혹한 탄압을 받았다. 신앙을 감추면서 이를 지켜나가려고 했던 키리시탄들도 있었으나, 그런 세월이 너무나도 길었던 것도 한몫하여 신앙은 변용되고, 일본의 토착신앙과 습합해버리고 말았다.

  일본에서 크리스트교를 가장 먼저 전파한 프란시스코 자비에르부터가, 당초에 신神이신 데우스(デウス, 역주 : 주님, 신神)를 다이니치(大日, 역주 : 불교에서 말하는 대일여래大日如來)라고 부르는 등 불교의 일파처럼 하여 포교활동을 전개했다. 그뿐만 아니라 크리스트교 신앙을 설명하는 단어를 번역하기 위해선 불교용어를 활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불교 승려들에게 환영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의 일본사회에서는 불교신앙이 서민층에까지 침투하였기에 그 장벽은 두꺼웠다고 할 수 있었다. 번역 과정에서 불교용어가 사용됨에 따라 크리스트교의 독자성을 쉽사리 이해시킬 수는 없었다. 


  독자적인 종교세계

  동남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유일한 크리스트교 국가가 필리핀이다. 크리스트교가 전파된 건 일본과 마찬가지인 16세기로, 지금도 크리스트교 신자 비율이 (전 인구의) 9할을 점하며, 그들 중 태반은 카톨릭 신자들이다.

  같은 시기에 전파되었으면서도 일본과 필리핀이 대조적인 결과를 거둔 건, 필리핀에는 이슬람교가 전파되기는 했으나 인도의 힌두교라든가 중국을 경유하여 전파되는 불교 등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점이 영향을 끼쳤다. 일본에서는 불교와 신토가 크리스트교를 저지하는 장벽으로 기능했는데, 필리핀에선 이에 해당하는 장벽이 없었다.

  일본에는 토착적인 신토가 존재했고, 6세기에는 불교가 전파되어 조정과 귀족계층에 수용되었다. 불교는 신토를 배제하는 일 없이 이를 신앙세계 속에 편입시켜, 중세에 이르러 신불습합神仏習合 신앙을 확립하였다. 여기에는 헤이안 시대 말기에 득세한 무사 세력武家도 편입되었고, 이윽고 서민층에까지 퍼지게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크리스트교가 확산될 여지는 없었다. 자비에르란 인물에 대해 일본측의 자료가 일절 남아있지 않은 것을 봐도 일본 측에서는 그에게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게 아닐까.

  키리시탄들을 금교시킨 건 시마바라의 난島原の乱 등의 저항을 낳았으나 결국 이는 진압당하였다. 그리고 메이지 시대에 금교가 해제되었을 때는 새로운 일본국가는 방향을 돌려, 신토를 전면에 내세워서 국민적 도덕으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필연적으로 크리스트교는 국가의 방침에 찬동하지 않는 일부 지식계층에게서 활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용을 당하며, 신앙으로서의 크리스트교는 실속을 잃고 말았다.

  당연히, 지금은 크리스트교를 능가하려는 기세를 보이는 이슬람교가 일본에 침투할 여지도 없다고 본다.(장래에 이민 증가 여부에 따라선 상황은 변할 수도 있겠으나) 일본은 한번도 일신교에 석권당한 적이 없는 국가로서 앞으로도 독자적인 종교세계를 유지해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덧글

  • 존다리안 2017/05/31 21:36 # 답글

    그런 면에서 국내의 기독교 교세의 성공적 정착은 놀라운 일입니다.
  • 3인칭관찰자 2017/06/01 19:55 #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 엄청난 교세 성장을 이루었으니 정말 성공적인 케이스라 하겠습니다.
  • 리카아메 2017/05/31 21:36 # 답글

    제가 지금 일본 기독교계열 기숙사에 살고있는데 흥미로운 글입니다. 원문을 기숙사 친구들에게 좀 소개해 봐야겠네요
  • 3인칭관찰자 2017/06/01 20:00 #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숙사 친구분들과 의견 나누시는 화두가 된다면 번역해서 올린 저도 기쁠 따름입니다.
  • 나인테일 2017/05/31 22:30 # 답글

    한국에서 기독교가 자리잡은건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선진문물을 전달하는 보따리상 역할에 사회복지의 상당부분을 떠맡는 기여를 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기반 위에서 출세한 사람들이 다시 청교도주의를 설파하면서 정재계도 장악했고 수급자에서부터 김영삼, 이명박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심리적 유대관계를 만들었죠.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 정부로부터 소외된 부분이 있었고 이 부분을 민간 기독교 조직이 포섭할 수 있었지만 일본 내지는 정부의 주도권이 확고부동했기 때문에 서양인과 결탁한 기독교 조직이 별로 역할을 얻지 못해 지식인들의 형이상학으로만 흘러간 것이 패착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 無碍子 2017/06/01 09:10 #

    말씀은 개항기이후의 상화은 설명됩니다만 그이전 가혹한 박해속에서도 천주교가 확산되것은 설명이 어렵습니다. 개국이전에 마카오로 유학생까지보낸거, 이런게 다른나라에는 없었다고봅니다.
  • 3인칭관찰자 2017/06/01 20:20 #

    나인테일 // 말씀대로 한국이라는 나라가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해봤기에 그 부분을 크리스트교가 포용하면서 교세를 떨치게 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근대화와 식민통치를 거치면서 원래는 크리스트교를 저지할 장벽이 될 수 있었던 전근대적인 가치의 힘이
    크게 약화되었던 것도 원인들 중 하나가 되려나요.
  • 3인칭관찰자 2017/06/01 20:32 #

    무애자 // 말씀 듣고 보니 몇달 전에 읽었던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만나다의 내용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저자분인 김시덕 교수님께서 조선의 초기, 박해기 천주교 신앙의 양태와 역사를 대단히 높게 평가하셨던 기억이.... ^^;;
  • 레이오트 2017/06/01 11:10 # 답글

    이렇게 보면 한국 크리스트교, 특히 가톨릭 역사는 진짜 문화 및 종교승리죠.
  • 3인칭관찰자 2017/06/01 20:32 #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1465
421
312532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