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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 혼노사의 변》'부코야와武功夜話' 로 보는 아케치 (完) ┗ 微妙な話たち



  이 글은 신인물문고新人物文庫 41《아케치 미츠히데 야망! 혼노사의 변》에 수록된 글들 중 하나(p. 95 ~ 112)로 모리모토 시게루(森本繁, 1926~) 씨께서 집필하신《부코야와로 보는 아케치 미츠히데》란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글이 주로 참고한《부코야와武功夜話》란 문서는, 위 책이 처음 출판된 30년 전과는 달리 지금 일본 내에서 위서인지 아닌지 여부를 놓고 연구자 간의 찬반양론이 극심히 갈리는 사료가 되어버린지라, 일단 '미묘한 이야기' 카테고리에 포함시켰습니다.


  사료가 이야기해주는 인물평

《부코야와》에는 마에노 쇼우에몬(前野勝右衛門, 역주 : 나가야스長康)의 가신이었던 마에노 세이스케 요시아키(前野淸助義詮, 쇼우에몬의 삼촌인 요시타카義高의 차남으로 일관되게 쇼우에몬을 따라 종군했다. 행정관奉行 / 비서物書 역 등을 역임하다가 쇼우에몬이 실각한 후에 출가하여 죠엔常円이라는 호를 썼다.)의 오보에가키覺書로 추정되는 <아케치 휴우가노카미 미츠히데에 대해> 란 제목의, 미츠히데를 다룬 인물평이 게재되어 있으므로, 우선 이를 원문 그대로 확인하도록 하자.


【 하시바 코이치로羽柴小一郞 님께서 탄바에서 귀진하신 후 탄바 후쿠치 산福知山에 잔류한 건 마에노 쇼우에몬노죠였다. 나이후 공(內府公, 오다 노부나가)께서는 탄바를 코레토 휴우가노카미惟任日向守 님께 주기로 하셨기에 이미 평정이 완료된 아마다 군天田郡 / 히카미 군氷上郡에 있는 다섯 개의 성을 무사히 (미츠히데에게) 양도하였다. 

  코레토 휴우가노카미. 이 사람은 아케치 쥬베이明智十兵衛라 불리던, 미노 겐지美濃源氏 토키 가문의 일족이다. 노부나가 공이 지난 에이로쿠 시절에 미노 지방의 영주 사이토 타츠오키斎藤龍興를 퇴치하시고 이나바 산稻葉山에 입성하시던 때에, 쿠보 님(公方樣,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을 수행하여 이나바 산으로 찾아온 걸 계기로 노부나가 공 휘하에 들어갔다. 그 이후 고슈(江州, 오우미近江 지방)에서의 전역에 종군하며 충근忠勤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무공을 거둔 적이 한없이 많았다. 고금에 드문 기량인이라 일컬을 만 했다. 노부나가 공께서도 각별하게 신임하시어, 이에 탄바 지방의 영주 하타노波多野를 퇴치하는 대장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나가오카 효부다유(長岡兵部大輔, 후지타카藤孝) 님 / 그 적자로 휴우가노카미 님의 사위이신 요이치로(与一郎, 타다오키忠興) 님도 이 전역에 함께하셨다.

  나가오카 효부다유 님 / 마에쇼 님(前將殿, 역주 : 마에노 쇼우에몬의 약자) / 아케치 휴우가노카미 님은 이전부터 서로 친밀하게 지내던 사이로, 한번 떨어진 이래 각자의 전역에 참가하였기에 지난 축년(丑年, 텐쇼 5년=1577) 이래 오랜만에 재회하는 것이었다.

 마에쇼 님은 아케치 쥬베이 님꼐서 영락해 있으셨던 시기부터 친교를 맺었는데, 세월이 무심히 흘러 10년이 지나자 노부나가 공의 휘하에서 재능 있는 무장으로 영달하시어, 치쿠젠 님(筑前殿, 역주 : 하시바 히데요시)과 쌍벽을 이루는 공신이 되셨도다. 그럼에도 훗날 주군이신 노부나가 공이 계신 쿄토 혼노사本能寺를 야습하여 처단한 역의逆意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야말로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알기 힘든 것이다. 후쿠치 산을 접수하였을 때, 옛 정을 잊지 않고 후하게 대접해주셨다고 한다. 】


  미츠히데의 인물평에 대해 요점을 몇 개조로 적어 보자면,

  (1) 미츠히데는 미노 겐지 토키 씨의 일가이다.
  (2) 미츠히데는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따라 이나바 산성으로 와서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
  (3) 노부나가의 고슈江州 평정에 종군한 이래 한없이 많은 무공을 세웠고, 후에는 탄바 정복의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호소카와 부자도 그와 함께했다.
  (4) 호소카와 / 마에노 / 아케치 세 무장은 이전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5) 마에노 쇼우에몬은 미츠히데가 아직 로닌이었을 때부터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관계였다.
  (6) 미츠히데는 히데요시와 함께 노부나가의 공신들 중 쌍벽이었으나, 혼노사에 있던 노부나가를 야습하여 죽였기에, 이제는 역의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7) 그래도 어찌 됐든, 탄바 후쿠치 산성을 접수할 때에는 옛 인연을 잊지 않고 정중한 대접을 해 주었다.

  대체로 통설을 형성하는 여러 사료들과 합치하는 인물평인데, 새로이 밝혀진 사실로 두 가지가 있다.

  (2)번, 미츠히데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수행하여 미노 지방으로 가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는 것과, (5)번, 마에노 쇼우에몬이 미츠히데가 로닌이었을 때부터 오래도록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는 점이다.

  이들 가운데 미츠히데가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따라 미노 지방 이나바 산성으로 찾아와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다는 점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미츠히데가 요시아키의 보증서를 받아 기후로 가 노부나가에게 높은 녹봉으로 등용되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니만큼, 이《부코야와》의 기술은 통설을 뒷받침해 주는 사료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마에노 쇼우에몬이 미츠히데가 영락해 있던 시대부터 친구로 지냈다는 건, 이를 확인할 수단은 없으나 쇼우에몬이 호소카와 후지타카와 친밀한 관계였고, 쇼우에몬 나가야스의 장남 코지로 카게사다小次郞景定가 후지타카의 아들 타다오키의 딸을 아내로 삼았던 점을 고려한다면, 완전히 사실무근으로 보기는 힘들다. 호소카와 타다오키 딸의 어머니는 유명한 가라샤 부인ガラシャ婦人 타마로, 타마의 아버지가 바로 미츠히데이기 때문이다. 이후 발발한 혼노사의 변을 둘러싸고 세 사람(미츠히데 / 후지타카 / 나가야스)이 정보를 주고 받은 방법이라든가, 그 후의 대응 방식을 고려해본다면 이러한 사실의 개연성은 극도로 높아진다 하겠다.


  혼노사의 변이 발발하다

  텐쇼 10년(1582) 6월 2일 새벽에 일어난 혼노사의 변本能寺の変에 관한 정보를 하시바 진영 내에서 가장 먼저 입수한 것이 바로 마에노 쇼우에몬 나가야스였다. 그 시각은 6월 2일 해시 사반(亥時四半, 오후 11시)으로, 정보를 제공해 준 자는 탄고丹後 지방에 있던 호소카와 효부다유 후지타카였다.

  호소카와 후지타카 자신은 이를 쿄토 이마데가와 쇼코쿠사相国寺 입구 앞에 있는 코메다 모토마사米田求政의 저택에 기거하던 파발 하야다 토키사이早田道鬼斎를 통해 입수하였다. 토키사이는 "달리기의 굉장한 달인" 으로, 16리 길(약 60km)을 3시간 반 만에 주파하여 이 정보를 탄고 미야즈宮津로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현대에도 그렇지만 전국시대에는 정보야말로 격렬한 경쟁사회에서 경쟁상대를 꺾을 수 있게 하는 키 포인트였다. 호소카와 후지타카는 이 정보를 이전부터 묵계를 맺은 바 있는 하리마 미키 성播磨三木城의 마에노 쇼우에몬 나가야스에게 알렸다. 쇼우에몬은 히데요시의 고굉지신股肱の家臣이었는데, 호소카와 후지타카로서는 신속히 이 정보를 마에노 나가야스에게 제공해주어, 앞으로의 진퇴를 결정할 때 참고하라고 한 것임이 틀림없다.

  후지타카가 이렇게나 빨리 나가야스에게 정보를 제공해 준 건, 그 반대급부로 자신은 히데요시 측의 정보를 입수하기를 원했기 떄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쇼우에몬 나가야스는 빗츄 타카마츠 전역備中高松陣에서의 하시바 군 / 모리 군의 움직임을 호소카와 가문에 알려줌과 동시에, 스스로도 쿄토에 정찰을 파견하여 사변의 진상을 확인하고, 수완 좋은 자들을 골라 셋츠 방면으로 파견, 제장들의 움직임을 세작細作하도록 했다.

  텐쇼 10년(1582) 6월 6일 신시 칠각(申時七刻, 오후 4시), 츄코쿠 대회군中国大返し에 성공한 하시바 히데요시가 해로를 통해 반슈 아코 곶赤穂岬에 도착했을 때, 마에노 나가야스가 즉각적으로 히데요시의 하문에 대답하며 셋츠 지방의 제장들의 동향을 보고할 수 있었던 건, 이러한 정보수집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 나가야스가 아코 곶에서 휴식중이던 히데요시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카미가타上方의 미츠히데 / 유력자들의 진퇴에 대해 보고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쿄토 혼노사와 니죠 성에서 노부나가 부자를 처단한 아케치 휴우가노카미는, 지금 쿄토에 머무르며 다음과 같이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노부나가 공 부자를 죽인 것은 노부나가가 자신의 무위를 과시하며 신사 / 불각을 수없이 파괴했고, 교만하여 도회의 미혹함을 돌아보지 않았으며, 함부로 여러 지방을 탈취하였고, 신불神佛도 두려워하지 않은 소행을 벌였기 때문이다. 미츠히데가 노부나가 부자를 주살한 건, 제불제천諸佛諸天들께서도 그들을 미워하시게끔 만들었던 악역惡逆이 응보를 받은 것이다. 이제 미츠히데는 노부나가를 대신하여 정치政道를 바로잡고, 인심을 평안히 하려고 한다.'

  그렇게 말하며 미츠히데는 여러 부역을 면제한다는 팻말을 네거리마다 내걸고, 그의 선봉군은 고슈로 난입하여 치쿠젠 님의 영지인 나가하마長浜, 니와 고로자에몬(丹羽五郎左衛門, 나가히데長秀) 님의 영지 사와 산佐和山을 접수하여, 이미 고슈는 아케치 군으로 가득합니다.

  휴우가노카미는 아즈치로 쳐들어가 그곳을 점령하고, 천하를 향해 호령하려 한다는 풍문이 빈번히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러자 대부분의 고슈인들은 휴가노카미에게 굽실대고 있습니다. 와슈(和州, 야마토大和 지방)의 츠츠이 쥰케이筒井順慶의 진퇴에 대해서는 아직 속단할 수 없으나, 거성居城인 코오리야마郡山에서 쿄토로 병력을 파견한 모양으로, 그 자신은 본거지를 나와 호코라가 봉우리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 쥰케이가 아케치에게 가담하면 고슈 / 야마시로山城 / 야마토 지방을 경략하여 더욱더 위세를 늘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키나이畿內로 쳐들어가기가 어려워지며 셋츠 지방 무장들의 진퇴도 속단할 수 없게 됩니다. 치쿠젠 님께서 일각이라도 빨리 출진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이후 히데요시가 11일 아마가사키尼崎로 출진, 13일날 텐노 산天王山ㆍ야마자키 전투山崎合戰에서 아케치 미츠히데의 군대를 격파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므로, 여기에 굳이 적지는 않겠다.

  굳이 첨언하자면, 이《부코야와》에는 후세의 문헌들처럼 미츠히데를 역신逆臣이라면서 시끄럽게 이러쿵저러쿵하는 대목이 보이지 않는다. 쇼우에몬 나가야스가 미츠히데와 오래 전부터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는 점도 한몫 하겠으나, 당시의 도덕관념에 따르면 노부나가의 방약무인한 소행과 겹쳐지면서, 미츠히데의 반역이 그다지 비난받을 만한 사건으론 비치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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