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관찰자

beholderer.egloos.com

포토로그



《야망! 혼노사의 변》'부코야와武功夜話' 로 보는 아케치 (3) ┗ 微妙な話たち



  이 글은 신인물문고新人物文庫 41《아케치 미츠히데 야망! 혼노사의 변》에 수록된 글들 중 하나(p. 95 ~ 112)로 모리모토 시게루(森本繁, 1926~) 씨께서 집필하신《부코야와로 보는 아케치 미츠히데》란 글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글이 주로 참고한《부코야와武功夜話》란 문서(읽다 보니 은근히 미츠히데를 까는 내용이 많은 것 같기도)는, 위 책이 처음 출판된 30년 전과는 달리 지금 일본 내에서 위서인지 아닌지 여부를 놓고 연구자 간의 찬반양론이 극심히 갈리는 사료가 되어버린지라, 일단 '미묘한 이야기' 카테고리에 포함시켰습니다.


  아라키 무라시게荒木村重의 모반

  텐쇼 6년(1578) 10월, 셋츠 지방 아리오카 성주有岡城主 아라키 무라시게가 오사카大坂의 이시야마 혼간사石山本願寺 / 모리 씨毛利氏와 밀약을 맺고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배반했다.

《인토쿠타이헤이키陰德太平記》에 따르면 무라시게의 적자인 신고로 무라야스新五郞村安의 아내는 미츠히데의 맏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부코야와武功夜話》에서는 셋츠노카미摂津守 무라시게의 역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이보다 앞서 셋츠노카미는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자신의 영지인 셋츠 카와베 군 아리오카에 있는 거성居城에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자 나이후 공內府公 노부나가는 아라키의 내심實心을 알기 위해 아케치 휴우가노카미明智日向守를 셋츠 아리오카로 파견하였는데, 항간에서는 아라키 셋츠노카미가 이시야마의 몬제키(門跡, 역주 : 켄뇨顕如)와 통모하고 있다는 속설俗說이 돌았고, 이 풍문은 아라키 무라시게의 영지와 연결되어 있는 이시야마 성 안으로 군량을 반입해주면서 노부나가에게 역심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였기에, 코레토 휴우가노카미는 이 속설을 믿고 그럴듯하게 아즈치安土의 나이후 공에게 말씀 올렸던 것이다. 】

  만약 이 기록이 사실이었다면, 이러한 풍문에 현혹된 미츠히데는 자신의 사위와 사돈 일가를 마왕魔王 노부나가에게 밀고하였다는 말이 되는데, 아무리 보신을 위해서였다고는 하나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 참고로 말하면, 무라시게는 이 때 노부나가에 대한 미츠히데의 입장이 곤란해지는 것을 배려하여, 신고로 무라야스의 아내를 미츠히데에게 돌려보냈다. 이 여성은 훗날 아케치 야헤이지 히데미츠(明智弥平次秀満, 미츠히데의 조카)와 재혼하였다.

  텐쇼 7년(1579) 5월이 되어 아케치 휴우가노카미 미츠히데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고 다시 탄바 지방 경략에 종사하였다. 탄바의 지토地頭인 하타노 사에몬다유 히데하루波多野左衛門太夫秀治와 그 일당들을 퇴치하고 탄바 지방을 평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부코야와》가【 이번에 치쿠젠노카미(筑前守, 역주 : 히데요시秀吉) 대장님께서는 탄슈(但州, 타지마 지방) 방면으로 파견하셨던 그 동생 코이치로(小一郞, 역주 : 히데나가秀長)에게 마에노 쇼우에몬노죠前野勝右衛門尉를 배속시켜 탄바 지방으로 쳐들어가게 하셨다. 이는 히카미 군의 하타노 토노모노스케波多野主殿助 / 하타노 미마사카노카미波多野美作守를 퇴치하기 위해서였다. 】고 기록하고 있듯이, 하시바 히데요시도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들어 코이치로 히데나가에게 마에노 쇼우에몬을 부장으로 배속시켜 미츠히데의 탄바 경략을 원조하였다.

  그리고 미츠히데는 호소카와 효부다유 후지타카細川兵部大輔藤孝 / 요이치로 타다오키与一郎忠興 부자의 군대와 함께 쿄토 방면에서 탄바 지방으로 쳐들어갔고, 코이치로 히데나가의 군대는 텐쇼 7년(1579) 5월 4일 탄바 / 타지마 지방의 접경지대인 야쿠노하라夜久野原을 넘어 탄바 아마다 군 후쿠치야마 성福知山城으로 쳐들어갔다.

  단지,《부코야와》는 히데요시 배하에서 분전한 마에노 쇼우에몬의 군공을 기록한 서적이므로 미츠히데의 탄바 공략에 대한 군공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그저 탄바 지방의 공략이 완료된 후 하시바 코이치로의 군대가 자신들이 점령한 후쿠치야마 성을 코레토 휴우가노카미 미츠히데에게 넘겨주고 탄바 지방에서 철수하였다는 것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하시바 코이치로의 군대는 타지마 지방을 출진하여 20여 일만에 탄바 이카루가 군河鹿郡 / 아마다 군天田郡 / 히카미 군氷上郡에 있는 7개 성을 함락시켰으며, 5월 20일에는 이시카미 성石上城을 포위하여 숨쉴 틈도 주지 않고 밀어붙여 쿠게 에치고久下越後 / 하타노 미마사카노카미 / 하타노 민부波多野民部 이하 30여 명을 할복하게 했는데, 코이치로가 이 소식을 하리마 방면에 있는 치쿠젠노카미 히데요시에게 보고하자, 히데요시는 "이번에 탄바 방면에서 신속히 본분을 완수하였다면, 쿄토 방면에서 출진한 코레토 휴우가노카미 님께 (점령지를) 넘겨주라는 나이후 공(노부나가)의 요청을 받았다. 그러니 뒷일은 마에노 쇼우에몬에게 맡기고 귀진하라."고 기별하여, 코이치로는 5백 명의 병력을 지휘하던 마에노 쇼우에몬과 아오키 칸베에靑木勘兵衛에게 미츠히데와의 절충임무를 위임하고 곧장 철수하였다.

  즉 쇼우에몬은【 텐쇼 7년 묘卯 6월, 후쿠치야마 성에 머무르다. 연일 이어진 장마로 인해 맑음과 흐림이 일정치 않아, 이시카미 성을 포위한 이후로 날씨가 맑았던 적은 고작 3일 뿐이었다. 】는 정황 속에 있었고, 쿄토 방면에서 공격해 들어간 코레토 휴우가노카미 쪽은【 격파하게 한 핫타八田의 성. 후쿠즈미福住를 포위하시어 그날 본진을 구축하고, 타키 군 야가미 성에 농성한 하타노 저택에 3천여 명의 병력을 보내어 포위,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공격하자 결국 적은 항복하여 성문을 열었다. 】는 것이다. 

【 코레토 휴우가노카미 미츠히데가, 5백여 명의 병력을 데리고 머무르던 마에노 쇼우에몬으로부터 탄바 후쿠치야마 성을 넘겨받은 것은 텐쇼 7년 7월 23일이었다. 】(《부코야와》가운데 <탄바키丹波記>)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블랙)

653
460
350059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블랙)

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