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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다 테츠오] 일본사를 크게 바꾼 조총鉄砲의 전래 역사



  세계가 일본을 발견한 16세기

  16세기는 '지리상 발견의 시대' 라고도 불린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세계의 바다로 뛰어들어 새로운 세계들을 차례차례로【발견】해 나갔기 때문이다.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두 나라 -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이미 15세기부터 항해 / 탐험사업을 서로 경쟁하면서 추진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1492년, 에스파냐가 파견한 콜럼버스가【바하마 제도】에 도착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 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디는 콜럼버스(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미지의 신대륙이 '발견' 되면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서로의 영역을 확실하게 정해놓을 필요를 느꼈다. 이에 로마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다음 해인 1493년, 대서양에 위치한【카보베르데 제도】에서 서방 100레구아(1레구아는 약 6km)에 경계선을 긋기로 결정한 대칙령을 발포했다.

  그리고 다음 해, 두 나라 대표가 에스파냐의 토르데실랴스에 모여【토르데실랴스 조약】을 체결, 그 분계선을 카보베르데 제도 서방 370레구아 선으로 변경시켰다.

  경계선 서쪽은 에스파냐, 동쪽은 포르투갈이 맡게 되었다. 로마 교황의 허가 하에, 이교도들의 세계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두 나라에게 분할된다는 것이 정식으로 결정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포교를 위한 영역분담이 아니라 토지 영유는 물론이며, 교역까지도 독점적으로 행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토르데실랴스 조약과 사라고사 조약에 따른 두 나라의 세계 분배(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에스파냐에 의해 '발견' 된 아메리카 대륙은 에스파냐의 소유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오랜 기간 동안【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라는 표현에 아무런 모순도 의문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 표현은 괴이하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선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오랜 역사를 자부했다.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유럽인들이 마침 이 곳을 실제로 접한 데 불과했던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에스파냐의 식민지지배를 받아온 중남미 국가들의 역사교육에서는 여전히【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일본에 대해서도【자비에르의 일본 발견】이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타무라 사다오田村貞雄《日本史を見直す》)

  그런데 토르데실랴스 조약이 체결된 이후, 포르투갈은 경계선 동쪽의 지역들을 영유하기 위해 광분하기 시작했다. 1498년엔 바스코 다 가마의 함대가 아프리카 남쪽 끝인【희망봉喜望峯】을 우회하여 처음으로 인도의 항구인【캘리컷】에 도착, 인도항로를 개척했다. 이 때 가마의 상선대는 막대한 양의 후추와 계피를 싣고 다음 해, 리스본으로 귀항하였다. 위 물건들은 고기를 보존하는 한편 조미료로도 불가결한 물건이었던지라, 크리스트 교 포교라는 목적과 더불어 "후추와 영혼을 위해!" 라는 슬로건을 낳기도 하였다.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어서 인도의【고아】를 탈취하고, 말레이시아의【말라카】를 점령했으며, 향신료의 주산지인【몰루카 제도】까지 차지했다. 포르투갈 상선은 이후 마카오까지 가서 명나라에게 교역을 하자고 요청했으나 명나라가 정식 교역을 거부했기에, 밀무역을 벌이면서 광동廣東 그리고 그 북쪽에 있는 영파寧波 부근까지 진출해오게 되었다.

  그리고 텐분 12년(1543)에 포르투갈인이 타네가시마 섬種子島에 표착하게 된다. 이들이 기록상으로는 우리나라를 찾아온 최초의 유럽인이다, 고 한다.


  최초에 일본에 표착한 선박은 중국제【정크선】이었다!

  난포 분시南浦文之가 저술한《텟포키鉄砲記》라는 사료에 따르면,【 텐분 계묘년癸卯年 가을 8월 23일 정유시, 우리 니시노무라 마을西村의 작은 포구에 한 척의 커다란 배大船가 나타났는데 어떤 나라에서 왔는지를 알 수 없었다. 승객은 1백여 명. 그 모습은 유례가 없었으며, 그 말은 통하지 않았기에 보는 사람마다 기괴히 여겼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 때 타네가시마 섬에 표착한 선박을 포르투갈 선박이라 알고 계신 분들이 많다. 분명 표착한 것은 포르투갈 사람들이었고, 당시 포르투갈 상선이 영파 부근까지 진출하기도 했었기에 그렇게 이해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중국 선박이엇다. 중국 선박 가운데서도 정크(=戎克船)라 불리는 커다란 배였다.

  타네가시마 섬 니시노무라 마을의 영주 니시노무라 오리베노죠西村織部丞라는 무사는 한문 소양이 있었기에, 난파선에서 내려온 오봉五峯이라는 중국인을 상대로 해변가 모래사장에다 막대기로 글씨를 써 가며 필담을 한 끝에 이 배에 타고 있는 미지의 사람들이 "서남만족 상인西南蠻種之賈胡"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賈胡" 는 상인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이해했을지도 모르나, "西南蠻種" 이라는 표현은 이해 못하지 않았을까. 당시 일본인의 세계관은【 삼국세계三國世界 】같은 말로 일컬어지듯 본조本朝 / 천축天竺 / 그리고 진단震旦 세 나라밖에 없었다. 본조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 천축은 인도, 진단은 중국으로, 진단에는 중국문화권으로 간주하는 조선朝鮮도 포함된다.

  중국인인 오봉이 "서남만" 이라고 한 것은, 그들의 세계관이 일본의 세계관보다 넓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남만', 그리고 그보다 서쪽에 '서남만' 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만은 현재의 필리핀 / 인도네시아 등지 국가들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서남만이 유럽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즉 "서남만족 상인西南蠻種之賈胡" 이라는 건 포르투갈 상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텟포키鉄砲記》에 따르면【 상인들의 대장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모량숙사牟良淑舍라고 했고, 한 명은 희리지다타우다喜利志多陀盂多라고 했다. 손에 한 가지 물건을 둘고 있었다. 길이는 2~3척. 그 모양은 안쪽으로는 구멍이 쭉 뚫려 있었고, 외형은 올곧았으며 묵직했다. 】고 적혀 있어, 포르투갈 상인들의 이름도 알 수가 있다.

  모량숙사는【프란시스코】, 희리지다타우다는【키리시타 다 모타】일 것이다. 이들의 이름은【안토니오 가르반】의 기록에도 등장하므로 확실하다고 느껴진다. 가르반은【안토니오 페이셔트】라는 또 한 사람의 이름도 기록하고 있으나 이 명칭은《텟포키鉄砲記》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이 때 타네가시마 섬에 표착한 포르투갈 사람이 2명인지 3명인지는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안토니오 페이셔트도 거기에 포함시켜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타네가시마 조총(출처 : 일본 위키피디아)


  이후 포르투갈인들은 타네가시마 섬의 영주인 타네가시마 토키타카種子島時堯를 알현하여, 가지고 간 텟포(조총)들을 시연해보았다. 이를 본 16세의 소년 영주 타네가시마 토키타카는 천성적인 호기심도 한 몫 했었는지. 두 자루를 양도받았다.

  그것만으로 끝났다면 그 후의 역사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토키타카는 이 때 한 자루를 분해시켜, "복제품을 만들어라." 고 섬의 대장장이들에게 명령하였다.

  '타네가시마 같은 벽촌, 그리고 섬 지방의 대장장이가 그런 걸 해낼 리가 없지.' 하고 생각하는 게 인지상정이었을 것이나 우연이란 무서운 것으로, 이 타네가시마 섬은 제철을 업으로 삼는 섬이었다. 현재에도 '타네가 가위' 가 섬의 특산품으로 남아 있을 정도로 해변의 사철砂鉄을 이용한 제철업은 이 무렵에 이미 발달해 있었다. 우수한 대장장이들이 있었기에 순식간에 복제품 텟포들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 텟포들은 이후 본토에 전해지면서, 전국시대의 전투 그 자체를 바꾸어놓게 된다.


출처 : 오와다 테츠오小和田哲男,《日本の歴史がわかる本 室町ㆍ戰國 ~ 江戶時代 篇》
p.100 ~ 105. 三笠書房, 1991.



덧글

  • 레이오트 2017/03/24 08:34 # 답글

    1.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자비에르의 일본 발견이라는 표현을 보다보면 정치적 올바름 이전에 매몰비용의 무서움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2. 다음편에서 나오겠지만 타네가시마의 조총 복제는 엄청난 난관에 부딫쳤는데 그 원인은 나사 때문이었지요.

    3. 아무튼 이런 조총과 같은 최첨단 투사병기에 대한 전통 덕분인지 현재 타네가시마는 일본에서 최첨단 투사체가 필수인 우주과학 분야를 리드하고 있지요.
  • 히알포스 2017/04/02 22:11 #

    2. 저한테 일본사를 가르쳐준 지인은 타네가시마의 복제가 어려웠던 것은 총열의 마구리(뒷쪽 긑부분)를 막는 문제 때문이었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 쪽이 틀린 것 같습니다.

    3. 말씀하신대로 일본열도와 아마미 군도 사이쯤에 있는 타네가시마에 일본의 우주센터가 있지요. 그리고 EU의 우주센터는 남아메리카의 가이아나(Guyana)에 있고, 한국의 우주센터 역시 비교적 외딴곳인 전라남도 고흥반도의 끝쪽인 외나로도에 위치하고 있지요. - 막상 이 곳에 가게되면 들어가는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의경분들이 막고 신원조회를 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

    아무래도 첨단 항공과학, 그 중에서도 발사체를 다룬다는 특성 때문에 적당히 외딴곳에 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습니다.
  • 슈타인호프 2017/03/23 20:38 # 답글

    "조총 장인이 딸을 바쳐서 비법을 얻었다"는 전설은 여기서는 무시되는군요^^;
  • 3인칭관찰자 2017/03/24 07:41 #

    네. 그 일화는 언급하지 않고, 타네가시마 제철업의 우수성에 공적을 돌리네요. ㅋㅋㅋ
  • 그래도 2017/03/24 14:02 # 삭제

    딸 바쳤다는 일화는 나사산 팔 기술이 없어서 나사에만 한한다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 통짜로 만드는 기술을 넘겨주었다고 해도 어느 정도 받쳐주는 기술이나 환경이 되어 있어야 짝퉁이라도 만들던가 한다고 생각해요, 종자도가 제철이 발달하지 않았다면조총 전래는 더 늦어졌겠죠
  • 3인칭관찰자 2017/03/24 18:41 #

    그래도 // 물론 전설이 진실이었다고 해도 타네가시마 섬이 비법을 이용해 복제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제철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건 평가받을만하다 생각합니다.
  • 明智光秀 2017/03/26 22:12 # 답글

    아, 저 책...
    오와다 테츠오 교수님의 팬으로서, 교수님이 자서전에서 어떤 계기가 된 책으로 언급할 정도이며, 고대사를 다룬 1편은 가지고 있는데...
    정작 전국시대편은 안 봤음;;;
  • 3인칭관찰자 2017/03/27 11:11 #

    저자이신 오와다 교수님께도 의미가 있었던 책이었군요. 저는 전국시대가 포함된 2편만 갖고 있는데 책 내용이 매우 만족스러워서(1991년 책이라 3단철포같은 옛날의 통설을 그대로 채용하는 점이 옥의 티이지만) 가능하다면 1편과 3편도 구해 읽고 싶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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