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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170318 -《근대일본의 조선인식》中 독서



  빈곤한 역사인식을 깨닫다

  방향이 조금 다르지만 '중국문화대혁명' 이 일어났을 때 제가 잘못 생각했던 부분에 대해 서술하려 합니다.

  제가 일본 근대사를 연구하며 식민지 문제와 조선 문제에 착목해서 연구한 그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식민지 문제와 피압박 민족의 민족해방운동에 주목한 것은 옳았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의 민족해방운동을 일방적으로 과신하는 약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1966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 이 일어났을 때 더욱 거세게 나타났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 잘못된 인식에 사로잡혔는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모택동어록(毛語錄)" 을 외치면서 행진하는 수만 명의 홍위병을 보고 위화감이 들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이 일어난 뒤 얼마간 저는 중국혁명을 이끌어온 모택동이 큰 잘못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아시아에 있어서 민족해방투쟁으로 이루어낸 역사적 달성, 제국주의의 침략을 용납하지 않는 상황을 만든 역사적 의의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중국의 역사, 중국 공산당의 역사 그리고 중국 공산당에 발생한 이상한 사태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하지 않고 '문화대혁명' 을 정당화하는 데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인식의 약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 국가에서 일어난 혁명은 그 나라에서만 가지고 있는 모순을 해결하며, 그것은 그 나라의 인민투쟁에 의해서만 해결된다고 하는, 사적 유물론의 기본개념을 충분히 알지 못한 부끄러운 잘못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아시아ㆍ아프리카 연대위원회의 일에도 참여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분열에 관해서 올바르게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가도와키 데이지 씨와 스즈키 료(鈴木良) 군과 같은 가까운 선후배를 비롯해 평소 알고 지내던 많은 분들로부터 질타와 충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 잘못된 역사인식은 제대로 고쳐지지 못했는데, 얼마 후 대학분쟁이 일본 각지에 파급되고 일부 학생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나라여자대학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중국 당국은 이를 마치 일본 인민의 위대한 투쟁인 것처럼 보도했습니다.《중국통신》의 기사를 보고,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겨우 제 잘못된 역사인식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잘못은 세계와 일본을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제 역사인식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이 체험은 제게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주었습니다. 반성한 후 역사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후략)


출처 : 나카쓰카 아키라中塚明 著, 성해준 譯, 청어람미디어 출간
《근대일본의 조선인식중 저자 후기를 대신하여 <빈곤한 역사인식을 깨닫다>(p.260 ~ 262)



  문혁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음에도 몇 안되는 정보 갖고 짜깁기한 자기 견해를 확신하여 의식화란 명목으로 순수한 젊은이들 사이에게 '문혁뽕''마오뽕' 을 열심히 주입시켰음에도, 끝내 제대로 된 과오 인정조차 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신 한국의 모 고인과는 분명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문혁에 대해서 한정된 정보밖에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오류가 있었다" 고 그분은 말년에 말씀하셨다지만, 공산권에서 미화하여 오도시킨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사회주의의 진리를 깨달은 양 설파하였던 건 지식인으로서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기에.

  (물론 직간접적으로 운동권 투사들을 양성하여 대한민국 민주화에 기여하신 건 그 분의 공적이죠. 인정합니다)

  그런 면에선 이 책 저자분의 깨달음과 진솔한 고백은 존경하는 마음이 일 정도로 진중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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